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핵 없는 세상 위한 이니셔티브 주도
카자흐스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핵 없는 세상 위한 이니셔티브 주도
  • 김나희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12.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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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29일 세미팔라틴스크 시 인근의 핵실험장에서 최초의 원자 폭발이 일어났고 마지막 핵실험은 1989년에 이루어졌다. 1991년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나자르바예프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핵실험장을 영구적으로 폐쇄했다.

2009년 유엔 총회에서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의핵실험장 폐쇄를 기념하기 위해 8월29일을 핵실험 반대의 날로 제정하였다. 카자흐스탄은 핵 비확산과 핵 안전을 보장하는 선도국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한 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으나 과감히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

카자흐스탄은 핵 비확산 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비핵화 분야 선도국으로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전 세계 우라늄 매장량의 4분의 1이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1949년 카자흐스탄의 넓은 초원에서 핵무기 시험이 처음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소련은 세미팔라틴스크핵실험장과 연구 기지를 "조국의 핵미사일 방패"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에 대해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는 바와 같이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에서 1949~1989년간 최소 468번의 핵실험이 실행되었고, 616개의 핵 및 열핵 폭발 실험이 있었다. 1963년까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에서 실시된 핵무기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2,5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졌다.

핵실험의 안전성에 대한 군의 보증과 달리 1/3 이상의 거의 모든 지하 실험에서 폭발로 인한 균열에서 방사성 가스가 누출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소련 붕괴 후 소련으로부터 1,2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물려받았다. 카자흐스탄은 독립을 선포한 해에 전략무기감축 협정(START-1)에 가입하고 리스본 의정서에 서명하면서 비핵화의 길을 열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카자흐스탄에 있던 전술 및 전략 핵무기, 무기용 우라늄과 플루토늄 반출 및 제거를 완료하면서 세계에서 4번째로 많았던 핵무기는 제거되었다.

카자흐스탄 독립 직후 핵 억지력을 유지하자는 국제세력과 국내 보수 민족주의 세력의 요구를 거부하고 과감히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 그로 인해 누르술탄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견고한 정치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카자흐스탄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모두를 위한 안보의 중요성을 국제적인 이해를 끌어내는 것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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