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보수, 탄핵의 강을 건너려면
[심층분석] 보수, 탄핵의 강을 건너려면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12.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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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년 12월 9일 박근혜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국회의원 재석 299석 투표에서 찬성 234표로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62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016년 12월 9일 박근혜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국회의원 재석 299석 투표에서 찬성 234표로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62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4년전, 12월 9일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된 날이었다. 국회의원 재석 299석 투표에서 찬성 234표로 탄핵소추가 의결됐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6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계산이 나왔다. 집권 여당의 절반이 자기 당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이다. 국회의원 재석 299석에서 234표 찬성은 78.2%에 이른다. 당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탄핵찬성률은 81%에 달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이후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 선거는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탄핵에 대한 여러 차례 여론조사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찬성하는 응답률은 70%에 달했다.

문제는 현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나 새누리당에서 탄핵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난 탄핵은 그 소추 결정과 헌재 심판과정에서 법에 합당하지 않거나 위헌적 요소가 충분한 과정들이 있었다. 이 문제는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가령, 대통령의 소명 기회를 국회가 주지 않은 점이라든지 법사위가 탄핵 사유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결론을 내지 않고 소추의결을 했다든지,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은 정치적 심판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형사적 판결을 내려 탄핵을 인용한 문제들은 진보적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위헌적 요소들로 거론됐다. 따라서 탄핵은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의 위헌성에 비춰 불복할 만한 사유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들은 ‘박근혜’라는 정치적 토템주의에 막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공론을 국민적 심판에 올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새누리당과 보수는 탄핵을 둘러싼 노선에서 적과 동지의 재질서 확립의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거부하고 위선적 통합만을 고집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것은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당연히 결과는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참패였고 이어 21대 총선에서 대패였다. 국민이 선거로 탄핵을 추인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탄핵의 강은 보수 안에 ‘총선 부정선거, 개표조작’을 또 다른 지류로 삼아 그 심연을 알 수 없는 깊이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박근혜에 매몰된 탄핵의 위헌성

보수 안에 흐르는 탄핵의 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탄핵의 문제를 보수가 정치적으로 사고한다면 탄핵의 절차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헌정을 결정하는 국민주권 원리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법치의 당위성에 따라 탄핵은 수용되고 인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표현이 단지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을 때 보수가 이를 수용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만일 탄핵된 대통령이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이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보수 안에 탄핵의 균열이 그 심연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3·10 탄핵은 박근혜라는 존재와 분리해서 이해할 것을 거부하고 있다. 보수 시민들에게 박근혜라는 존재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녀는 무엇보다 전통적 보수층에서 국부(國父)로 추앙하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여겨온 한국 전통 보수층에게는 산업화를 이룬 반신반인의 영웅이며 그 영웅은 비참하게 서거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들에게는 ‘희생 순국’ 하신 것이다.

그 아우라가 고스란히 박근혜에게 투사되어 있다. 박근혜에 대해 이러한 관념을 가진 보수를 우리는 ‘토템숭배 보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에게는 근대국가의 법치나 헌정원리와 같은 것은 자신이 섬기는 인물 토템에 대해 부차적이다.

기묘하게도 이런 정치적 토템주의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의 유무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토템 숭배 보수는 설령 탄핵이 그 절차성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보다는 숭배하는 토템이 겪고 있는 불행에 초점이 모아진다.

이러한 ‘박근혜 숭배’ 토템 보수는 대단히 집요하고 활동적이며 정력적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보수의 과도한 대표성을 띠게 된다. 선거와 여론조사를 종합해 분석해 보면 수적으로는 대략 30만-40만이며 유권자의 1% 내외다. 이들이 보수 유투버들 가운데 소위 입맛에 맞는 이들을 골라 ‘좌표 설정’으로 시청률을 몰아주고 광고와 슈퍼챗의 후원자가 된다.

이 때문에 탄핵은 국민의 70%에 달하는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조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약 60%가 탄핵을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모순을 만든다. 대체로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하는 TK 기반에서 이러한 탄핵불복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다.

이런 동력이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힘입어 다시 극렬적인 박근혜 토템 보수 진영에 활동력을 고양시킨다. 한마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꼬리가 몸통을 흔들면서 보수 안에 정치적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악순환의 고리는 내년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에서 보수가 다시 패배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선거에서 승리와 패배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믿음과 행위가 더 본질적인 것이고 여기에 기생하는 사이비 유튜버들과 결탁한 ‘정치 비즈니스’로 인한 현금 창출력은 보너스로 얻는 메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타락한 이 세력과 국민의힘이 결별할 수 있느냐는 앞으로 다가오는 중요한 정치적 일정에서 국민의힘이 그 이름처럼 국민들로부터 힘을 얻는 정당이 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있다.
 

탄핵 이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탄핵무효 집회가 열렸다/. 연합
탄핵 이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탄핵무효 집회가 열렸다/. 연합

보수의 정체성 회복이 관건

보수가 탄핵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보수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 함께 역사적 경로를 고려한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의 보수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형성되어 왔고 시대정신에 따라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 왔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건우 대전대 국문학과 교수가 최근 집필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김건우 교수는 한국적 보수(우익)의 기원을 건국에서 좀 더 멀리 나아가 1919년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상해 임시정부로 확장한다.

김 교수는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친일과 공산주의라는 저항적 요소를 극복한 인물들이 대한민국에서 현실적으로 활동한 설계자들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먼저 일본에 의해 친일에 동원되지 않은 젊은 학병세대들로서 당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대륙문화와 상업문화의 한반도 전달 지역인 평양과 개성을 중심으로 한 서북 출신들이라는 보다 넓은 관계망을 가졌으며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인들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공유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호명한다면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백낙준, 장기려,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류달영,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며 이들의 사상적 선배로는 이들 ‘진짜 우익’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류영모, 함석헌, 김재준 등이 있고 그 후배들로는 천관우, 이기백 등이 속한다.

이들은 선배 세대인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과 달리 친일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웠고 또한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주로 이북 출신으로 남쪽을 택한 사람들이기에 반공 문제에서도 의혹이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정치, 언론, 교육, 종교, 학술, 사상 각계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이들이기도 했다.

물론 김건우 교수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김건우 교수가 호명하는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범 우파로서 활동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우파 계보는 이제까지 우파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을 수 있다는 것이고 왜 이승만 정권에서 4·19혁명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반대 투쟁이 있었는지 전후 우파 세대들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제국 일본의 교육을 정점까지 받은 엘리트 집단이어서 정치경제적 근대화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불변의 상수에 해당하는 미국 정부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구 지향의 세계주의자였고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4·19혁명과 5·16 쿠데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들은 때때로 정치 현실에 참여하여 박정희 주도 세력과 뜻을 같이하기도 했지만 그 친일적 뿌리에 대해서는 생래적 반감과 꾸준한 의혹을 품었다. 아울러 이들은 ‘제헌 헌법’에 구현되어 있는 상해 임시정부의 중도적 이념에 동감을 표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그려 낸 산업화의 밑그림을 박정희 정권에 제공했으며, 한국적 특수성을 내세워 정치사회적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들 ‘진보 우익’이야말로 정통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었다는 것이 김건우 교수의 주장이다. <사상계>의 장준하와 <동아일보>의 천관우와 <조선일보>의 선우휘가 모두 여기에 속했고 보수적 지사 조지훈과 자유의 화신 김수영이 이 그룹에서는 하나였다.

연세대의 백낙준이 이들을 후원했으며 탈출한 학병이자 <사상계>의 주필을 역임한 고려대의 김준엽은 이들의 화신과 같았다. 이들로부터 배양된 후학들과 신진들 중에는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나 노동주의로 경도된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이 주역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러한 우파의 계보가 YS와 같은 리버럴 정치세력과 결합하면서 87 민주화 체제가 성립한 것이고 보수 우파의 정체성은 이로부터 보다 확장되면서 한편으로는 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의 탄핵은 이 보수 우파의 자유주의적 정체성이 친박의 수구성에 의해 몰각되면서 권력투쟁으로 나아간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탄핵의 강이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면 그 답은 어디에 있을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남은 것은 1%에 불과한 시대착오적인 토템 보수의 도당성이 아니라 99% 국민을 향한 보수 위정자들의 헌정적 결단이다.

국민의힘은 탄핵의 입장을 정리해서 국민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탄핵을 수용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이들과 탄핵을 수용할 수 없으며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들은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에서 국민적 심판을 통해 보수의 정체성은 다시 회복될 것이고 집권을 통해 탄핵소추의 절차적 문제점들과 탄핵심판의 법리적 위헌성들은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사람이 밉다고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이 부당하게 버려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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