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한국 요양원의 딜레마
[이슈포커스] 한국 요양원의 딜레마
  • 예현수 성남시의사회 계약의사 지역협의체장
  • 승인 2021.01.08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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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요양원 입소자 중 1/3은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고 요양병원 입원환자 중 1/3은 요양원으로 와야 한다. /본문중
통계에 의하면 요양원 입소자 중 1/3은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고 요양병원 입원환자 중 1/3은 요양원으로 와야 한다. /본문중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원 입소자 건강관리를 위해 계약의사(촉탁의사)가 월 2회 이상 시설을 방문해 입소자별로 진찰을 실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2016년 계약의사 운영규정이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계약의사 운영규정이 개정되면서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은 계약의사 추천을 지역의사회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요양원과 계약의사가 임의로 계약을 맺고 활동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었는데 가장 큰 부작용은 계약의사를 업으로 삼는 기업형 계약의사가 나타나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이었다.

현재는 의사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지역의사회가 관여하면서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의사회 조직이 결성되지 않은 낙후 지역에서는 감시활동이 없는 틈을 타 기존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계약의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요양원 운영의 문제점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 과도한 약물 사용을 들 수 있겠다. 치매환자들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과 말이 과격해 말썽을 빚는 경우에 요양보호사들이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초기 치매에는 향정신성의약품 한두 가지로 조절이 되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약의 가짓수가 증가하게 된다. 언론에서 과도한 약물 사용에 대해 보도되는 것을 봤지만 계약의사의 입장에서 판단해 보면 약물 과다 사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으면 요양보호사 수를 늘리거나 환자 밀집도를 낮추면 되지만 추가 비용이 상당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요양원이 병원화되는 것이다. 요양원의 원래 취지는 치매나 중풍 등 경증 질환자들이 입소하는 곳이고 가정을 대신해 요양 인력이 공동으로 돌보는 장소이다. 그러나 보호자들이 보기에 요양원에 간호사와 계약의사가 있다고 하니 언뜻 보면 병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병원에 준하는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요양원의 현실은 상주하는 의사도 없고 전문의료장비도 없으며 의료법에는 요양원에서 의료행위를 못하게 규정하고 있고, 몇 가지 예외 규정을 둬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세 번째 문제는 가정간호사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와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원래 가정간호사제도는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퇴원하면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일정 기간 가정간호사를 파견해 동일 질병으로 가정에서 치료 받을 수 있게 만든 제도인데 요양원에 확대 적용하면서 요양원이 거의 중환자실처럼 운영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료법에 의해 간호사나 계약의사라도 요양원에서 검사와 처치를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간헐적으로 요양원을 방문하는 가정간호사가 영양수액제 주사, 혈액검사, 요도관 및 비위관 삽입 등 와상환자 처치를 가능하도록 했다.

와상환자가 요양원에 있게 되면 문제점인 이유는 면역이 떨어져 있어 수시로 폐렴 또는 요로감염에 걸려 급하게 검사 및 항생제 투약을 해야 되는데 적절히 대응할 수 없고 특히나 코로나 상황에서는 종합병원으로 이송하려 해도 발열환자를 받으려고 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와상환자가 감염병에 취약하니 폐쇄된 공간을 같이 이용하는 비교적 건강한 다른 입소자에게도 전염시킬 수 있어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요양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통계에 의하면 요양원 입소자 중 1/3은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고 요양병원 입원환자 중 1/3은 요양원으로 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와상환자 및 중환자가 요양원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요양원 입소자는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고 요양병원 입원자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나 환자 비용 부담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단지 요양병원 입원 시 간병인 고용비용을 환자 보호자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간병이 필요한 경우 간병비 추가 부담이 없는 요양원을 선호하게 된다.

현재 몇 군데 국공립병원에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범시행 중인데 이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자리를 잡을 수만 있다면 간병 비용을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위의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지만 간호인력 충원과 의료비 인상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네 번째, 개별화된 서비스가 안 된다는 점이다. 요양원에는 치매환자뿐만이 아니고 여러 질병으로 인한 기능장애 문제를 가지고 입소하게 되어 각 질병에 맞는 치료 서비스가 제공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치매환자만 따로 입소하는 요양원이 있다면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는 여러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대도시 요양원이 거의 고층 상가건물에 입주하고 있어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에 위치하고 단독건물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산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과 대조된다. 또한 무단 외출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문을 항시 폐쇄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과 폐쇄 병동을 연상시키고는 한다.

침실도 대부분 2-3인실로 구성되어 있어 소음 문제 등으로 입소자 간에 분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전반적인 요양원의 문제점을 개선한다면 더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비용효과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비용대비 더 좋은 대안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급증하는 노인인구와 치매환자, 그리고 요양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와 학계의 공동 대처가 시급하다.
급증하는 노인인구와 치매환자, 그리고 요양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와 학계의 공동 대처가 시급하다.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치매환자가 입소하게 되면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적응하는 데 수주에서 수개월 걸리기도 한다. 입소 초기에 자녀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많이 슬퍼하고 낯선 환경에 불안해한다. 이런 과정에서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적응을 잘 해서 집에 있는 것보다 상태가 더 좋아지기도 한다.

반면에 치매환자를 끝까지 자택에서 자녀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반드시 효도인 것인지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대부분의 치매환자들은 가족과 함께 있으면 갈등을 빚고 외톨이가 되기 일쑤고 와상상태가 되면 전문케어가 안 되어 욕창이 생기기 십상이다.

한 번은 내 병원 단골환자가 중풍 앓는 어머니 왕진을 와달라고 해서 가본 적이 있다. 얇고 딱딱한 요에 뉘어 있어 욕창이 있었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케어가 안 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중풍을 앓으시면서 와상상태가 되었는데, 평소 엄청 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도 냄새 많이 나는 할머니를 자주 가서 돌봐드리기 꺼려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할머니는 긴 세월 혼자 방에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요양원 입소 초기 힘든 시기만 잘 넘기면 전문관리가 안 되고 심리적인 격리 상태인 가정보다는 오히려 요양원이 더 좋은 환경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입소 초기 빠른 적응을 위해서는 요양원을 믿고 한두 달은 보호자가 연락과 방문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재 급증하는 노인인구와 치매환자 그리고 위에 열거한 요양원의 문제점으로 인해 정부와 학계에서 커뮤니티케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령자가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더라도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지역의 요양시설 및 자택에서 계속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방문의료·간호·돌봄·예방·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종합적·포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이다. 케어코디네이터, 운영센터, 동네 병원, 종합병원 및 전문의료인력과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해 고령자의 필요에 맞는 개별화된 관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은 요양원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산재한 각 가정에 방문진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며 치매환자로부터 자유로웠던 가족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결국은 치매환자의 편안한 여생이 우선인가 아니면 치매환자 가족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이 우선인가 하는 철학의 문제이고, 어느 것도 포기하기 쉽지 않지만, 둘 다 얻을 수 없는 딜레마인 것 같다. 일본, 영국, 미국에서도 활발히 연구 및 실행이 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현실과 환경에 맞는 제도로 정착할 수 있도록 연구와 감시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예현수

성남시의사회 계약의사 지역협의체장
중앙대 의대 졸업
전 경기도의사회 보험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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