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중대범죄수사청은 ‘정권 보위’용
[전문가진단] 중대범죄수사청은 ‘정권 보위’용
  • 김태규 변호사·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 승인 2021.03.19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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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개혁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개혁을 통해 얻어낸 결과들이 모든 국민이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하거나 답을 내지 못한다. 언제나 개혁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성공적이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식의 개혁’을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개혁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개념 내재적으로 개혁이라는 것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지지 않는데 바꿀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잘 작동하는 제도, 그래서 큰 문제가 없는 제도라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완전한 제도라는 것이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우니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수정하면 된다. 그리고 전면적 개혁이라는 것은 그 제도를 유지하기가 도저히 어려울 때 그 제도를 폐기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정도의 개혁이 일어나려면 그만큼 명백하고 현존하는 문제점이 그 제도에서 노출되어야 한다.


작금의 검찰 제도 개혁이나 그 내용 중의 하나로 논의가 되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이라 함)’의 설치 문제는 그러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할 정도로 현재의 검찰 제도가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뤄진 것과 같이 경찰의 수사권 독립, 고위공직자수사처(이하 ‘공수처’라 함)의 설립, 국가수사본부의 설치 그리고 나아가 중수청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지를 살펴야 한다.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 독립, 공수처 설립, 국가수사본부 설치 나아가 중수청 설치까지 이뤄지면 검찰은 기소청(起訴廳)에 지나지 않아, 사실상 해체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하나의 국가기관을 해체할 정도에 이르려면 그럴 만한 필요성이 보여야 그 당위성을 인정할 수 있다. 검사는 한명 한명이 하나의 관청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헌법 제12조와 제16조에서 검사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공무원이다. 특히 이들 헌법 조항을 통해 영장 청구권을 검사에게 귀속시킴으로써, 강제수사의 중요한 전제 요건인 영장 청구가 검사의 판단으로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 조항은 일응 수사의 중심에 검사가 있다는 함의를 가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헌법상의 기관인 검사나 그 검찰조직을 해체할 때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에 대해 여당의 의원들을 포함한 일단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개혁의 필요성은, 첫째 개혁이라는 막연한 당위를 주장하는 경우, 둘째 수사와 기소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 셋째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 통제할 필요를 주장하는 경우 정도로 정리된다. 

중수청 설치 이전에 고려해야 할 점들

첫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막연히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얼핏 개혁증독증으로 비치기도 하는데, 이렇게 검찰개혁이라는 기치만을 높이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왜 그것을 주장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검찰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검찰개혁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그럼 검찰개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라고 따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특별히 그들의 주장에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


둘째,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다는 데 우선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혹여 세계적인 추세라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중요한 논거가 되기는 어렵고,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설득력을 가진다. 대개 특별한 논리가 없거나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타 국가의 입법례를 거론하는 정도로 자신의 논거를 찾는다. 그러면서 여전히 수사와 기소가  왜 분리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대지 못한다.


실제 수사와 기소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수사의 주체가 기소의 주체가 되면 가장 좋다. 판사와 변호사로 일해본 경험은 있지만, 검사로 일해본 경험이 없어 수사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판사로 근무하던 시절 검사들이 작성해 놓은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조서를 보면서 가졌던 대강의 느낌으로 수사가 무엇일지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검사들이 작성해 놓은 조서들을 보면 때로는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만한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공판검사(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검사)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면 자신은 잘 모르겠고, 수사검사(검찰청에서 직접 수사하였던 검사)에게 확인해 보겠다고 말한다. 


검찰의 업무방식이 경찰에서 사건이 송치되면 그것에 대해 수사검사가 다시 보완수사를 하거나 수사지휘를 해서 기소한다. 공판검사는 기소된 그 사건을 받아 수사기록을 보고 재판을 진행한다. 그래서 판사로서는 수사했던 검사가 법정에 와서 공판까지 진행해 주면 가장 편하다. 수사검사는 직접 수사했으니 수사 내용을 공판검사보다 훨씬 잘 파악하고 있다. 판사가 묻는 내용에 대해 비록 조서에 나타나지 않은 내용이라도 즉시 답변이 가능하다. 


실제로 검찰에서도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 관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요사건에서는 공판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수사검사가 법정에 와서 공판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건은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을 진행하러 왔다는 사실 자체로 판사들도 그 사건이 가지는 비중을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수사를 한 사람이 기소도 하고 공판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그 사건의 공소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럼으로써 선량한 시민의 가해자가 법의 허점을 빠져나가는 것을 더 잘 막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수사검사가 그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공소에도 관여하면 과중한 업무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재판절차만을 전담하는 공판검사를 두고 그 사람에게 공판절차를 맡긴다. 그리고 나머지 검사들은 수사에 전념한다. 다소 개별사건에 대한 충실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수사검사가 수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도모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을 취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건이어서 충실도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사건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만능의 해법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분리는 분리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경찰과 같은 방대한 인력조직과 수사의 전문성 그리고 충분한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검사와 같은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춘 사람이나 기관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찰관들이 모두 검사와 같은 정도의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는 것이 쉽지 않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도 없다. 검사가 강력계 형사와 같이 범인과 격투를 벌여가면서 체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필요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할 정도의 무술 실력, 강한 인내심으로 이어가는 잠복과 범인의 추적, 방대한 인력과 조직력을 동원한 유기적인 수사 등 검찰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찰의 장점이 있다. 조직도 빈약하고, 많은 인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검찰 역시 그 나름의 법적 전문지식을 활용해 수사해야 할 영역이 있다. 나름의 특장이 있고, 수사부터 공판까지 모든 형사절차에서 그 필요에 따른 업무분장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업무분장은 건국 이후 기본적인 형사사법절차로 자리잡고 거의 70년의 세월 동안 굳어져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제한된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고 했고 이것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없는 논거를 대며 맘대로 권한을 배분하려고 한다.


수사와 기소가 구분되어야 하고, 검찰에는 기소의 권한만을 주어야 한다면, 공수처에는 왜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함께 주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 무엇을 주장하면서 최소한의 형식적 논리나 구색은 갖추어야 하는데, 정권에 유리할 거라고 생각되는 조직을 만들 때는 수사와 기소를 한 기관에 주어야 한다고 하다가, 정권에 불리할 거라고 생각되는 조직에 대해서는 수사권을 뺏고 기소권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허울 좋은 구색조차 맞출 생각이 없다. 그만큼 국민과 법조인들을 가볍게 본다는 방증일 수 있다.


셋째,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냥 염치 없이 억지를 피운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검찰이 이른바 국정농단이라는 명분으로 전 정권의 사람들을 공격할 때 그런 주장이 나왔어야 그 주장에 힘이 실린다. 

중대본부수사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권 의원들, 좌로부터 황운하, 최강욱, 김남국, 김용민 의원
중대본부수사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권 의원들, 좌로부터 황운하, 최강욱, 김남국, 김용민 의원

법조인도 못 따라갈 정도의 졸속 추진

전 정권의 사람들에 대해 검찰의 칼날이 예리하게 움직일 때는 찬사를 보내고 세상의 모든 정의를 검찰이 담아내는 것처럼 수선을 떨다가, 그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할 기미를 보이자 검찰권력이 과대하다며 수선을 떤다. 그것을 고운 시선으로 봐주기는 어렵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권에 대해 대단한 권력을 휘두른 것처럼 과장하지만, 정권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정권에 대해 권력을 휘두른다는 표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실제 정권이 부담을 느끼는 사건 중에서 제대로 수사가 마쳐진 것이 드물다. 더는 진척되지 못하고 중단된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검찰을 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말하기 민망하다. 오히려 그러한 검찰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권의 무소불위 전횡에 놀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정권은 자신들에게 칼날이 움직일 듯한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아예 검찰총장을 무력화시켰고, 결국 검찰총장은 버티지 못하고 퇴진했다. 


모든 제도는 영속성을 전제로 한다. 한 번 어떤 제도를 만들면 상당 기간 사용하다가 어느 시점에 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여 변경한다. 그렇지만 제도를 만드는 시점에는 그 제도의 영속성을 전제로 하고 만든다. 제도를 만들 때 이것은 며칠만 아니면 몇 달만 쓰고 그만두어야지 하고 만드는 경우는 없다. 한번 만들어 두고 계속 사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제도를 바꿀 때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맞고, 그래서 제도를 바꿀 때 공청회도 열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수렴하며, 여론도 살피고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렇게 신중하게 접근하여, 제도를 운영할 경우의 장점을 생각하고 또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없는지 예상해보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제도를 만들어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게 되므로, 이러한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근자에 나타나고 있는 사법기관의 제도 변화는 법조인들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만 해도 그것이 가지는 충격파는 법조인의 기준으로 보면 거의 진도 7의 지진에 못지않게 다가온다. 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올해 초 동료 법관들에게 경찰의 수사권 독립으로 조서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형사 담당 법관들에게 물으니 자신들도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한다. 제대로 파악하려면 해당 조문과 관련 자료들을 살펴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관들조차 가지고 있는 법률지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정도로 충격이 큰 변화를 180석의 여당은 별 고민 없이 처리해 낸다. 공수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뿐만 아니라 기소권까지 이 기관에 맡긴다. 또 검찰의 수사권을 6대 범죄로 제한하면서 그 외의 범죄는 아예 검찰에서 뺏어 경찰에 주는 조치를 취한다. 그러더니 바로 중수청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나마 검찰에게 맡겨 두었던 6대 범죄조차 뺏어 경찰에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의 충격만으로도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이런 제도 변경을 이렇게 급하게 추진한다는 자체가 지극히 이례적이다. 역대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서 이만큼 급박하게 제도 변경을 시도했을지 궁금증이 동할 지경이다.


당장 문제가 생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직원들에 의한 땅 투기 의혹이 벌어지자 경찰의 수사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등장한다. 과거 검찰의 수사방식을 감안하면 전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사 수준이라는 비난이 있다. 뒤늦게 정부는 검사 한 명을 파견해 수사를 지원하게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지를 떠나 효과 면에서 그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업무의 숙련도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업무의 효율성도 조직의 구성이나 규모,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의지만 있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에서 제도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 법관 재직 시절에 몇 년 동안 형사재판만 하다가 오랜만에 민사재판을 맡으면서, 처음에 도통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몹시 난감했던 적이 있다. 이처럼 손에 놓으면 몇 달만 지나도 어색해지는 것이 업무이다. 그런 것을 모르고 처음 하는 일을 의지만 있으면 당연히 할 수 있겠지 생각하는 것은 일해보지 못한 자들의 무지한 요구일 공산이 크다. 


안기부는 전문 경찰의 영역이다. 그런데 과거 검찰이나 다른 경찰이 안기부의 업무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은 것은 관할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들을 따라갈 만큼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수사기관의 차별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여기가 미우니 그 권한을 저기에다 주어야겠다는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그냥 무지에 악의를 더한 것이다.

관훈클럽에서 답변하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집권 여당의 주장과 달리 수사와 기소를 독점한다.
관훈클럽에서 답변하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집권 여당의 주장과 달리 수사와 기소를 독점한다.

정치적 목적에서 탄생 한계 

검사는 독임제 관청이라고 부른다. 검사 한명 한명이 독립된 관청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준사법기관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니 혼자 정치적인 외풍으로부터 자유롭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면서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실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위법한 행위를 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수사가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경찰과 피의자 사이의 중간자의 지위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마치 검사와 피고인의 주장을 들어 법원이 판단하는 것과 유사의 구조로 경찰과 피의자 사이의 주장에 대해 기소 전에 그 전문지식으로 당부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대범죄수사청은 그 전체가 하나의 기관이고, 그 기관 안에 있는 수사관 하나하나를 독립된 관청으로 볼 수 없다. 당연히 행정조직의 위계질서가 강조되고, 상명하복이 검사들보다 훨씬 강하게 요구된다. 또 검찰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없으니, 정권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바로 수사기관에 미치게 된다. 물론 정권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바로 주입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정하고 정치적 고려가 없는 수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권은 계속하여 검찰의 제도 변경을 추진한다. 개혁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수사와 기소를 왜 분리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존재 여부가 불투명한 무소불위의 권력이 검찰에 있다고 가정하면서 검찰의 힘 빼기를 시도한다. 공수처에는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주면서 검찰은 기소권만 가져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외관조차 맞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도를 바꾸고 돌아서면 제도를 또 바꾸는 행태를 보이며 제도의 신중성 같은 것은 애초 고려의 요소가 아니다.


이런 엉뚱한 제도의 개악을 추진하는 이유는 그리 어려운 데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검찰이 정권 초기와 같이 전 정권을 치는 데만 주력했다면 애초에 등장하지 않았을 소란이 아닌가 생각된다. 검찰이 법률가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버린 채 정권의 주구가 되어 정권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줘도 이러한 제도 변경과 검찰의 권한 박탈을 추진했을까 상상해보면, 별로 그랬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나의 가정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게다가 이러한 검찰의 힘 빼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람 중에는 현재 사법 처리가 진행 중인 사람들이 있다. 고운 눈초리로 보기 힘든 대목이다. 


결국 정권에 불손한 눈초리를 보내는 검찰총장에 대해 몹시 분개하며 중수청을 만든다고 하더니, 그런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하자 중수청 설치에 대해 신중 모드로 태도를 변경했다. 결국 정권에 불편하면 건국 이후 70여 년에 걸쳐 정비해온 국가의 기본시스템을 망가뜨려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킨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정권의 보위 외에는 국가도, 국민도, 국가의 기본시스템도 다 협박의 대상이고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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