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대북전단 금지가 놓친 것
[심층분석] 대북전단 금지가 놓친 것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0.12.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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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이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가 남긴 말이다. 이 군사학의 천재가 남긴 명제는 남북이 대치하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적화통일의 의지를 포기한 바가 없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지금 남북 간에는 평화가 아니라 ‘침묵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북한은 대한민국을 향해 체제 혁명전(戰)을 획책하고 있다. 이 전쟁은 치열한 외교전과 함께 사상전과 사이버전, 문화전의 복합적 성격을 띤다. 이를 현대전에서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라 부른다.

대북전단은 이러한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우리에게는 북한인권을 추구하는 미국, 그리고 유엔을 동반자로 하는 외교적 무기였다. 동시에 대북전단은 세계 6위라는 가공할 만한 사이버전 공격력을 가진 북한에 대응하는 우리의 사상전, 체제전의 비례전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러한 수단을 북의 요구에 간단하게 포기해 버린 것이다.

탈북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실행되는 대북전단의 효과는 우리의 생각보다 그 영향력이 강력하다. 그러한 점은 북의 실세, 김여정이 대북전단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던 점, 그리고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이 우리 대북전단에 고사포를 발사하며 대북전단을 계속 보낼 경우 원점을 타격하겠다는 공갈 협박을 가한 사실로도 증명된다.

탈북민인 강철환 전 조선일보 기자는 2010년 ‘북한군은 전단이 날아오는 경우 군인의 외출을 통제하고 전단을 다 회수한 이후 군인들을 외출을 시키고 있으며 지속된 전단 살포로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노출로 인해 북한군의 충성심이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썼다.

또 이 ‘주민들 사이에도 상당수가 전단 내용을 신뢰하고 있다’고도 쓴 바 있다. 실제로 북한군 출신의 탈북민들 가운데는 대북전단의 내용을 보고 북한 체제에 의문을 갖다가 탈북한 사례들이 많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정면 충돌하는 文정부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법안을 12월 22일 국무회의에서 결의했다. ‘북한인권과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美 바이든 당선인 측과 상·하의원들의 날선 경고가 있었지만 청와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심지어 외교부는 강경화 장관의 CNN과 인터뷰에서 여성 앵커가 ‘풍선에 고사포 발사라니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풍선과 고사포 모두 대응이 필요하겠다’로 날조나 다름없는 번역을 달았다가 문제가 되자 ‘단순 오류’라며 사과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 결의는 지난 6월 북한 김여정이 대북전단 문제에 화를 낸 후 4시간 만에 文정부가 전격적으로 금지 시행 의지를 밝힌 것이어서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오명마저 뒤집어썼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 정치권을 비롯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세계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반박하고 있지만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미 의회에서는 내년 초 이 문제와 관련된 청문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 확산’을 목표로 미 국무부, 의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비영리단체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슈먼 회장은 12월 22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은 (한국) 통일부 차관이 말한 것처럼 더 효과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촉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가 낸 논평 역시 취지는 같았다. 미 국무부는 “북한으로 자유로운 정보 유입을 증대시키는 것은 미국의 우선순위 사안”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는 만장일치로 통과된 북한인권법을 바탕으로 북한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 확보에 큰 노력을 들이고 있다.

대북 라디오방송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다음달인 2018년 7월 20일 서명한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H.R.2061)’에는 기존보다 대북 정보 유입 수단과 내용을 더 다양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북한으로 보내는 정보의 내용도 미국과 한국, 중국 등 해외 대중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 문화 부문으로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대북 정보 유입을 북한인권 개선에 관한 문제로 다루면서 관련 예산도 꾸준히 늘어 연 1000만 달러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이러한 대북 정보 유입 정책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과거 김일성-김정일 체제와는 달리, 주민들의 우상화에 대한 신념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기초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북한의 지도자로 올라선 김정은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에 대해 ‘햇내기’라는 말이 감시망을 피해 널리 유포되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들은 전한다. 여기에 지난 미북 정상회담의 실패로 인해 군부와 노동당 사이에 김정은의 역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식의 무규칙 게임이 아니라 민주당 전통의 방식인 ‘민주주의의 보급과 확산’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점에서 대북전단은 대북방송과 함께 바이든 정부의 중요한 대북 정책일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년 초 미 의회에서 개최될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금지에 관한 청문회는 한미관계에 적지 않은 갈등을 줄 가능성이 높다.

대북전단의 외부정보효과는 북한의 대남 사이버 전력과 비교해 평가되어야 하는 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단을 금지한 이유로 ‘남북합의서 위반’과 ‘주민 안전’을 들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있을까.

文정부는 적어도 대북전단금지법을 결의하기 전에 북한의 가공할 만한 사이버 테러와 남남갈등 선동의 위협을 중단할 것을 북에 촉구하고 이를 전제로 회담을 제의하든지 했어야 옳았다. 북의 대남 사이버 심리전과 테러는 이미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은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대북전단을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연합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은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대북전단을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연합

세계 6위의 北사이버 전력에 맞설 대북전단

국방부의 ‘2018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사이버전 인력은 68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6년 전인 2013년의 3000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미 의회 산하 연구단체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의 3국, 즉 121부대는 ‘사이버 지도국’으로 불린다.

이 조직 내 하부조직은 각각 다른 임무를 맡아 수행하며 110연구소에서는 ‘사이버 해킹’ 연구가 이뤄지고 91부대에서는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정보 탈취 방법에 대한 연구 등이 진행된다. 이 가운데 핵심부서 중 한 곳인 180부대는 국제금융시스템을 해킹해 돈을 훔치는, 이른바 ‘외화벌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사이버 보안회사인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북한 해커집단이 데이터를 훔치기 위해 목표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2시간 20분으로, 4시간인 중국을 훨씬 앞지르며 러시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사이버 전문기관 ‘테크놀로틱스’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북한의 사이버전에 대한 의지는 세계 2위, 사이버 공격 능력은 세계 6위, 그리고 사이버 정보평가 능력은 세계 7위에 달했다. 아울러 미국의 인터넷 매체 ‘복스’는 지난 2017년 북한을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이란과 더불어 사이버전 능력을 갖춘 7개국 중 하나로 보도하기도 했다.

2017년 5월부터 사이버 공격을 통해 배포된 가상화폐 해킹 ‘워너크라이’는 99개국의 컴퓨터 12만 대 이상을 감염시키면서 40억 달러의 피해를 발생시켰다. 당시 백악관은 사이버 공격 ‘워너크라이’의 배후로 북한을 공식적으로 지목했다.

지난 5월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 탈북민단체 대표 A씨는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 황당한 사건을 경험했다. 자신이 쓴 적이 없는 이메일이 캡처되어 유포되고 있었는데 내용은 본인이 다른 탈북단체 대표 K씨를 협박하고 모함하는 것이었다.

이에 A씨는 사이버 수사대에 이를 신고했고 수사 결과 A씨의 이메일이 해킹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정작 충격적인 것은 그 해킹 수법이 북한 사이버 부대의 기법과 동일했던 것. 이후 대공 수사를 통해 이러한 해킹 메일의 피해를 입은 탈북민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의소리(VOA)방송은 지난해 북한 사이버부대 ‘121국’이 외교, 통일, 안보 분야 종사자나 북한인권운동가,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정보탈취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해킹 조직이라고 보도했다. 3월에도 121국은 ‘000 위장 탈북 증거’라는 파일을 전자우편에 첨부하고 실존 탈북민을 사칭해 한국 내 공격 목표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실존 탈북민들과 관련된 정보를 활용해 공격 대상자들이 악성 파일을 내려 받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와 관련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前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최근 연구 논문에서 북한의 사이버 공작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유 전 원장은 “사이버상 통일전선 구축을 위한 북한의 공작 방식은 크게 3가지 형태를 띠고 전개됐다”며 “첫째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선전선동 사이트 내용을 ‘퍼나르기’ 해서 남한 인터넷에 확산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즉 프락시 서버를 이용하여 IP를 제3국으로 변경한 후 북한 사이트에 접속해 선전선동 내용을 실시간으로 국내 인터넷에 유포하는 것이다.

이어 “둘째는 소위 ‘1:9:90 법칙’이라는 방법을 통해 순식간에 인터넷에 확산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면서 “이는 북한 요원 1명이 인터넷에 선동 글을 게시하면 북한추종세력 9명이 실시간으로 퍼나르고 90명이 보게 해 일시에 퍼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 해킹한 한국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ID가 사용돼 마치 우리 국민이 글을 게시하고 댓글을 단 것처럼 위장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같은 북한 소유 SNS 계정 1000여 개를 활용한 대남심리전 공작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북한은 국내정치에 적극 개입했으며 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특정 정치세력을 낙선시키고 그들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사이버심리전도 전개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특정 정당 찍으면 전쟁난다’란 구호를 인터넷에 확산시킨 사례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원장에 의하면 북한은 사이버심리전 외에도 남한 사회의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사이버 드보크(Dvoke)’라는 신종 연락수단을 만들어 간첩 교신을 하면서 친북 성향의 사이트·카페·블로그·페이스북 등과 연계해 사이버 상에서 광범위한 통일전선 구축 공작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과 테러 공세에 방어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영향력을 가진 대북전단과 같은 사상전, 체제전의 수단을 포기한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국민에게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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