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젠더갈등? 바보야, 문제는 공정이야!
[심층분석] 젠더갈등? 바보야, 문제는 공정이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4.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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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20대 남성의 ‘오세훈 몰표’ 표심이 젠더갈등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20대 남성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72.5%의 몰표를 던진 이유가 ‘차별받는 이대남(이십대남성)’이라는 반발 심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놀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부랴부랴 20대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급기야 ‘여성도 군대 가는 정책’안까지 나온 상황이다. 

과연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속적인 친여성정책에 반발해 젠더 논리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몰표를 행사한 것일까. 아니면 지난 대선에서 87%에 가까운 문재인 지지를 보였던 20대 남성들이 지지를 철회하던 어떤 문제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약한 고리’를 통해 분출한 것은 아닐까.

이 문제를 분석해 보는 것은 단지 정치 문제를 떠나 세대 간에 이해와 소통을 위한 질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난 2019년 2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특이한 내용을 담은 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현 정부를 향한 20대 남성의 지지율 급락을 분석한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2017년 6월 한국갤럽이 조사한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은 87%에 달했으나 2018년 6월 혜화역 규탄시위 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20대 여성은 민주화 이후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 감성의 진보집단으로 급부상했다”라고 분석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단이기주의 감성으로 무장한 20대 여성 때문에 왜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2020년 경기연구원에서 펴낸 보고서 ‘젠더갈등을 넘어 성평등한 사회로: 오재호·박원익’는 현재의 20대 세대내 젠더갈등의 역사와 원인을 정리하고 분석한 데이터들을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운동계는 2015년부터 온라인, SNS를 중심으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젊은 여성들을 넷페미(Net-Femi)라 칭하며 페미니즘 뉴웨이브를 선언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여성운동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온라인 가상 공간에서 현실의 여성 대중을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2015년 이전에는 여성운동계에서 성평등 의제를 설정하고 활동하면 정치권이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대중을 동원하거나 설득하는 과정보다는 소수 리더와 운동단체가 중심이 되어 여론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이렇듯 ‘자기 대중’을 확보하지 못한 여성운동은 그 한계를 느끼면서 여성을 대중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된다. 

2015년 이후 여성운동은 온라인에서 여성 대중을 새롭게 발견하고 확보하면서 온라인은 여성 의제를 발굴하여 신속하게 공유하고, 실제 활동으로 이어가는 거점이 됐다. 페미니즘과 젊은 여성 대중이 온라인에서 결합한 후 성평등 의제들은 2015년 이전까지와 달리 강한 응집력과 폭발력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투운동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바로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보고서가 언급한 ‘혜화역 사건’이 그것이다.

2019년 2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이 2018년 6월 혜화역 규탄시위 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됐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사진은 2018년 6월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 소속 회원들이 주도한 혜화역 시위 모습.
2019년 2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이 2018년 6월 혜화역 규탄시위 후 급하락 추세로 반전됐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사진은 2018년 6월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 소속 회원들이 주도한 혜화역 시위 모습.

여성운동의 대중성에 눌린 文정부의 공정성

2018년 5월 경찰은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를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동료 여성 모델 안모 씨(25)를 긴급 체포 후 구속했다. 그러자 다음 카페를 중심으로 20대 여성들의 반발성 주장들이 올라왔다.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이 그렇게 빨리 체포해 구속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흔히 남성의 불법 몰카에 의해 여성이 피해를 보고 신고하면 경찰이 늑장 대응을 하거나 무시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20대 여성들이 활동하는 온라인에서 큰 호응을 얻어 1만여 명이 혜화역에 모여 시위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시위에 남성들은 참여가 금지됐다. 여성 참가자들은 빨간 옷을 입고 마스크,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또 ‘동일범죄·동일처벌’,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네’와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발언대에 선 운영진은 “불법촬영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한 경찰, 검찰 그리고 사법부의 경각심 재고하고, 사회 전반에 성별을 이유로 자행되는 차별 취급 규탄을 위해 모였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것은 젊은 여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부추긴 소위 ‘메갈’, ‘워마드’라는 비상식적인 남성혐오 집단의 가짜뉴스와 선동이었다.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남성들을 비하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동원해 공격을 가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일베와 같은 곳에서 이전부터 벌어진 여성혐오에 대해 맞불을 놓는 ‘진영 싸움’의 성격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혜화역 사건은 한국의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에 감정적 냉전이 사회적 이슈를 통해 전선화 되는 첫 단계에 있었지만 집권 1년차였던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으로 남성차별적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여성 장관들을 내세워 친여성정책을 표방하면서 20대 남성들로부터 ‘불공정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던 것이다. 

군 가산점 폐지는 일종의 역차별로 작용한다. 사진은 일자리 알아보고 있는 제대 군인들.
군 가산점 폐지는 일종의 역차별로 작용한다. 사진은 일자리 알아보고 있는 제대 군인들.

20대, 현실에 눈뜨다

결국 이러한 청년 세대의 냉전적 젠더갈등 양상은 집단 피해 의식으로 진영화되고 있다. 여성계뿐 아니라 기성세대에서도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는 명제는 청년세대에서는 합의되지 않는데 한국리서치(2018.10.)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23%, 30대 남성의 40%만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 반면, 20대 여성은 75%, 30대 여성은 82%가 동의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대 초반(만19~24세) 남성의 29.5%, 20대 중후반(만25~29세) 남성의 34.4%, 30대 초반(만30~34세) 남성의 36.3%, 30대 중후반(만35~39세) 남성의 49.6%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2030 여성은 압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 2019.2.)

반면 20대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20대 남성 68.7%가 “남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답변한 반면, 20대 여성은 56.2%, 30세 이상 여성 70.1%가 “남성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답변했던 것이다.(한국리서치-시사인, 2019.3.)

문제의 본질은 지금 대한민국 청년세대가 가족 내에서 양성평등을 체화하며 성장하기 시작한 세대라는 사실이다. 경기연구원의 보고서는 이 점을 주목한다.

90년대생은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지고 법·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던 시기에 성장했다.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던 시기에는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각했으나 90년대 후부터 완화돼 2000년대 후반에는 자연성비에 도달하면서 가족 내 성차별이 사라지던 시기에 지금의 청년 세대가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OECD의 ‘사회제도와 젠더지수(SIGI)’에 따르면 한국의 ‘가정 내 차별지수(0.218)’는 33개 회원국 중 6번째로 낮다. 

결국 90년대생 이후의 청년세대는 가부장제적 성역할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8년 조사에 의하면 남녀 모두 고정적 성역할 및 전통적인 남성상, 여성상에 얽매이지 않음이 두드러진다.

20대 남성은 33.1%만 ‘생계는 남성 책임’에 동의한 반면, 50대 남성은 70.8%가 동의하고 있다, “남자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20대 남성은 18.2%에 불과했다.

또 같은 해 통계청 사회조사에 의하면 20대 남성 80.0%, 20대 여성 83.0%가 “가사는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응답했는데 10년 전인 2008년 조사에서는 20대 남성 44.0%, 20대 여성 61.3%만 동일하게 응답했었다. 20대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변화된 것이다.

이러한 성역할에 대한 변화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 인식으로도 등장한다. 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40.6%만 “결혼을 꼭 해야 한다거나 혹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반면(20대 여성은 26.3%), 2008년에는 20대 남성 71.9%, 20대 여성 52.9%가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결혼제도를 통해 가부장제가 강화된다는 일부 여성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20대 남녀 모두에게서 ‘탈-가부장제’관념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평균적인 20대가 이러한 사건을 남성차별의 젠더 문제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로 수용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있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최종숙 연구원이 지난 3월 ‘비판사회학회’를 통해 발표한 연구논문에서도 이 점이 지적된다. 2017년 대선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이 갖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긍정적 인식을 압도할 만큼 크지 않았고 세대 간에도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20대 남성만이 젠더갈등으로 정치적 보수화되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20대 한국 남성들은 양성평등 그 자체에 대한 특별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특히 여성가족부와 같은 정책부서가 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 교육 동영상교재에서 ‘남자는 잠재적인 성범죄자’, ‘강자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와 같은 표현으로 물의를 빚었다. 

여성가족부의 이러한 소통 행정의 미숙함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이 박 시장의 성추행을 사실로 판단한 이후까지도 ‘재판중’임을 들어 입장을 유보하는 행위는 오히려 20대 남성들로부터 불신과 빈축을 사기에 알맞았다. 

결국 이러한 여가부가 양성평등을 내세워 여성정책을 시행하는 ‘불공정’의 총체적 양상이 한국 20대 남성들로 하여금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19년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센터장의 ‘20대 남성’ 관련 발언은 어쩌면 가장 정확한 진단일 수 있다.

“한국의 20대 남성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배려해야 할 강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일자리 부족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고 있는 집단이다. 학점과 필기시험이 당락을 좌우하는 공무원, 공공부문이 최고 직장인 시대에 남성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페널티에 가깝다. 여자도 군대 가라고 외치는 이유다.

사실 이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이들에게 배려를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기득권 남성이다. 이 ‘매너 좋은’ 남성들은 좋은 시절을 실컷 보낸 다음, 그 미안함을 자신들의 양보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남성들에게 미룬다고 20대 남성들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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