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회심리학...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리뷰] 사회심리학...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2.23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근원적이고도 중요한 물음에 세계적인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와 더글러스 켄릭, 스티븐 뉴버그가 신작 『사회심리학』으로 답한다. 이 책은 방대한 이론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받는지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연구 경력 총합 130년에 이르는 최고의 심리학자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400만 밀리언셀러 『설득의 논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는 50년 넘게 설득과 순응, 협상 분야에 몰두해온 ‘설득의 대부’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오늘날 경영 이슈에 최적화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주는 연구자”라고 호평했을 정도로, 그는 뛰어난 실력과 현실 감각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손꼽힌다.

나머지 두 저자들도 독보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더글러스 켄릭은 연구 논문만 200편이 넘을 정도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오며 ‘데이비드 버스를 잇는 진화심리학계의 총아’로 불린다. 스티븐 뉴버그 역시 남다른 실험 구상으로 심리학자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주역이다. 오랜 기간 사회심리학에 천착해온 권위자들이 머리를 모은 만큼, 이 책은 사회심리학의 역사부터 핵심 이론과 연구, 인물 중심의 다양한 사례에 이르기까지 사회심리학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나아가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 같은 심리학의 영역뿐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경영학 등 심리학 바깥의 학문까지도 아우르고 있어, 여러 학문을 연결하는 통섭 학문으로서 사회심리학의 입지를 다진다.

『사회심리학』은 2009년 원서(5판)가 출간된 이래 판을 거듭하며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교과서와 교양 입문서, 참고 도서로 애용되고 있다. 2014년 개정 증보판(6판)을 내면서 300편에 달하는 연구 논문을 추가로 참고했고 그중 대부분이 2011년 이후 새로 발표된 것들이라 사회심리학의 최신 동향과 현주소를 살피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가 추천의 글에서 “몇 번이나 밑줄을 그어가며 탐독했는지 모른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이론서로는 드물게 대중적 흥미와 학문적 완성도를 겸비한 수작이다. 구체적이고 엄밀한 지식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탄탄한 구성으로 사회심리학의 100년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은 심리학 전공자뿐 아니라 입문자들에게도 ‘사회적 존재’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해주는 통찰을 건넬 것이다.

1940년 여름, 200여 명의 유대인들이 리투아니아의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들었다. 자신들을 짓밟은 나치와 동맹 관계였던 일제에 망명을 요청한 것이다. 놀랍게도 한 일본 외교관은 당국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밤낮으로 이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그는 ‘일본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다. 자신의 경력과 목숨, 가족의 생계를 건 그의 선택을 단순히 “착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가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섰던 부모 아래서 자랐고, 우연히 한 유대인 소년과 친분을 맺었다는 ‘상황’이 뒷받침될 때 수수께끼 같던 그의 행동이 온전히 이해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행동은 개인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산물이다.

『사회심리학』은 ‘사람과 상황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세상을 보다 정확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게 해준다. 여느 사회심리학 개론서들이 특정 태도나 행동을 판단할 때 성장 환경이나 집단의 규범, 문화 같은 외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예컨대 생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찰스 맨슨과 침례교 목사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희대의 살인마와 시민권 운동의 영웅이라는 상반된 길을 걸을 정도로 성장 과정이 달랐다. 하지만 방치된 채 자란 아이들이 전부 잔혹한 흉악범이 되지 않고,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이 전부 위대한 사회운동가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깊고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사회심리학의 여러 논제를 사람(Person)과 상황(Situation), 상호작용(Interaction)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한다. 해당 부분은 [사람]과 [상황], [상호작용]이라는 기호로 표기되어 있어, 긴 독서의 여정에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가 된다.

“사람과 상황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왜 이렇게 깊이 파헤쳐야 할까? 단순한 설명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인지 자원을 아끼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흑백논리에 따른 대답에 만족할 때가 많지만 진실은 훨씬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색조가 모여 회색이 되는 소용돌이 안에 있다. 이러한 복잡성을 신중하게 탐색할수록 개인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돌리거나 거꾸로 사람을 상황의 수동적인 장기말로 보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687쪽)

이 책은 총 14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사회심리학을 소개하고, 2장에서는 개인과 사회적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3~13장에서는 사회심리학의 주요 논점을 살핀다. 이를테면 남들의 호감을 사는 법(4장), 입장의 변화를 부르는 설득 메커니즘(5장), 성적 매력 어필과 짝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8장), 도움 행동과 공격적 행동이 나타나는 이유(9 ㆍ 10장), 집단의 속성과 유능한 리더의 조건(12장) 등이다. 관계 맺기부터 결혼과 섹스, 설득과 협상, 이타성과 공격성, 차별과 편견, 집단생활과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각 장에서 다뤄지는 14가지 주제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본문 중간마다 배치된 〈BOX〉에서는 여러 실험 내용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를테면 연구를 통해 얻은 통찰이 덜 불공평한 학급 분위기를 만들고, 부부 생활을 지속하도록 돕고, 폭력을 줄이는 데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본다. 이외에도 건강과 교육, 경영, 정치 같은 영역과 사회심리학 내 주요 논점의 연관성을 살피고 있어, 사회심리학의 원리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양한 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과 연구 자료도 탄탄하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주변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정반대로 바뀐다는 걸 밝힌 솔로몬 아시의 동조 실험(270쪽), 인간이 권력을 갖게 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음을 입증한 필립 짐바르도의 공격성 실험(56쪽), 권위 앞에서는 한없이 비정해지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는 걸 밝힌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276쪽)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얼마나 타인에게 영향받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밖에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인지적으로 타당하다는 걸 입증한 기본적 귀인 오류(128쪽),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물건을 사게 되는 원리를 밝힌 균형 이론(249쪽), ‘평균 이상의 시민’이라는 언급만으로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높인 꼬리표 붙이기 전략(312쪽) 등,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켰던 놀라운 이론들이 소개된다. 일련의 연구에는 100여 년에 걸친 사회심리학자들의 시행착오와 성과가 담겨 있어 연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방대한 이론과 연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일반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 장의 도입부에 배치된 실존 인물들의 사례는 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도 부담 없이 사회심리학의 세계에 진입하게 해준다. 평범하다 못해 불륜까지 일삼았던 마틴 루서 킹이 어떻게 약자들을 대변하는 영웅이 되었는지, 프리다 칼로가 어쩌다 20살 연상인 디에고 리베라와 사랑에 빠졌는지, 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는지 등. 논쟁적인 화두를 중심으로 문제의 단서를 찾아가다 보면, 복잡하게 보였던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비밀도 금세 풀리게 된다.

20세기 초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 잡은 사회심리학은 전쟁과 경제난, 국가 간 갈등으로 점철된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며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왔다. 공격성, 편견, 자기도취적 이기심 같은 부정적인 사회적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도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와 흑인들을 향한 KKK의 잔혹한 린치, 여러 나라들의 무분별한 자원 남획 등에 감춰졌던 불편한 진실을 밝혀낸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되살아나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건넨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심리학이 인간의 허점을 파헤치고 병리적 행동들을 합리화하는 음습한 학문은 아니다. 본문에서 저자들도 언급했듯, 사회심리학에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실질적 잠재력 또한 상당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더 행복해지는지, 그리고 영웅적 행동, 친절, 사랑의 출현을 촉진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감정 이입과 공감적 관심이 확보될 때 누구든 순수한 의도로 남을 돕게 된다는 것을 증명한 C. 대니얼 뱃슨의 도움 행동 연구(452쪽)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인간과 사회의 이면을 다각도로 깊이 있게 조망하는 『사회심리학』은 오래된 갈등의 매듭을 풀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