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성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코로나 위기가 가장 본질적인 것을 깨닫게 해”
[인터뷰] 박성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코로나 위기가 가장 본질적인 것을 깨닫게 해”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1.22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극한의 위기에 몰려있는 가운데, 새해에는 과연 치유와 변화의 희망과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뒤로 하고 새해를 맞아 <미래한국>이 미래세대를 키우는 사역에 앞장서온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박성민 대표를 만났다.

2020 CCC 온라인 여름수련회에서 설교 중인 박성민 대표. 6000여 명의 청년들이 전국에서 참석했다.
2020 CCC 온라인 여름수련회에서 설교 중인 박성민 대표. 6000여 명의 청년들이 전국에서 참석했다.

-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를 맞고 계십니다. 먼저 CCC가 어떤 단체인지 간략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CCC는 1951년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창설자인 빌 브라이트 박사는 2000년 초에 돌아가셨죠. 한국CCC는 김준곤 목사님이 창설했는데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고 귀국해 1958년 11월 3일 한국CCC를 시작하신 겁니다. 얼마 전 60주년을 맞았고 62년째를 맞아 나아가고 있죠. 저는 2003년부터 대표를 맡아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CCC가 배출한 분들이 38만 명 정도 됩니다. <미래한국>을 창간한 고 김상철 전 서울시장님도 저희 CCC 출신이시죠. 정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도 대학 시절 CCC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여럿 나왔고, 법조계에도 여러분 계시고요. 아무래도 가장 많은 분들은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이죠. 학원 복음화를 통해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에 기여해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회적 활동들이 중단됐습니다. CCC에서는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나요?

작년에는 많은 것들이 비대면화 된 해였습니다. 디지털 세대인 학생들이 하나의 전략으로 다양한 앱을 만드는 등 많은 도구를 개발하는 데 시간과 재정을 투자했던 시간이었어요. 앱 같은 경우,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연결하는 ‘크리스천 선배 멘토링’을 의미하는 ‘크선멘’ 앱을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가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에 먼저 진학한 선배들과 연결시켜 줘 멘토링을 하면서 돕기도 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신앙으로 연결되도록 하자는 의미의 ‘크선멘’이에요. 그리고 요즘은 군대에서도 휴대폰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군선멘’이라고 해서 군대에 간 사람들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멘토링 등으로 돕는 앱도 있습니다. 직장을 준비하는 사람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을 연결하는 ‘직선멘’도 있고요.
 

대학생 6000여 명이 코로나 지원금 5500만 원 모금

이러한 다양한 앱을 만들어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희가 비대면 시대에 할 수 있는 전략들이에요. 이런 앱들은 이미 많이 활성화 됐습니다. 수시가 끝나고 난 뒤 일부 대학이 확정된 학생들의 경우는 입학 전부터 진학할 자기 과 기독교 선배들과 연결이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그런 케이스들도 있어요.

또 하나의 계획은 2021년 10월 9일, 10일 양일간 빌리 그래함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이 서울에서 코리아 페스티벌을 합니다. 온라인으로 전국의 많은 교회들이 참여하지만 현장에서는 잠실 올림픽체육관을 빌려 합니다.

제가 준비위원장으로 섬기게 되는데 특별히 10월 9일 한글날은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힘을 모으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CCC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교회와 교단에 있는 대학 청년부들과 연계돼 그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미래세대가 희망입니다.
 

- 젊은 세대들이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대학생 선교를 하면서 그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얼마전 전국에서 6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해 2박3일간 금식기도를 했어요.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학생들이 모금한 돈이 5500만 원이 됩니다. 이 금액 절반 정도를 북한에 온실을 만들어주고 이유식 4000개를 보내주는 일에 쓰기로 했습니다.

어떤 팀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을 파주려고 1400만 원 가까이 모았고요. 또 한팀은 레바논에 2만 달러를 보내려고 모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더 어려워진 그런 나라들을 돕자고 학생들이 마음을 모아 금식을 하면서 자발적으로 그만한 돈을 모은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다음 세대에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신앙의 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과거에는 한쪽에 열심인 사람, 중간에 적당한 사람이 많았고, 또 다른 한쪽엔 엉성하게 다리만 걸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은 제가 보기에는 쌍봉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쪽에 신앙에 열심인 사람이 있고 반대편에는 신앙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많고 중간에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저희는 한쪽 피크, 열심인 쪽 사람을 훈련을 잘 시켜 그들로 하여금 신앙으로 잘 무장하고 자신들이 섬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자는 생각입니다. 그 일을 저희가 하고 있어요.

2019 CCC 전국 대학생 여름 캠프에 1만여 청년들이 참석했다.
2019 CCC 전국 대학생 여름 캠프에 1만여 청년들이 참석했다.

절망의 바닥이 역사의 시작, 어려울수록 깨닫는 것들

- 코로나 팬데믹이 한국 사회와 특히 교회에 끼친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맞아 인간의 과학 문명의 한계를 깨닫는다는 분들도 있고요, 일종의 ‘환난’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시기에 신앙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어려운 시기가 참 신앙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사람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죠. C.S. 루이스도 인간의 절망의 바닥점이 하나님 역사의 시작점이 된다고 표현했어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계획한 것들을 다 못하게 된 이 상황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이 한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속에서 영원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인생에 있어 중요한 우선순위를 바로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요.

키에르케고르라는 철학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을 때다.’ 그런데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런 각도로 생각해본다면 코로나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낫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한국 교회가 마치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것처럼 매도돼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매도됐다는 말도 맞지만 저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교회를 향해 좀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교회가 억울하다, 매도당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세상은 아직도 교회를 향해 달랐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봐야 되겠죠.

세상이 교회를 세상과 똑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이라면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오히려 솔선수범해야 하고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교회와 기독교인은 세상보다 손해 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똑같은 것을 요구하면서 산다면 그게 교회, 복음의 진수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이 너무 세상적인 것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것, 그동안 간과되었던 복음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마음, 십자가의 메시지를 붙잡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교회 속 특정한 그룹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치와 교회를 마구 섞어 놓다 보니까, 그 속에서 교회가 얻은 것 보다 잃어버린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복음의 진수로 돌아오고 기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후 국가와 사회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교회가 점점 사회적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고 있고 대형화 등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했으니 너희도 좇아라’라고 말씀한 경우가 딱 한 번 있는데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실 때였어요. 물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자체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셨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 우리가 서로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이죠.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그분이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를 우리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그러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상 이 추락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또 추락되었기 때문에 원래 복음의 가장 밑에 있었고, 그동안 너무나 깊숙이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면들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도 세상이 잘 돌아갈 때는 교회가 힘을 못 썼었어요. 오히려 순교자의 피가 교회 성장에 역사를 이뤘듯이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찾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감히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 한국 교회와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요?

올해는 어느 영역이든 상관없이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다 행복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나 예외 없이 행복한 사람들이 있어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남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어느 한 사람도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고요. 저는 모든 사람이 서로의 짐을 좀 덜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야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자기 것을 지키려고, 더 크게 가지려고 남의 것을 뺏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사회가 진영 대결로 갈 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갈라질 대로 갈라졌어요. 교회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끼리 서로 너희 교회, 내 교회 이런 구분을 짓기 시작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뿐 아니라 기업도 그렇죠. 이번에 기업을 옥죄는 경제3법이 만들어졌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불만이 있고요. 이런 현상이 다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너무 목사 같은 말이 아닐까도 싶은데, 저는 그게 꼭 기독교적 관점이라기보다 심리학적으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도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행복하더군요.
 

북한 미래세대 위해 젖염소 2000마리 보내

- CCC에서는 북한에 젖염소 보내기 운동 등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압니다. 대북지원 차원에서 오해도 약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요?

젖염소 보내기 운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오해가 없었어요. 하지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죠. 1999년 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잘 아시다시피 북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먹을 게 없었어요. 그때 특별히 북한의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찾았던 게 바로 젖염소였죠.

소젖을 안 먹던 사람들이 우유를 먹으면 유당을 소화 못하는 경우 설사를 해서 먹기 힘들어요. 하지만 염소젖은 사람 젖과 가장 가까워 북한 어린아이들이 먹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작한 게 젖염소였죠. 쌀이나 돈, 물품을 보내는 게 아니라 젖염소를 보낸다고 했던 건 이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염소를 찾기 위해 뉴질랜드 농장에 두 번이나 방문했고 직접 염소를 사와 홍천에서 현지 적응훈련까지 시켜 보냈죠. 이 문제로 북한을 7번씩이나 방문했었습니다.

저희가 가서 초지 조성도 해줬고 사료시설과 우유로 요구르트를 만드는 변환시설까지 다 만들어줬죠. 2000여 마리를 보냈는데 젖염소니까 다 암컷이죠. 지금은 3000여 마리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