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에 지역 주민은 ‘봉’인가? 용인 옛 경찰대 부지를 둘러싼 국토부와 LH의 ‘갑질’
국토부에 지역 주민은 ‘봉’인가? 용인 옛 경찰대 부지를 둘러싼 국토부와 LH의 ‘갑질’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9.09.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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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은 주민이 국가에서는 행복한 국민으로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지방자치라는 제도가 풀뿌리로부터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늬만 지방자치다보니 중앙 정부와 지역 주민 간에 갈등이 도처에 만연하다.

이러한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용인에 있다. 100만㎡가 넘는 용인시의 옛 경찰대 부지. 나무와 숲이 많아 ‘용인의 허파’라 불리는 경찰대 부지 개발 방향을 두고 땅의 원 주인인 국토부와 인근 지역의 구성동(언남동·청덕동), 동백동·마북동·보정동·죽전동 주민들 간에는 생각이 달랐다.

1983년부터 언남동 주변 일대 주민들과 함께 한 경찰대가 2016년 충남 아산으로 이전하자 공간 활동을 어떻게 할지,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 넓은 공간이 공공부지라는 것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소유권과 개발권을 국토부에 대리해 갖고 있어 지자체나 주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

용인시 구성동(언남동·청덕동)에 위치하고 있는 30만 평 규모의 옛 경찰대 부지 전경. 교통대책 없는 난개발 문제와 정부의 일방적 공공임대주택 사업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용인시 구성동(언남동·청덕동)에 위치하고 있는 30만 평 규모의 옛 경찰대 부지 전경. 교통대책 없는 난개발 문제와 정부의 일방적 공공임대주택 사업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여기에 LH는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의료 산업단지와 문화·복지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는 쾌적한 자족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수익성 부재로 이 계획은 철회됐다. 이어 6500세대의 기업형 민간 임대주택 건설을 골자로 하는 뉴스테이 계획으로 바뀌면서 전체 면적 60%는 공원·녹지 등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에는 문제가 있었다. 6500세대의 아파트가 지어지면 2만여 명의 신규 유입인구가 발생하고, 수도권이라는 특성상 서울 쪽으로 광역교통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이미 포화상태에 달한 동백동과 죽전동 일대의 교통난이 가중된다는 점이었다. 그 비용은 대략 4500억 원에 달했다.

그러자 LH는 뜬금없이 경찰대 임야 20만 4000㎡와 부지 8만 1000㎡을 용인시에 기부했다. 이로써 LH는 100만㎡ 개발이 넘을 경우 광역교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비켜갔다. 결국 4500억 원에 달할 광역교통망 구축비는 용인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이를 두고 LH가 ‘꼼수’를 폈다는 비판들이 터져 나왔다. 3년전인 2016년 용인시의원들의 절대 다수 결의로 광역교통체계 구축이 없는 뉴스테이 개발에 반대하는 의회 결의가 나왔다.

당연히 광역교통망이 없는 곳에 올해 민간 임대주택을 지을 사업자는 없었다. 그러자 LH는 올해 민간임대주택공급사업을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건설사업으로 계획을 다시 변경했다.

LH의 ‘양두구육’식 개발사업

이 과정에서 경찰대 부지 개발사업은 처음에 LH가 개발의 법적 토대로 삼은 ‘혁신도시’와는 거리가 먼, 공공임대주택 공급 사업이 되고 말았다. 법률 변경도 없이 말이다. 당연히 주민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대변해 주는 곳은 없었다. 용인시는 무기력하게 LH에 끌려갔다.

LH는 4500억 원의 광역교통체계 구축비용은 자신들이 지불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언남지구 경찰대부지 개발사업은 그 주체가 국토부이고 자신들은 그저 대행에 불과해서 개발이익이 나면 국토부에 환원하고, 손실이 나면 국토부가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묻게 된다. 어차피 국토부라는 중앙 행정부가 개발하려는 사업이라면 왜 국비로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LH를 내세워 주민들의 편익에는 눈 감는 것일까.

결국 힘이 있는 지자체는 정치권 로비로 국비가 투입되는 국책사업을 유치하고, 힘없는 지자체는 국토부가 LH를 내세워 대행이라는 이유로 소위 ‘배째라’는 식의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굴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3일 김범수 용인발전소 대표(자유한국당 용인정 당협위원장)는 구성동(언남동·청덕동), 동백동·마북동·보정동·죽전동 주민들과 시의원들을 대표해 개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9월 3일 용인시청 브리핑룸에서 경찰대 부지 개발 문제와 관련 지역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김범수 용인발전소 대표와 지역 주민들.
9월 3일 용인시청 브리핑룸에서 경찰대 부지 개발 문제와 관련 지역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김범수 용인발전소 대표와 지역 주민들.

다음은 김범수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LH의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가.

주민들은 임대주택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LH와 용인시가 옛 경찰대·법무연수원 부지에 무리한 규모의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광역교통체계비용 4500억 원을 10분의 1 수준인 500억 원으로 축소해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 LH 측은 그 정도의 교통망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언남지구가 속한 청덕동의 또 다른 택지인 구성지구에는 이미 2667가구의 국민임대아파트가 배정돼 거주 중이다. 그 비율은 전체 가구수의 54%를 차지한다. 여기에 경찰대 부지인 언남지구에 들어설 54% 임대주택(공교롭게도 같은 비율)을 더하면 청덕동 한 지역에만 70% 이상의 공공임대아파트가 들어서게 돼 전국에서 그 유사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균형 발전이 저해된다. 용인에 사는 것이 죄가 아니라면 실로 무책임한 행정 아닌가.

- 용인시 측은 LH의 제안을 수용해 주민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인데...

백군기 용인시장은 107만 용인시 시정의 최종 책임자다. 취임 100일 기념 언론인 간담회 등에서 수차례 ‘선 교통대책, 후 개발’을 약속했다. 이런 문제 하나 해결이 안 된다면 ‘명품도시 용인’이 가능하겠나. 주민들의 행복에는 여도 야도 없고, 정파도 없어야 한다.

- 예산이 없다면 해결방안도 없는 것 아닌가.

용인시의 미래를 위한다는 근본적 생각을 하지 않으니 해답이 안 보이는 것이다. 경찰대 부지 개발사업은 ‘혁신도시조성에 관한 법률’이 근거가 된다. 그러니 이 일대를 법의 취지대로 혁신도시로 개발하면 되는 문제다. 원칙으로 돌아가면 해답이 있다. 주인의식과 책임감, 의지의 문제다. 개발권을 용인시에 위탁해서 경찰대 부지를 미래 용인의 랜드마크인 보정동 마북동 ‘플랫폼시티’ 개발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옛 경찰대 부지를 단기적 과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전략화하고 GTX 용인역-동백동-경찰대 등 교통 고립지역을 잇는 지하철 건설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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