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원조 탈북자 백기완 선생과 통일 이야기
[포커스] 원조 탈북자 백기완 선생과 통일 이야기
  •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 승인 2021.03.04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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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나라 지킨 백선엽 장군을 제치고 문상할 정도로 유명한 백기완 선생이다. 직함이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다. 선생은 강한 자들과 굽히지 않고 싸웠고 마지막까지 약자를 위하다 갔기에 추앙하고 추모하는 것 같다.


북한에서 살다 온 우리로서 볼 때 남한은 힘이 철철 넘치는 조국이다. 남한의 쓰레기장을 보면 북한의 백화점에서 볼 수 없는 고급품들이 수두룩하다. 음식쓰레기를 보면 북한 식당 수준을 초월한다. 북한의 한 개 리에도 없는 승용차를 매집 그것도 두 세 대씩 가지고 있다. 기업에나 겨우 가지고 있는 트럭도 마찬가지이다. 수만 명을 거느린 북한의 대기업이나 가지고 있을 굴착기 등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장례식 운구 차량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장례식 운구 차량

이런 사회 속의 약자들을 북한 눈으로 보면 천국 속의 가난한 자들이다. 약자라고 해서 정말 헐벗고 굶주리다가 수만 명이 죽는가. 물론 상대적으로 약자이다. 이들을 위한 생애를 바쳤기에 백기완 선생을 존경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백기완 선생에게서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남한의 힘센 권력에 비견할 수 없는 북한 권력에 대한 태도이다. 또 신격화된 그 권력 하에서 노예 신분과 헐벗고 굶주리다 수백만이 아사된 약자들에 대한 입장이 없는 것이다. 백기완 선생도 북한에 고향을 둔 탈북자이기에 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또한 하얀 손수건을 들고 고향에 가려던 평생 통일운동가이기에 그렇다.


통일이 누구 때문에 안되었나. 미국 때문인가. 남한의 강자들 때문인가. 북한의 강자 때문인가. 백기완이라는 불굴의 힘이 편향이 아닌 핵심 과녁을 향했더라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탈북자로서 1999년 MBC에서 백기완 선생과 면담 기회가 있었다. PD의 안내로 이뤄진 의도적인 절호의 기회였다. 원조 탈북자인 백기완 선생이 후배 탈북자에 대한 관심을 조금 가졌다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그처럼 원했던 통일 문제의 근본적 답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보다 훨씬 어려웠던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탈동독인들의 행렬로 증명한다. 또 통일은 남북한의 대출로로서 남한의 약자 문제도 거뜬히 해결한다. 통일은 일자리를 폭등시키기 때문이다. 일자리 이상 약자 돕기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백기완 선생은 기피했다. 보다 센 북한 권력과 가장 약자인 북한 인민, 탈북자에 대해 무관심했다. 심지어 남북한 강자의 속물로 미워했다. “탈북자들은 다 안기부 끄나풀들이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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