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586 여성운동권의 여성운동 배신
[포커스] 586 여성운동권의 여성운동 배신
  • 오세라비 작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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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대 시민사회단체 중 가장 정치사회적으로 성공한 조직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여성인권운동을 내세운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정의기억연대(옛 정대협)’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은 1987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1년에 각각 설립됐다. 여성연합은 창립 후 지금까지 국무총리, 장관 3명, 국회의원 8명을 배출했다. 정대협은 1명의 장관, 2명이 국회의원이 됐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정대협 대표와 여성연합 대표를 두루 역임했다. 이뿐 아니라 여성연합과 더불어 양대 세력인 ‘한국여성민우회’(1987)도 국회의원 3명을 배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간부급들이 단체의 고위직을 돌아가며 맡아 커리어를 쌓은 다음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입성하는 코스다.


정치권에 진입한 이들의 면모를 되새긴 이유는 여성단체들의 활동이 여성노동자, 빈곤여성운동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또한 좌파 여성계 메이저급 단체의 상층부 여성 인사들은 회전문처럼 돌아가며 단체의 대표 자리를 꿰차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대다수가 이화여대 출신이다. 이화여대는 1977년 여성학 강좌를 개설해 서구의 여성해방운동과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수입했다. NL여성계는 반미자주를 외치며 남북분단의 원인은 미국이며 통일을 가로막는 원흉이라는 주장과 동시에 미국식 모델인 급진 페미니즘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들여왔다. 급진 페미니즘과 NL이념이 혼합된 것이 바로 한국식 페미니즘, 즉 K-페미니즘이다.


필자는 과거 열린우리당 당원 활동과 여성운동도 동시에 하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던 여성운동과 NL계열 여성단체의 방향성은 시작부터 달랐다. 노무현 정부 출범 해인 2003년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는(전 여가부 장관) ‘민족과 페미니즘’을 출판해 여성계의 주목은 물론 여성운동 지향점을 제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현백은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였기 때문에 여성단체들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민족과 페미니즘’의 논지는 좌파 민족주의담론과 페미니즘담론의 결합이었다. 한국이 분단국가인 상황에서 앞으로 ‘평화를 통한 통일운동’에 여성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분단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현백의 ‘민족 페미니즘’ 논리는 NL계열 여성단체의 민족자주통일운동 지향점과 맞물려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성연합을 비롯해 여성계는 정현백의 ‘민족과 페미니즘’에 경도돼 학습과 토론회를 활발하게 개최했다. 이때 여성연합 사무총장 남인순, 정대협의 활동가였던 윤미향 등이 함께 토론자로 참석했다. 당시 좌파 여성운동의 방향은 ‘통일운동에 있어 여성운동의 역할’ ‘통일이 이루어지면 북한 여성과 남한 여성운동은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라는 것이 주요 기조였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여성들의 주요 키워드도 북한문제, 통일운동, 페미니즘 이런 식의 담론이었다. 


그때 활동하던 여성운동 간부급들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또는 여성계 상층부 인사들이 됐다. 정대협 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내세웠지만 근저에는 민족주의와 결합한 반일운동 기조가 중심부에 뿌리내린 단체였다. 2003년부터 국내 여성운동은 반미, 반일. 민족자주통일운동에 주안점을 둔 NL 페미니즘 색채가 확연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이 있었다는 인권위 결론이 나오자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으로 불렀던 민주당과 남인순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이 있었다는 인권위 결론이 나오자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으로 불렀던 민주당과 남인순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연합

도덕적 정당성 상실한 K-페미니즘

세월이 흘러 메이저 여성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명실상부한 최고의 정치권력을 움켜쥐었다. 586여성운동권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권력 메인스트림인 586운동권과 파트너십으로 맺어져 있다. 이들이야말로 87년 6월 민주항쟁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정의로운 민주운동 투사들이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독점한 지 어언 30년을 넘어 문 정부 들어 정치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것이다. 민주화운동 완장을 찬 이들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억세게 운도 좋았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 했던가. 한국 사회의 여성운동을 주도한 586여성운동권이 추락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랄까. 586남녀운동권 집단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권력 꼭짓점에 오른 순간,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할 실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들의 ‘정의’는 심각한 불균형과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민낯이 드러나면 날수록 위선과 이중성도 정체를 드러냈다.


올해로 창립한 지 34년째인 여성연합의 여성인권운동 출발점은 반성폭력운동으로부터다. 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처음으로 ‘성폭력범죄의 피해자 보호. 지원’을 목적으로 한 법률이었다. 여성연합을 위시한 여성단체들에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설명이 불필요한 동반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한국 여성운동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 전 시장의 재임 기간 9년 9개월은 좌파 여성단체들에게는 황금기나 다름없었다. 박 전 시장의 서울시정 슬로건은 ‘서울시를 성평등 도시로!’다. 이에 부응하듯 서울시 예산으로 페미니스트 단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성평등 공모사업비’만 보더라도 지원 단체수는 2019년 49개로 지출한 예산은 899,586,990원이었다. 2020년은 50개로 지원액은 978,035,340원이었다. 그랬던 박 전 시장이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여성연합과 박 전 시장은 반성폭력운동의 상징과도 같다. 지난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지 3개월이 채 안 된 시점에 발생한 박 전 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일제히 침묵 모드에 돌입했다.


게다가 정의연 또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2020년 5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가장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던 이용수 씨(93세)의 충격적인 기자회견이 있었던 것이다.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 수요 집회를 없애야 한다.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 (윤미향)국회의원하면 안 된다”는 발언은 30년 위안부 운동을 뿌리째 흔들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위안부 운동은 회계부정 의혹, 윤미향은 8개 혐의로 검찰 기소, 위안부 피해자들까지 등을 돌리며 추락 중이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세상에 알린 김재련 뱐호사. 그러나 여성인권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세상에 알린 김재련 뱐호사. 그러나 여성인권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연합

박원순 사태로 드러난 여성운동의 민낯

여성연합이 중심이 된 여성운동, 정의연의 위안부 운동은 그동안 여성인권운동이라는 명분으로 활동해온 이들 단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30년 이상을 위안부 운동을 포함한 여성인권운동을 해왔으나 이제 한국의 여성운동은 위선적인 이중성과 그동안 쌓였던 갖가지 모순이 동시다발로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좌파 여성단체 전체가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에 충분하다. 


집권당 소속 고위 공직자들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잇달아 터지자 여성단체 출신 여성국회의원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진영논리에 따른 우리 편 성범죄는 침묵하는 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의 슬픈 아이러니랄까. 이들의 침묵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가중시키는 역할까지 했다. 박 전 시장 사건은 발생 5개월 만에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인순 의원을 비롯한 여성연합 대표단, 그리고 서울시장 젠더 특보까지 피소 사실을 유출하며 한 통속이 된 추악한 커넥션이 드러났다.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사들 남인순, 정춘숙, 권인숙, 김상희, 윤미향 의원은 피해자에 대해 침묵과, 2차 가해를 묵인했다. 더구나 남 의원,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명칭을 정하도록 주도했다. 그토록 매달렸던 피해자 담론과 피해자 중심주의는 위선적이고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중적 잣대 용도로 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한 여성운동의 배신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류인 586세대 남녀운동권의 위선과 가식, 불공정, 빗나간 정의, 이중적인 성 윤리 잣대가 빚어낸 숱한 아이러니! 이들의 시대가 마지막 막을 향해 가고 있다. 정의연 30년 위안부 운동도, 한국여성단체연합 34년 여성운동도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이들이 퇴진해야만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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