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신 받들자는 김명수, 사법부 퇴행의 원인”
“촛불정신 받들자는 김명수, 사법부 퇴행의 원인”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3.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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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

문재인 정부 사법부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이 거센 가운데서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던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2월 22일자로 퇴임했다. 그는 현직에서 법조계 안팎의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미래한국>은 김태규 부장판사와 이메일 를 통해 법조계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김 전 부장판사와의 인터뷰는 퇴임 직전 진행됐다)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현) 김태규법률사무소 변호사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현) 김태규법률사무소 변호사

- 어쩌다가 미스터 쓴소리 판사가 되셨습니까. 현 정권에서 현직 판사로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느 기자님이 기사 속에서 그런 별명을 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제 책을 내는 과정에서 출판사 사장님께서 책 머리에 표현하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서 법적인 견해를 자주 내다보니 그런 표현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제 의견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같이 공명하고 있어서 나타나는 별명인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현직 판사는 당연히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 의견을 말하면서도 가능하면 정치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하였지만, 사안 자체나 사안의 관련자가 정치적인 경우들이 많아서 그것에 법률적 평가만 더해도 결국 정치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권이나 권력자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이 행하였던 법의 위반을 지적하고자 한 것인데, 결국 그것이 그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된 것입니다. 제 글 중에 문재인 정권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정해서 표현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것은 그 특정인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법관들 사이에 쓰는 표현 중에 ‘망실(忘失)법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존재감이 잊혀진 법관이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와 같이 이른바 잘나가는 판사들이 차지하는 그런 요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냥 시골에서 재판만 하면서 그것으로 삶의 만족을 모두 느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구의 관심도 없이 재판만 하며 지내는 그런 평온함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이 들어서고는 도통 참을 수 없는 정도의 법 위반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법조인으로서 참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지요. 과거에도 좌파 정권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러한 정도로 막가지는 않았습니다. 법의 근본을 흔드니 법률가로서 표변(豹變)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긴 것입니다.

평범한 법조인 불러낸 막가는 정권의 막가는 법 위반 행태

- 임성근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하면서 녹취한 대화 내용이 큰 충격을 줬습니다. 대법원장이 후배 판사를 국회 탄핵 대상으로 던지는 모양새나 대화를 녹음한 임 판사의 행위도 일반 국민 눈에는 큰 충격이었죠. 우리 사법부가 예전에도 이랬습니까? 사법부 위기가 유독 김명수라는 대법원장 한 사람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부터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사법부가 예전부터 그랬다는 것은 법원과 모든 법관에게 대단히 모욕적인 표현이 될 수 있고, 또 실제 그러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법관들이 부정하였다면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오늘 정도의 법치도 못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아주 단기간 내에 심각한 퇴행 현상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법조생활도 겨우 23년 정도에 지나지 않아 과거 법조인들이 어땠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경험치의 소회를 말할 수 있을 뿐인데, 과거 판사들이 다소의 엘리트 의식을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판사들 스스로 거짓말을 피할 이유가 되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소망을 담은 해석일 수는 있겠지만, 저는 이번 대법원장의 거짓말 의혹은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대법원장이 정권이나 집권 여당과 너무 끌려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대법원 중앙홀에 와서 ‘사법부도 촛불정신을 받들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대법원장이 별 반론도 없이 화답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법원장 역시도 그것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상징물로 굳어버린 촛불이라는 이미지가 정치와 가장 멀어져 있어야 할 대법원의 심장부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에 의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언급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장에 대한 선례가 없는 파격 인사와 그에 대한 보은도 작용했다고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초대대법원장과 또 한 명의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대법원장이 없었습니다.

초대 대법원장이야 그전에 대법원이 없었으니 당연히 대법관 경력이 있을 수 없고, 3대, 4대 대법원장을 했던 조진만 대법원장은 대법관 대신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니 놓고 보면 차관급인 작은 지방법원의 법원장에서 바로 대법원장으로 중용된 예는 건국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유일합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보은으로 저리 친정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라는 주변의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임성근 부장판사가 녹취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다분히 ‘본질 흐리기’용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물론 임성근 부장판사가 녹취한 것은 법관으로서 적절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신사적 행동에 익숙하여야 할 법관이 상대 몰래 녹취하였다는 그 사실만 놓고 보면 그리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드러난 결과를 볼 때 누가 더 비신사적이었는지를 보면 됩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녹취했지만, 대법원장은 거짓말했습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없는데도 의심하고 녹취를 하면 나쁘다고 당연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보니 그 사람을 의심할 만했고, 그래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 보도를 접하면 일반 국민 입장에선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법원장이 저렇게 거짓말을 잘해? 판사들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저런 사람들이 하는 재판 결과를 어떻게 믿지?’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인 캐릭터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더 크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번 대법원장의 거짓말 의혹과 관련하여 모든 국민들이 법관전체에 대하여 불신의 눈초리를 가지시게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판사들이 법정에서 거짓말이 나오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거짓말한다고 해서 다른 그 사람 말 전체를 믿지 않거나 형량을 강하게 하는 등으로 응징을 해왔는데, 그렇게 거짓말의 저 건너편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법관들의 수장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으니, 국민들이 화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행동한 대법원장 개인의 일탈로 보아야 합니다. 대법원장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법관이 그러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고 불신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대법원장, 그리고 그러한 대법원장을 옹위하는 정치판사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법관들은 법관으로서의 자존심과 염결성을 지키며 거짓없이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행태를 보이는 대법원장과 정치법관들로 인해 법원이 온통 정치판이고 대부분이 그러한 정치판에 휩싸이는 듯이 보이지만, 그래도 숫자로는 여전히 정직하고 성실한 법관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침묵하는 다수로 남아 있을 뿐인 것이지요.

-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와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이 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요, 앞으로 시국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에서 판사가 두 단체에서 활동했는지 아닌지 여부 확인해야 할 판 아닙니까? 그리고 실제 사법부에서 두 단체의 위상은 어떻습니까?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법원안에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무시 못할 수준의 법관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정권이나 대법원 수뇌부의 뒷배를 믿고 법원에서 주도권을 형성하면서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사실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두 인정해도 법관들 전체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소수라고 봅니다. 여전히 다수의 판사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법 적용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 정치 판사들의 자신의 성향과 이념에 충실한 판결로 다수의 국민이 그 공정성에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 부분에 대하여 굳이 그러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도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판단이 나타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정권에 미운자이면 유죄를 하고, 그 반대이면 무죄를 해서 정권을 암암에 도와주는 행태를 하는 법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이지요. 국민들이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그들을 질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국민들보다는 정권을 더 두려워하고, 국민보다는 정권에 유리한 판단을 하려고 들 것입니다.

- 현 정부에서 직권남용죄가 남발되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이 죄가 정치보복성의 느낌이 강하고요. 어떻게 보시나요?

직권남용죄는 원래 형법상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그 위헌성 시비가 있던 범죄이고 그래서 이전에는 그 적용을 굉장히 꺼리던 죄명입니다. 그런데 국정농단이라는 허울로 전정권을 치기 위한 용도로 이 죄의 적용을 남발했다고 보는 것이 저의 솔직한 의견입니다.

- 최근 법원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과정에서 법원 행정처 pc를 사용자 동의없이 강제열람한 걸 야당이 직권남용으로 고발한걸 서울중앙지검이 각하 처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굵직한 불법사건을 김명수 대법원과 이성윤 검찰이 주거니 받거니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느낌입니다.

법원행정처가 개별 법관의 컴퓨터를 영장주의도 위반하면서 강제로 개봉하려 하였던 사건이 있었지요. 그리고 이것을 야당이 직권남용으로 고발을 한 거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가장 흥분하였던 것 같습니다.

2017년 말과 2018년 초경에 일어났는 일인데, 이때 개인적으로 2018년 새해가 밝았는데도 이 일로 분한 생각이 들어 계속 침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며칠밤을 잠을 설치다가 너무 분해 그대로 두다가는 병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미친 듯이 혼자서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글은 써 두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 때까지 법원 내부 코트넷(법원 내부 통신망)은 당연하고 페이스북에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글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결국 그 글을 새해 연휴가 끝나고 2018년 첫 출근할 무렵에 법원 코트넷에 개시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다중에게 제 의견을 표시한 최초의 일입니다. 비록 제 컴퓨터를 압수한 것은 아니지만,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 개인이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적 요구를 법관이라는 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목적을 가지고 파괴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법관으로 살아가는 존재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로 느겼습니다.

그러한 것은 검찰이 그 컴퓨터가 국가에서 제공되었다는 이유로 각하하였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면밀히 수사하여 직권남용까지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 그 때 무혐의 처분을 해도 됩니다.

저도 그러한 법원행정처의 처신이 굉장히 부적절하였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직권남용죄가 되는가에 대하여서는 법리적으로 더 검토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수사에도 나가지 않고, 단지 기기가 정부소유라고 해서 강제로 개봉해도 된다는 접근은 사안의 본질을 보지 않고 적당한 핑계거리로 수사를 피해갔다는 인상을 줍니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언제라도 법관들은 당연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공용컴퓨터도 영장 없이 얼마든지 압수할 수 있게 됩니다. 법관들이 판결문을 작성해 놓은 공용컴퓨터에 저장된 판결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선고전에 얼마든지 압수해서 그 내용을 살펴봐되 된다는 데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말이 되지 않지요. 압수의 대상은 기기인 컴퓨터가 아니라 그 컴퓨터 내에 언어로 표현되고 파일로 저장된 문서의 내용들인 것입니다.

- 일반 국민 입장에선 체감이 확 나는데, 현직 입장에서 양승태 사법부와 김명수 사법부의 차이가 어떤가요?

적절한 양비론으로 평가를 피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양승태 대법원장님께서도 오해될 수 있는 행위를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위헌이나 위법으로 이해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님께서도 거짓 의혹 그자체는 신뢰도를 떨어뜨리는데 심각한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 자체를 어떻게 법적으로 평가할 것인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고려를 한다는 표현을 통해 헌법위반의 행위를, 그리고 법관 개인의 직업의 자유를 제함하는 기본권침해행위를 각각 하였다는 점에서는 법적인 위법이 양승태 대법원장님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균형감 있게 접근하면 적어도 사직은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양대법원장님은 그만한 일로 대법원장의 직에 계섰던 분이 영어의 몸이 되셨고,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그 위법의 정도가 더 중하다고 할 김 대법원장님이 사직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균형도 지키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위법의 정도가 가장 가볍다고 할 수 있는 임성근 부장님도 탄핵가결이라는 불이익을 받으셨습니다. 위법하다는 판단과 함께 법적인 균형까지 고려하면 그 직을 지키시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김태규 변호사의 신간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
김태규 변호사의 신간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

"정치가 삼킨 사법부, 바로 서는 날 오기를"

- 사표를 내셨는데, 혹시 외압으로 그만두시는 거냐 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어렵더라도 판사로서 꿋꿋이 버티고 올바른 재판에 힘쓰는 게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는데, 왜 사표를 내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외압은 없었습니다. 사법부가 정치에 휘둘리고, 법원 수뇌부와 일부 정치법관들이 정권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법원이라도 개별 법관에 대하여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이전에도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들이 마치 이전 대법원에서는 자신들에게 대단한 압력이나 행사한 듯하지만, 그것은 과장이라고 봅니다. 아마 본인들 스스로 의심을 가지고 마치 그러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였을 공산이 큽니다. 다만, 불편한 주변의 눈초리, 가시 돋친 댓글이나 메시지, 누군가 감시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법원에 부담을 주는 듯한 그런 모양새도 싫었습니다.

처음에 법원 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서 몇차례 법원 게시판에 글을 쓰다가, 법원 내에 공적인 공간에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너무 피력하는 것이 불편해서 내 개인 의견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피력하자는 생각에서 법원 코트넷은 피하고 개인 페이스북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그것이 법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봤습니다.

그렇지만, 페이스 북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언론이나 대중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가 현직 법관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표현공간에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결국 법원에 소속된 법관이라는 직업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의견이어서 그 역시도 법원에 누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자유인이 되었으니 그런 미안함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유만으로 사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몇차례 사직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지만, 그래도 잘 버텼습니다. 아마도 총량으로 보아 당시는 구심력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많은 이유들을 작용을 하고 그 많은 이유들의 원심력이 더 커진 탓인 듯합니다.

- 최근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책을 내게 된 계기, 그리고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소개도 좀 해주시죠.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경우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너무 잘못된 이야기를확신에 차서 해요. 그런 것들을 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국민주권이라고 하면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것이나, 또 아니면 프랑스 대혁명 때 삼색을 프랑스기를 들고 총검으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상상해요.

이미 온 세계가 국민주권의 원리를 지배이데올로기로 채택하고 있는데, 아직도 250년 전쯤의 저항이데올로기 시대의 사고와 이미지를 못벋어나는 것이지요. 사람중심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사실은 법치보다는 인치주의의 위험이 있는 용어인데도 그것에 대한 각성 없이 그냥 말이 좋다고 막 쓰지요.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말하면서 전체주의적 질서를 동경하고, 계급적 사고를 하며, 여전히 위정척사파적 국수주의에 매몰된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어떻게 차이나는지 잘 모르고, 마구 편한 대로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러한 것이 대단한 철학이나 사상사를 연구하지 않아도 그냥 법과대학에서 말하는 개론서나 법학과 관련한 교양서 정도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법에 관한 상식들을 쉽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 위안부 판결 등 사법부 판결이 직접 외교에까지 미치는 걸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습니다. 법치와 국가의 문제,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위안부 판결은 아직 1심 판결이 이루어진 상태이고,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없어서 좀 더 기다려서 그 최종적인 판단을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제 책에서 징용공 판결에 대하여 기술한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언급한 의견이 좀 참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판결에서는 오로지 국민의 아픈 감정을 위무하겠다는 생각으로 법의 모든 원칙을 거스르면서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대법원에서 이루어져 더 안타깝습니다. 주심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작성하였다는 말이 언론을 통해 회자되었는데, 만약 그리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판결이라는 것은 건국을 하거나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법을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여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선대의 고통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국민이 하나와 같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안타까움을 해소해주고 싶다는 생각, 즉 피해자의 아픈 감정을 위무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법원칙을 허물면 그 허물어진 법원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는 엉뚱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법관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오만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 정책, 입법, 언론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의 안타까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공명심으로 법의 원칙을 허물고 법치를 흔들리게 하면 안됩니다.

정치가들이 할 영역의 일을 법관이 나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정치의 격랑이 몰아쳐도, 법이 있어 안심할 수 있는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내일을 예측할 수 있고, 불안해 하지 않으면서 평온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상태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법부는 전혀 견제기능을 못하고 정권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의 그런 불안한 인상이 시정되고, 바른 법치가 서는 그런 나라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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