[리뷰] 따뜻한 냉정... 난폭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리뷰] 따뜻한 냉정... 난폭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7.31 0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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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주경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언론에 몸담은 20년 차 기자이자, 아침 뉴스인 를 진행하는 현직 앵커다. 정치부·국제부·사회부·문화부·인터넷부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거쳤지만 사회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기자들 세계에서 ‘사회부 통’으로 통한다. 일반인들이 경험하기 힘든 수많은 사건 사고의 현장을 눈으로 목격했고, 이슈의 중심과 변방에서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을 만나며 살았다.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여 2014년 ‘올해의 바른말 보도상’을 받았고, 취재와 관련해 여러 차례 수상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열일곱 되던 해에 부모 곁을 떠나 홀로 살기 시작했다. ‘혼자 있음’으로 해서 깨닫게 된 많은 것들과 익숙하다. 지금은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과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한다.
 

『따뜻한 냉정』은 20년간 세상의 온갖 사건과 소식을 모아 정론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온 현직 공중파 앵커 박주경 기자의 첫 책이다. 사내에서 ‘사회부 통’으로 통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그 어떤 편향이나 이념, 지역이나 세대의 벽을 넘어 치우침 없이 진실을 목도하기 위해 애써왔다. 냉정을 잃지 않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되, 따뜻한 희망의 온기는 놓지 않고자 했다. 불가피하게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 문제에 진지하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기자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념과 세대가, 계층과 성차가 뜨겁게 부딪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무언가 힘을 보태고 싶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상식적이고 따뜻한 공동체’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날카롭고 통렬한 사회 비판 메시지가 곳곳에 담겨 있지만 동시에 시대의 아픈 삶을 논할 때는 겸허한 시선으로 고개를 낮추는 글로 말이다. 

‘따뜻한 냉정’은 저자의 실제 좌우명이기도 하다. 삶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세상을 향한 냉정한 비판, 『따뜻한 냉정』은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은 글 45편으로 이루어졌다. 각 장은 사회경제, 정치, 인간관계, 언론의 자세 그리고 인생의 작은 깨달음으로 나뉜다. 우리 삶 전반에 대한 넓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고, 공통된 정서는 ‘온기’이다.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기에 현안을 자로 잰 듯 객관적이고 냉정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저자는 타인의 삶을 비난하거나 평가하기보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성숙한 자세를 말하며, 큰 시야를 강요하며 작은 것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과거를 지나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아봐 주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한다. 

그런 저자이기에 그가 책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테마는 ‘젊은 세대’이다. ‘꼰대’라는 말은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Z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 간 갈등 혹은 세계관의 차이를 고스란히 함축한 말이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마냥 편한 건 아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 안에서 더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렸고,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는 무너졌다. 누구나 1등을 할 수 없음에도 경쟁에서 실패한 청춘들은 자포자기한 채 사회와 자발적으로 단절하기도 하고, 가난한 청춘들은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현실의 어려움을, 직장 혹은 사회 내에서 부딪히는 사고의 차이를 ‘꼰대’라는 말에 담아 소비한다. 그런 젊은 세대들에게 “나도 아파봤는데 너희만 유독 칭얼댄다. 그저 버텨내야지 무슨 답이 있겠는가?”라는 말은 꼰대스럽다. 대화를 하지 말자는 선언과 같다. 저자는 기성세대를 향해 “공감 없는 충고만으로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을 거라 꿈도 꾸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청춘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 식’ 위로는 먹히지 않는다. 개인이 이겨낼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공허한 위로보다는 실증적 치유 방향을 모색하자는 데 글의 지향점이 있다. 

이야기는 정치와 경제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역사의 모순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그릇된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현재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이 ‘경제적 보복’으로 이어지는 상황과 맞닿아 섬뜩하다. 

저자의 고민은 국가 대 국가의 문제뿐 아니라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사회의 문제로 광범위하게 이어진다. 음식주문 앱, 숙소공유 앱 등 신사업이 개발될수록 수익 공유 불균형이 가중되는 현상, 한국 재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와 대기업의 골목 상권 진출, ‘혼밥’ ‘혼술’로 상징되는 소비 패턴의 변화와 자영업자의 몰락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분석하고 인과를 밝혀내는 시각은 날카롭다. 

『따뜻한 냉정』은 사회, 정치, 언론의 문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앞선 담론들 사이사이 좀더 본질적인 삶,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고민하는 책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삶이 나에게 더 맞는 삶일까,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점점 쇠약해지는 나의 역사, 부모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등 현실의 문제를 진정성을 담아 들려주는데,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따뜻한 이웃의 모습에서는 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감정이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심하고 미려한 글솜씨에 약력을 다시 들여다보니, 저자는 2014년 ‘올해의 바른말 보도상’을 받았다. 

소설가 김훈은 원고지 4장에 걸쳐 쓴 추천사에서 “박주경의 글은 듣기를 포함하는 말하기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모질거나 가파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남에게 들리게 한다. 그 목소리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힘이 실려 있어서 듣는 이의 기쁨을 일깨운다.” 했다. 저자 박주경의 질문은 우리의 실존, 실생활을 파고든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내고 남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그래서 공동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울림을 던진다. 소설가 김훈이 이 책을 오늘의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 이유다. 

이해와 배려, 정직과 신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내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소홀하기 쉽다. 『따뜻한 냉정』을 읽으면 바쁜 걸음을 잠깐 멈추고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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