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전교조에 면죄부 준 대법원의 형식논리
[논단] 전교조에 면죄부 준 대법원의 형식논리
  • 장달영 변호사
  • 승인 2020.09.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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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9월 3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관련 주문을 읽고 있다. / 연합

법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법을 무시하고 법에 적대적인 행태로 위법 행위를 저지른 자를 형식적 법 논리로 보호하는 것이 법(jus)의 정의인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0년 9월 3일 선고한 판결에서 다수의견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에 대하여 한 법외노조 통보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판시한 걸 보고 바로 든 생각이다.

대법원 판결이 합법성의 근거가 되는 법률(lex)과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법(jus)을 조화시키지 못하여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판결 ‘이유’의 ‘사건의 개요’ 부분을 차분하게 읽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99년 1월 29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이 제정되고 같은 해 7월 1일 시행됨으로써 교원 노동조합의 설립이 허용되었다. 교원노조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서 교원 노동조합에 해직 교원 등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전교조는 1999년 6월 27일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규약을 개정하고 같은 해 7일 1일 당시 노동부 장관에게 설립 신고를 하면서 개정된 규약을 제출하였다. 노동부 장관은 전교조가 제출한 개정규약을 기초로 전교조가 교원노조법 및 노동조합법상 설립요건에 위배되는 점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음 날 설립 신고를 수리하고 전교조에 신고증을 교부하였다.

그런데 설립 신고 수리 이후 노동부 장관은 전교조의 규약 부칙 제5조에 ‘규약 본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부당 해고된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제1항), ‘종전규약에 의거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던 해직교원 중 복직되지 않은 조합원 및 이 규약 시행일 이후 부당 해고된 조합원도 본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제2항) 라는 조항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전교조가 법이 금지한 비조합원 자격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규약 본문이 아닌 부칙에 포함시키는 일종의 ‘꼼수’를 쓴 것이다. 판결 반대의견은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전교조는 설립 신고 당시 해직교원의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설립신고서에 그와 같은 내용이 삭제된 허위의 규약을 제출하여 설립신고가 수리되었다며 행정관청을 기망하였다고 적시하고 있다.


 

행정관청 기망한 전교조의 꼼수

노동부 장관은 2010년 3월 3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밟아 전교조에 대하여 교원노조법과 노동조합법 관계 조항에 따라 전교조의 규약 중 제55조 제4항과 문제의 부칙 제5조 등을 2010년 5월 3일까지 시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이하 1차 시정명령).

전교조는 2010년 6월 29일 1차 시정명령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1차 시정명령 중 전교조의 규약 중 제55조 제4항에 관한 부분만 취소하고 부칙 제5조를 비롯한 나머지 부분에 관한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전교조의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됨으로써 그대로 확정되었다.

한편 전교조는 2010년 8월 14일 규약을 개정하면서 부칙 제5조의 제1항을 삭제하고 제2항을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규약 제6조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고 개정하였다. 조합원 자격에 관하여 교원노조법 등을 위반하는 법 적대적 행위를 되풀이한 것이다. 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2년 8월 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의결에 따라서 2012년 9월 17일 전교조에 대하여 1차 시정명령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부칙 조항을 2012년 10월 18일까지 시정할 것을 명하였다(2차 시정명령).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3년 9월 23일 전교조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시정하도록 명하였으나 이행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이유로 교원노조법 등 관계법령 조항에 의하여 2013년 10월 23일까지 이 사건 부칙 조항을 교원노조법 제2조에 맞게 시정하고 조합원이 될 수 없는 해직자가 가입 활동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하였다(이하 시정요구).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9월 3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 법적지위 회복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 연합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9월 3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 법적지위 회복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 연합

전교조는 시정요구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았고, 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3년 10월 24일 교원노조법 등 관계법령 조항에 의하여 전교조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였다(이하 법외노조 통보). 이에 전교조는 같은 날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2014년 6월 19일 청구기각 판결이 선고되고 2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전교조의 청구를 인용하지 않는 항소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2016년 2월 1일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사건의 경위와 헌법재판소가 2015년 전교조가 신청한 교원노조법 등 관계법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사실을 합해서 보면, 전교조는 교원노조법 등 관계법령 조항에 명백하게 위배하는 내용이 담긴 규약의 존재를 숨긴 채 행정관청을 기망하여 노조설립 신고수리를 받았고, 합헌적 법규에 위배되는 규약 내용의 시정을 요구하는 관계부처의 적법한 요구를 여러 번 거부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법적 안정성과 법적 평화를 지향하는 법치국가라는 우리 통치구조 내에서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 내지 보호하며 법률에 대한 최종적인 유권해석을 통해 법질서의 확립 내지 법적 평화에 기여하는 법적 평화보장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대법원의 지위를 고려하면(한국헌법론, 전정 9판, 허영, 1056~1057쪽). 법외노조 통보의 법적 성격을 새로운 행정처분으로 볼 것인지, 노조 설립 신고 수리의 직권 취소 또는 철회로 볼 것인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를 새로운 행정처분으로 봤다. 법상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의하여 곧바로 법외노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유로 한 법외노조 통보가 있을 때 비로소 법외노조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행정관청은 행정법의 일반법리에 따라 법률에 명시적 근거규정이 없더라도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그 설립 신고의 수리를 사후적으로 취소 또는 철회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주의적·확인적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해당 시행령 조항은 헌법 제75조에 근거를 둔 집행명령으로서 적법하다는 일부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이 다수의견보다 실질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는 본질적인 사항은 국회가 정한 법률에 규율되어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에 내포된 의회유보원칙의 형식적 측면만을 강조하여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성을 따지기보다는 행정행위의 직권 취소 법리에 따른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법외노조 통보로 인하여 전교조가 입을 기득권과 신뢰보호 및 법률생활 안정의 침해 등 불이익을 비교교량 후 공익상 필요가 전교조의 기득권 침해 등 불이익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강한 경우인지 여부로 따져야 했다(대법원 1986. 2. 25.선고 85누664 판결 등 참조).

전교조는 설립신고 당시 관계법령이 허용하지 않는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정면으로 허용하는 규약의 존재를 숨긴 채 행정관청을 속여 수리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꼼수를 부렸고, 이를 지적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반복적인 시정명령과 시정요구에도 응하지 아니하였다. 법외노조 통보는 시정명령과 시정요구의 거부에 따라서 전교조가 당연히 예견할 수 있었다. 전교조에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기득권 내지 신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노동조합법이 금지하는 비조합원 가입과 활동이 가능해지는 꼼수를 알려졌고, 실제로 가능해짐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법치주의 원리는 법률의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 내지 ‘법률만능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실질적인 법치주의’다. 합법성의 근거가 되는 법률(lex)과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법(jus)을 조화시키는 것이 오늘날 법치주의의 핵심적인 과제라는 점에서(허영, 앞 저서, 150~151쪽), 법률유보의 형식적 측면을 내세워 준법 의지를 보이지 않은 전교조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이 과연 구체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달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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