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반도체 시장 재편의 신호탄 ‘화웨이 고사작전’
[이슈포커스] 반도체 시장 재편의 신호탄 ‘화웨이 고사작전’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9.2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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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서명한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의 미국 내 판매를 봉쇄하는 행정명령이 내년까지 연장되면서 화웨이 옥죄기가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가 서명한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의 미국 내 판매를 봉쇄하는 행정명령이 내년까지 연장되면서 화웨이 옥죄기가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의 미국 내 판매를 봉쇄하는 행정명령을 내년까지 연장하면서 강화된 화웨이 옥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 행정명령은 미국 기업이 국가안보 위험을 가하는 기업들이 제조한 통신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이었던 지난해 발효된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 행정명령은 특정 통신장비 업체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화웨이와 ZTE를 비롯한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을 겨냥했다. 미 상무부는 행정명령 서명 다음 날인 지난해 5월 16일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미국은 그동안 화웨이의 5G 사업을 반대하면서 우방국에 미국의 정보 공유를 중단하겠다는 압박과 함께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을 촉구해왔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월 17일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은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적절한 방식으로 자료를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고 중국의 코로나 대응을 비판하면서 많은 국가가 화웨이를 통한 통신망 구축을 재고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은 통신장비 세계 1위, 스마트폰 2위인 화웨이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으로 제재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8월 17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의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화웨이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를 추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미 상무부가 올해 5월에 발표한 화웨이 제재안을 더 확대한 것으로, 미국이 아닌 외국 회사들이 미국의 기술을 사용해 만든 반도체 칩을 특별한 면허 없이 화웨이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 외국 회사들이 만든 규격품을 제한하는 것으로 화웨이의 부품 조달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미국의 기존 수출규제를 우회하려는 화웨이의 ‘꼼수’를 차단하려는 조치로 해석됐다.

이 조치에 따라 미 상무부는 세계 21개국에 있는 화웨이 계열사 38개를 거래금지 명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베이징, 홍콩,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멕시코 등에 있는 화웨이의 클라우드 사업 부문이 포함되어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화웨이 계열사는 총 152개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추가한 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웨이의 통신 장비가 미국인들을 염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며 국가안보 우려를 거듭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우리를 염탐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에서 그들의 장비를 원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화웨이가 하는 짓을 스파이짓이라고 부르겠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 등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 등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미국이 무서워 화웨이와 손절하는 글로벌 기업들

화웨이가 미국의 주요 타깃이 된 배경에는 중국의 기술굴기 야심인 ‘중국 제조 2025’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로봇·항공기 등 첨단 산업에서 세계 패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강화된 화웨이 추가 제재가 9월 15일(현지시간) 발효되면서 ‘화웨이 고사작전’은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이날부터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도 화웨이와 거래를 끊고 있다.

자신들도 미국의 제재를 받을까 두려워해서다. 대만의 디지타임스는 9월 16일(현지시각) 익명의 반도체 업계 관계자를 인용, 중국계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소리 없이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디지타임스는 “이들 기업은 화웨이에 반도체 판매를 중단한 것뿐 아니라 그동안 협력해온 공동 개발 프로젝트도 중단했다”고 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9월 15일부터 사실상 전 세계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 등 모든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안을 위반할 경우 건당 100만 달러(약 11억7000만 원)의 벌금과 거래 금액의 최대 2배를 토해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제재 위반 시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의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계 반도체 기업들마저 자국 IT 산업의 ‘상징’과 같은 화웨이를 손절한 이유다.

중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제조) 업체 SMIC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미 상무부에 화웨이와의 거래 허가 승인을 요청하고, “미국의 제재를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웨이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SMIC는 그동안 화웨이에서 반도체 설계도를 받아 대신 제조해 납품했다.

SMIC의 매출 중 화웨이의 비중은 18.7%다. 현재 미국은 화웨이 다음으로 SMIC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데 SMIC가 먼저 미국 정부 앞에 바짝 엎드린 셈. IT 매체인 기즈차이나는 16일 “화웨이는 ‘동맹들의 배신’으로 생존이 더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화웨이 고사작전으로 대만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제재 발효를 코앞에 두고 화웨이가 반도체 사재기에 나서면서 대만의 지난달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만 재무부는 지난 8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어난 312억 달러(약 37조 원)로 집계됐다고 9월 7일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이 대만 경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의 평균치인 0.8% 증가를 크게 웃돈 결과다. 반도체 등 전자부품이 19.1% 급증해 125억 달러어치 수출됐다.

재무부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재택근무, 원격수업 확대 등에 따라 해외 기업들의 전자부품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 핵심 칩 생산을 맡겨온 화웨이가 미국의 추가 제재 발효 시점(9월 15일)을 앞두고 주문을 대량으로 넣었다는 분석이다.

TSMC는 지난 미중 무역전쟁 당시만 해도 끈질기게 화웨이와의 동맹전선을 유지했으나 코로나와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를 겪으며 미중 갈등이 커지자 미국 공장 건설을 매개로 완전히 미국의 편으로 돌아섰다. 한편 대만 시장정보업체 트렌드포스는 9월 22일 올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량을 1억7000만 대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5월 전망치 1억9000만 대보다 더 낮은 것이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전략도 일관되게 진행 중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추구, 이를 바탕으로 자국 기업의 보폭을 넓혀주는 쪽으로 가동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로 최악의 상황에 몰린 화웨이는 아직까지는 미국의 제재가 자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식으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도 미국이 화웨이와 텐센트 등 중국 IT 기업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자 반격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9월 19일 ‘신뢰할 수 없는 실체(법인과 개인) 명단 규정’을 공개하고, 이를 즉각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위협이 되거나 중국 기업에 차별적 대우를 해 피해를 발생시키는 외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판 ‘블랙리스트’로,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이어 9월 20일 메신저 ‘위챗’을 서비스하는 텐센트에 대한 제재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셈이다.

문제는 우리다. 이 같은 미중 갈등으로 한국의 입지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디에 설지 선택을 강요받을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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