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50주년’ 경제위기 속에서 다시 보는 이야기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출간
‘새마을운동 50주년’ 경제위기 속에서 다시 보는 이야기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출간
  • 김신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4.23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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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18년 그림자 보좌한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 집필

지난 22일 가난 극복의 상징인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 50주년을 맞은 가운데, 새마을운동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디테일을 다듬은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기파랑, 2020)가 출간됐다.

그동안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의의에 대한 자료는 많아도, 그게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증언은 없었던(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만큼, 이 책은 그 아쉬움에 대한 응답이 될 듯 하다.

이 책을 펴낸 이는 박정희 대통령 당시 농림부 실무 과장‧국장으로서 박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던 고병우 전 건설부장관이다.

많은 국민이 ‘잘살기 운동’으로 기억하는 새마을운동. 그 잘살기의 목표가 ‘1980년대 국민소득 1천 달러, 수출 100억 달러’였다(박정희 대통령은 살아서 1980년대를 보지 못했으나, 목표는 3년 앞당겨 달성하고 갔다). 1972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340달러였으니 당시로선 만화같이 비현실적인 목표였지만, 지금은 정반대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숫자다(2019년 1인당 GDP 31,430달러, 수출 5,452억 달러).

새마을운동이 1970년 4월 22일 제1회 새마을의 날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멀리 6‧25 전후복구로부터 5‧16 직후의 경제개발을 거치며 씨를 뿌리고, 1960년대 후반 몇 년 동안에 걸쳐 서서히 형태를 잡아 나갔다. 1970년 4월 22일은 이미 검증된 새마을운동의 방식을 그해 가뭄 극복에 적용할 것을 논의하는 ‘한해(旱害)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가 열린 날로, 새마을운동의 생일이라기보다 ‘성년식’이 열린 날이라 해야 한다. 다만, 이때까지도 아직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다면 1960년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새마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 저자는 세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증언한다.

그리고 의문점 하나. ‘새마을’ 세 글자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하여 쓰게 됐을까? 1969년 일본 농촌 시찰에 나섰던 저자(당시 농업개발국장)가 한 마을에서 ‘아타라시이무라 쓰쿠리운도(新しい村作り運動, 새마을 만들기 운동)’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그해 6월, 농특사업 정례 보고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이 흘려듣지 않고 “그래? 일본 마을들도 새마을 만들기 운동을 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잘살기’라는 목표, ‘하면 된다’는 자조(自助) 정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인센티브 원리’가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어 힘차게 도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새마을운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빈곤 탈출의 세계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것을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고도의 정신적 구호로 실체화시킨 것이 박정희였다.

새마을운동 배태 당시 정부 지원체계, 농특사업의 사업‧작목 예시, 박정희 대통령 친필 ‘새마을 교과서’(1972. 4. 26, 광주 ‘새마을 소득증대 경진대회’ 치사 자료) 등, 당시 실무 공무원이었기에 주목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권말부록으로 실었다.

생전의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리켜 “저 양반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경북 구미 새마을 지도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만(119쪽), 『새마을운동 이렇게 시작됐다』의 저자 고병우 전 장관이야말로 박 대통령 못지않게 오로지 새마을운동을 위해 공무원이 된, 새마을운동의 ‘언성 히어로’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대학 강사를 하던 중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직속 ‘국민경제연구회’ 전문위원으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농림부 과장과 국장, 청와대 경제비서실, 재무부 차관보 등을 거치며 1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했다.

일흔 넘은 농촌 출신들은 혹시 기억할는지? 아직 ‘새마을 노래’도 ‘나의 조국’도 없던 1969년부터 3년 동안, 아침 여섯 시에 ‘애국가’가 나오면 곧바로 “안녕하십니까, 고병우입니다”로 시작하던 KBS라디오 ‘오늘의 농정’의 그 고병우 국장이다.

박 대통령 서거 후 공직을 떠났다가 김영삼 정부 때 건설부장관,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장, 2000년대 들어 한국경영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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