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논단] 우파와 5·18... 혐오와 성역의 이중주
[미래논단] 우파와 5·18... 혐오와 성역의 이중주
  • 나연준 미래한국 편집위원·역사연구가
  • 승인 2020.12.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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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구도청 광장에 전시한 ‘518개 표정전’
올해 5월 구도청 광장에 전시한 ‘518개 표정전’

요즘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이나 사실에 관심이 없다. 나의 분노와 소외감, 믿음을 대변해주는 일방적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심리적 평안을 얻고자 한다. 탈진실의 세계에서 이성의 가치는 정서 아래 종속되는 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컨대 음모론이 아무리 복잡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더라도 그 목적은 정서적 안녕에 있다.

5·18 역시 탈진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지극히 빈약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유통되고 있는 ‘대규모 북한군 침투설’이나 ‘광수 몇 호’가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전두환 재판과 관련해 회자된 ‘헬기사격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은 헬기사격설의 도화선이 되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는 헬기사격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같은 보고서 소수의견은 “헬기사격에 의한 탄흔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헬기사격은 아직까지는 하나의 설(說)에 불과하다. 유력한 근거는 전일빌딩 10층 바닥 탄흔인데, 이에 대한 반박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헬기로 추정되는 휴이(UH-1H)는 M60 총기를 거치할 수 없다고 한다. 창문을 열고 M16으로 사격할 수도 있으나 헬기 휴이 기종은 비행시 창문을 개폐할 수 없다. 또한 전일빌딩 10층 천장의 상향탄흔도 문제다. 상향탄흔은 헬기가 보다 낮은 위치에서 사격을 해야 가능한데 휴이는 이러한 고도로 저공비행이 어렵다는 것 등이다.

헬기사격설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동일한 조건에서 헬기사격 실험을 해보는 것도 고려할 만한 방법이다.

북한군침투설과 헬기사격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탈진실의 당파적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 5·18은 좌파의 강력한 상징자산이다. 5·18의 극단적 부정론자들은 이를 파괴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북한군의 대대적 침투와 광수 몇 호 따위로 5.18이 갖고 있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상징성을 일거에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좌파는 5·18을 더 성역화하고자 한다. 성역의 성스러움은 그것을 짓밟은 악마성과 비례한다. 헬기사격은 그 악마성을 증폭시키는 촉매제다. 5·18기념재단이 기획한 도서의 한 구절은 이러한 욕망을 잘 보여준다.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공격한 21일 헬기 사격은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다.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 사격은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5·18기념재단 기획, <너와 나의 5·18>, 216쪽.

한편 5·18을 부정하는 세력과 성역화하려는 세력은 극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 일부 우파가 보여주고 있는 5·18에 대한 부정과 혐오는 여전히 핍박받는 광주를 현재진행형으로 재연해주며 성역화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베 같은 커뮤니티에서 5·18을 ‘오씨팔’로 칭하거나 희생자를 ‘홍어택배’로 부르며 감정을 배설할 때, 5·18은 더 강력한 정치적 상징자산으로 호명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다. 5·18을 부정하는 일부 우파는 음모론과 혐오발언으로 지지와 ‘코인’을 모으고, 5·18을 성역화하는 좌파는 고난의 현재화를 지속적으로 환기시켜 관련 사업을 조직의 생존 수단으로 삼는다. 이와 같은 혐오와 성역의 이중주 속에서 우파는 정치적 명분을 상실해간다. 5·18에 한하자면 좌우는 피해와 가해의 관계로 치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담론권력을 쥐고 있는 좌파는 시종일관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파가 불리한 담론지형에 균열이 보이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은 집권세력으로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들은 대중에게 인정받을 만한 국가발전전략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과거사를 쟁점화해 반대파를 악으로 매도하기 위한 정치투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때 여러 상징자산은 효과적 도구가 된다. 문제는 정치투쟁에 몰두할수록 상징자산의 효용이 빠르게 소진되어 간다는 것이다.

518개 표정전
518개 표정전

좌파 상징자산의 파탄

우선 문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민주화 세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반민주적 통치로 일관하고 있다. 반일주의와 페미니즘가 결합된 위안부운동은 윤미향사태로 위기를 맞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쳤던 민주당은 180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소극적 태도로 일관 중이다. 미투는 이미 선택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이 되었다. 조국사태와 검찰숙청은 노무현이란 상징을 당파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2004년 탄핵의 주역이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SNS에 노무현 영정 사진을 올린 것은 그로테스크하기 까지하다.

5·18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2월 7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5·18 왜곡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이 골자다. 이제 5·18의 이름으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전쟁이 미국의 자작극으로 시작되었다는 한 역사강사의 망언이 사회적 지탄은 받았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이 법이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상징자산을 동원한 좌파의 정치투쟁은 일관된 방식을 보여준다. 우선 희생자와 비극을 앞세우고, 자신이 그들의 대변자를 자임한다. 그리고 반대파를 악으로 낙인찍어 정치적으로 제압한 다음, 승리의 결과를 자신이 독식한다. 세월호, 위안부, 미투, 노무현, 5·18 등등 모두 같은 방식이다. 우파는 이러한 ‘피해의식의 정치화’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그것이 좌파가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국민의힘은 좌파의 정치투쟁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있다. 올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망월동을 찾아 무릎을 꿇었고, 5·18 관련 입법을 약속했다. 방문 직후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신파’라고 조롱했고, 역사왜곡금지법에 찬성하여 그 ‘진심’을 보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망월동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민주당에도 무릎을 꿇으라는 식이다.

우파의 서진(西進)정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 5·18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인류가 성취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넘어설 수 없다. 근대국가의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고 사상적 전체주의와 타협하는 것은 전략도 전술도 아닌, 굴종일 따름이다. 더구나 지금 좌파는 입으로 5·18을 민주주의의 화신처럼 떠받들면서 사실상 전체주의 알리바이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타협이 아닌 투쟁의 대상일 뿐이다.

올해 5월 구도청 광장에 전시한 ‘518개 표정전’을 보자. 수백개 표정그림을 이어붙인 작품 밑에는 ‘학살원흉척결’이라는 붉은 글씨가 씌어 있다. 그중 한 그림은 개의 모습을 한 전두환이 똥을 누고 있는데, 그 똥은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5·18행사주관단체 입장에서 우파정당은 ‘똥의 계보’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 하나를 짚고 가자. 김영삼 정부 시절 제정된 5·18특별법은 12·12와 5·18 주모자와 공범자의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내란 및 군사반란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각종 기념사업과 보상을 가능하게 했다. 즉 지금 5·18 기념사업과 유공자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우파가 집권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행사주관단체는 우파정당을 ‘개똥’으로 묘사한 그림을 버젓이 내걸고 있다. 이와 같은 몰역사적 태도는 상징자산으로서 5·18이 얼마나 당파적으로 소모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파의 정체성에 기반한 서진

좌파가 독점한 5·18은 우파가 망월동에 무릎을 꿇어도 조롱하고 관련 입법에 협조 해도 개똥 취급을 한다. 당분간 우파가 5·18이라는 협곡을 지금처럼 타협적으로 거쳐간다면 서진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아류는 원조를 이길 수 없다.

우파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호남으로 다가가야 한다. 한국의 우파는 제사와 기념사업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 우파의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은 건국과 부국이며 이를 호남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략 네 가지 정도를 제안할 수 있다.

첫째, 5·18과 김대중이라는 호남의 정치적 상징자산에 대항하기 위해 우파는 근대화와 김성수를 내세워야 한다. 김성수는 토지자산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근대화 경험과 축적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형 젠트리’라고 부를 만하다. 이승만이 건국, 박정희가 부국을 했다면, 김성수는 근대화의 동량을 길러 건국과 부국을 예비한 지도자다.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에 집중된 보수의 상징과 서사를 보다 두껍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인물이다.

둘째, 좌파가 5·18이라는 성역을 정치화한다면, 우파는 산업이라는 세속의 성취를 가장 앞세워야 한다. 광주의 자영업 폐업률은 8년 동안 전국 1위다. 매년 5000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난다. 여권이 새로운 시도처럼 소리높였던 광주형일자리도 완전히 실패했다.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은 15년째 시민사회의 극렬한 저항으로 지지부진하다. 호남에서 좌파가 과거를 들먹이며 공세를 취할 때 보수는 그들이 망친 현실로 반박할 필요가 있다. 망월동에서 무릎 꿇기보다 호남에 산업을 주겠다고 말해야 한다.

셋째, 선거 시기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호남 출신에게 비례대표 25%를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명백히 잘못된 방침이다. 이것은 당내 호남계파를 만들어낼 뿐이다. 좌파는 지역주의 극복을 내건 노무현 같은 정치인과 마산, 창원, 울산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민주노총 지지 후보로 동진정책에 성공했다. 우파 역시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와 같은 정공법을 기반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당분간 우파는 호남지역에서 두 자리수 지지율을 목표로 메시지가 있는 후보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번 총선에서 광주의 우파정당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당장 선거 시기 가용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실제로 광주지역 총선 출마자는 2명에 그쳤다. 더구나 미래통합당 광주시당과 전남도당 상근인력은 선기기간임에도 불구하고 3-4명 수준에 불과했다. 후보와 조직이 없는데 어떻게 선거에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비례할당을 운운하는 것은 기본을 방기한 요행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5·18을 상징자산으로 삼아 돈과 조직을 불려가는 좌파정치인과 시민사회에 대한 정치투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단 일부 우파처럼 상징 자체를 공격하다가 역공을 당해왔던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비판의 조준점은 상징이 아닌 그것을 뜯어먹는 세력과 방식이 되어야 한다. 5·18로 상징조작을 하며 정치적 곡예를 부리는 좌파의 비열함이 선을 넘었다. 우파는 그들과 투쟁을 피할 수 없으며 피해서도 안 된다.

나연준
미래한국 편집위원·역사연구가
중앙대 역사학 박사과정 수료
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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