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삼성 회장 추모] 초일류 DNA 심어준 기업인 이건희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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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10기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11.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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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연예계와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면서 그보다 더 치열하고 불가역적인 상업세계에서 분투하고 있는 기업인에게는 공감이 없는 사회이다.

기업은 국가와 국민이 다 키워줬고 수출은 당연히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 기업 경영을 ‘금수저’ 물고 나온 사람들이 자기 재산 지키는 정도로 여기는 사회, 기업인이 사망하면 상속세로 그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윽박지르는 사회가 우리의 얼굴이다.

이건희는 누구인가? 직설과 은유, 눌변과 열변, 은둔과 절대적 존재감, 온유와 격정. 도저히 양립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그다. 그의 최대의 기여는 세계인의 손에 ‘made in Korea 스마트폰’을 쥐어줌으로써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것이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 도전과 혁신을 통한 삼성의 초일류 DNA를 세계인의 뇌리에 심었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국적이 이탈리아인 것을 안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통령 이름은 모른다. 마찬가지다. 갤럭시 스마트폰이 삼성에서 제조된 것이며, 한국산이라는 것을 세계는 안다. 세계인의 한국 인지 및 충성(Fidelity and Royalty to Korea)에는 그의 기여가 결정적이다. ‘신비주의’와 ‘미화’를 배격하고 기업인 이건희를 있는 그대로 보자.
 

삼성전자의 운명을 바꾼 카이로스(kairos), ‘프랑크푸르트 선언’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 6. 7)은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은둔과 경청으로 일관해온 이 회장을 ‘광장의 무대’로 밀어 올렸다. 장장 4개월에 걸쳐 1800여 명의 임직원을 상대로 하루 최장 16시간 열변을 토해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조직에 대한 울분, 선진기업과의 격차에 대한 한탄, 그러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향해 열망을 쏟아냈다. 그는 “삼성은 말기 암환자다. 처자식 빼놓고 다 바꿔라”는 화두로 승부수를 띄웠다.

신경영이 선언된 1993년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이자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세계화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의 분수령이었다. 그는 세기말적 변화를 앞두고 초일류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예견을 가졌다. 그는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질(質) 경영’이라는 실천적 메시지를 던졌다. “3만 명이 제품을 만들고 6천 명이 사후관리(After service)를 해서 무슨 경쟁력이 있겠냐”고 삼성전자를 질타한 것이다.

왜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했을까. 일본을 굳이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일본은 벤치마크(benchmark) 대상이자 경쟁대상자이면서 종국적으로는 극복 대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일류기업으로서의 내공을 쌓을 때까지는 최대한 숨을 죽일 필요가 있었다. 도광양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경영 선언은 시기적으로도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건희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삼성의 신경영 전략은 10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삼성은 D램·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모니터 등 19개 제품을 세계 1등으로 만들었고 휴대전화 애니콜을 세계 ‘톱3’로 끌어올리는 등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신경영은 그룹 내 ‘삼각편대식’ 역할분담을 통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젠더(agenda) 제시와 기획 그리고 실행’의 삼각 역할분담 구조가 그것이다. 아젠다 제시는 이건희 회장이, 그룹 차원의 실행계획 마련은 구조조정본부가, 현장에서의 실천은 계열사가 담당함으로써 실행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신경영에 대한 논리개발과 이론화 작업을, 삼성인력개발원은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신경영의 기업문화 확산을 담당했다. 이로써 ‘비전-전략-실행’이 정렬되었으며 신경영에 대한 기업문화가 구성원 간에 ‘공유’될 수 있었다.

지도자는 직관에 기초한 선견지명을 가져야 한다. 선견지명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1997).의 저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클레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불행하게도 신(神)은 데이터를 오로지 과거를 분석하는 데만 유효하게 창조했다.
 

대구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택 인근 주민들이 이 회장을 기리고자 자발적으로 마련했다. / 연합

삼성의 DNA ‘속도경영’과 ‘위기경영’

미래를 보는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분석을 끝내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쯤이면 이미 세상은 변했다. 데이터 없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완벽한 직관력을 가진 리더를 가지고 있든지,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최고경영자는 ‘데이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아무리 분석을 잘해도 그저 과거의 지표일 뿐이다. 직관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다각화 전략’을 선택했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전문가와 정책당국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의거, 주력산업인 메모리반도체 이외의 사업을 정리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 경영이 IMF 외환위기를 가져온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반도체, 휴대전화, 디지털미디어, 가전 등 각 사업을 고루 갖추는 ‘수직계열 및 다각화 전략’을 선택했다. 다양한 사업부문으로 이익구조를 분산시킨 다각화 전략은 불황기에 진가를 발휘했다.

이 같은 사업 다각화는 완충을 넘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제품들이 융합하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기업이 되었다. 반도체에 특화하지 않은 것도 이건희 회장의 판세를 읽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작품이다. 하지만 선대회장 사후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더 속도를 냈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하는 쪽이 이기게 돼 있다.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통상적으로 일본 업체들은 경기침체기에 투자를 줄였다. ‘고용된 사장’이었기에 밀어붙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반대로 움직였다. 경기회복기를 대비해 오히려 공격적 투자에 나섰다. 설비가격이 싸지는 경기침체기를 투자 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경기회복기에 투자를 늘린 일본 업체들은 제품이 생산될 쯤에는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되었다. ‘오너(ower) 경영’이 진수를 발휘한 것이다. 오너는 ‘직관에 기초한 선견지명’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삼성이 소니를 압도한 ‘분기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이 남아 있던 2009년이다. 2009년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4조2300억 원)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주요 9개 업체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일본 기업의 패배는 ‘기술력’이 아닌 ‘경영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의 성공은 장치산업의 특성을 꿰뚫은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의 승리였다.

이건희 회장은 ‘위기론’을 제기해 경영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03년 신경영 1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 잘나가기 때문에 과거와 단절하기 어렵고 자만해 변신의 기회를 놓칠까 두렵다”고 말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40주년(2009. 10. 30)을 맞아 “산업의 주도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미국에서 시작한 반도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고 머지않아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도전은 멈춰서는 안 된다. 자만과 안일에 빠지면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삼성전자를 담금질 했다.

‘구매의 예술화’는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어낸 말이다. 조립산업은 원가의 80%가 구매원가이기 때문에 협력업체를 잘 육성해 질을 높여야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달만 하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협력업체에 베풀면서 도움 받는 관계 구축을 통해 양질의 부품을 싸게 신속히 구매하는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는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가 조직되어 있다. 일종의 ‘자생적 조직’이다.

이 회장이 강조한 납품업체와의 공존체제는 협력포털(Collaboration Portal), 공급망관리(SCM) 등으로 시스템화 됐다. 협력포털은 구매-제조-물류-판매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결, 재고를 없애고 SCM과 연계해 협력회사가 모회사의 실질적인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마케팅 정보 등 핵심정보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보안이 필수적이고 서로를 믿지 못하면 협력포털은 기능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협력포털과 SCM을 통해 협력업체에 ‘성장의 사다리’를 제공했다. 삼성전자도 협력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정부에 의해 종용된 상생협력이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한 상생협력이 이뤄진 것이다.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하여 삼성 깃발을 흔드는 고 이건희 회장 / 삼성 제공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하여 삼성 깃발을 흔드는 고 이건희 회장 / 삼성 제공

‘구매의 예술화’로 승화된 상생경영

이건희 회장은 영화 ‘벤허’ 매니아로 알려졌다. 보는 관점을 달리해 벤허를 여러 차례 봤다고 한다. 영화 ‘벤허’에서 얻은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그는 전차경기에서 ‘벤허’와 ‘메셀라’의 말을 비교한다. 메셀라는 말에 채찍을 휘둘렀지만 벤허는 채찍 없이 말을 달리게 했다. 채찍을 맞은 말은 빨리 달렸지만 끝에 가서는 주인에 순종하지 않는다.

채찍의 고통 없이 자발적으로 달리는 말을 이길 수가 없다. 그는 “인센티브(incentive)란 인간이 만든 위대한 고안 중의 하나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기게 한 요인”이라는 점을 사장단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은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그는 경제학자 이상으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 고유의 본성을 꿰뚫어 봤다. 인간의 동기와 유인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정통하다. 자기가 자기를 잘 안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의 문제’와도 연결이 돼 있다.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가장 잘 아는 본인 자신이다. 그는 구성원이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철저하게 견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회장과 같이 ‘업의 본질’을 강조했다. 업의 본질을 알아야 불필요한 외연 확장을 피할 수 있고 핵심에 충실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품질경영도 ‘업의 본질’을 꿰뚫은 결과이다. 그는 구성원이 ‘업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고 성찰하도록 독려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올라설 때 이미 ‘초일류기업’을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 초일류 기업은 초격차로 자연스럽게 진화했다. 그리고 그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진다. 소프트웨어 인력 1만 명을 모으라”고 했다. 지금 이야기가 아니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을 당시 한 말이다.

앞날을 내다보며 준비경영을 강조했던 그는 미래경쟁력이 소프트웨어(SW)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예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삼성전자가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하드웨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다.

끝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이오산업의 미래 수익성과 확장성을 직감하고 섬성바이오로식스를 태동시킨 것이다. 그는 비밀 미션을 줬다. “돈은 얼마를 써도 좋다. 돈에 구애받지 말고 인재를 구해오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2011년 바이오로직스를 태동시켰다.

사가(史家)는 역사는 “창조적 소수의 창조적 생각에 의해” 쓰인다고 말한다. 이때 역사는 굳이 일국의 역사일 필요는 없다. 개인사, 가정사 그리고 기업사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기업사는 창조적 소수의 창조적 생각에 의해 쓰였다. 그 중심에는 이건희라는 거인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 사후, 여러 가지 문제가 현실로 대두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 등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1조 원의 상속세는 역대 최대 규모로, 우리나라 연간 상속·증여세 세수 8조 원대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상속세를 내다보면 기업지배구조도 흔들릴 수 있다.

상속세 납부금을 마련하려면 유족들은 보유주식이나 상속받을 주식을 팔 수 밖에 없다. 유족의 보유주식은 모두 합쳐 14조 원, 상속 주식은 18조 원으로 총 32조 원으로 평가된다. 단순 계산으로 상속세로 11조 원을 내려면 계열사 보유주식의 30% 이상을 매도해야 한다. 매도가 유력한 주식은 삼성생명 삼성SDS 등 그룹 사업포트폴리오나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연부연납제도를 이용해 5년간 분할 납부할 수 있다지만 취약한 경영권을 노리는 해외 투기펀드의 움직임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규제 3법’의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및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경영권이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대기업 최대주주에게 부과되는 상속세 할증률 20%를 감안하면 상속세는 60%로 치솟는다. 명실공히 OECD 국가 중 최고의 상속세율이다.

“삼성 무너지면 한국 큰 타격” 10조 상속세 면제 청원 게시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10월 30일 오전까지 26,089명이 동의했다. / 청와대
“삼성 무너지면 한국 큰 타격” 10조 상속세 면제 청원 게시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10월 30일 오전까지 26,089명이 동의했다. / 청와대

상속세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기업이 성장하는 데 국가의 뒷받침과 국민적 후원의 기여도가 60%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손길이 미친 기업은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해야 한다. 국가가 사실상 자원배분을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 국가는 ‘모국 국적의 글로벌 기업’을 모두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초일류 기업을 자력으로 일궜는데 상속을 기화로 국가가 3분의 2를 걷어간다는 것은 강탈에 다름 아니다. 모든 기업은 2대가 지나면 40%로 쪼그라든다.

당대만 경영하고 사회에 환원하라는 종용이다. ‘상속재산이 불법적으로 축적됐을 것’이란 예단이 있지 않고서는 이 같은 징벌적 상속세율은 설명 불가이다. 촘촘한 법망과 사회적 감시망 속에서 준법경영을 하며 법인세 등을 부담하는 기업가들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자체가 부적절하다. 이는 자기 학대인 것이다.

사회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삼성이 주식을 팔아 총 11조 원의 상속세를 냈다고 치자. 이 같은 상속세 납부로 사회적 형평성이 얼마나 제고될 것인가. 그 같은 과정에서 멀쩡한 기업이 해체됐다면 이런 소탐대실도 없다. 오대양을 누비는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면 오늘 배불리 먹기 위해 모든 종자 씨를 먹어치우는 것이나 진배 없다.
 

징벌적 상속세율 부과와 포스트 이건희

기업은 ‘법인’(legal tender)이기 때문에 세대에서 세대로 그 맥을 이어가는 ‘불사조’인 것이다. 경영실패가 아닌 제도적 요인으로 ‘100년 기업’이 존속되지 못한다면 제도가 그 사회의 잠재력을 착취한 것이다. ‘400미터 계주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배턴 터치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징벌적 상속세 부과는 기업 경영에서 배턴 터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OECD 36개 회원국의 3분의 1이 넘는 13개국에서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스웨덴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이 해당된다. 사회주의 중국 역시 상속세 제로다. 상속세가 있는 나라들도 부담을 완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2018년 상속세 공제한도를 1인당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로 두 배로 올렸고 일본은 가업승계 특례에 고용유지 요건을 없앴다.

한국만 정반대다. 경제 규모가 급팽창했는데도 상속세 과표·세율·공제기준은 20년째 그대로다. 2016년까지는 상속세를 기간 내에 신고하면 세액의 10%를 깎아줬지만 지금은 3%만 빼줘 사실상 증세를 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 세수에서 상속세 비중은 1%에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으로 죽으면 제도적으로 한 번 더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세금이 아니고 미개한 사망 벌칙금(death penalty)인 것이다.

‘상속세율은 높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실물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한 단견이다. ‘래퍼커브’는 경제학의 살아 있는 교훈이다. 세율을 높인다고 세금이 더 걷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화내빈한 것이 상속세이다.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할 의욕을 꺾고 투자를 저해해 악영향이 훨씬 크다. 돌고 돌아 청년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10기 미래한국 편집위원
​​​​​​​신시내티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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