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美, 단계적 대북정책 성공할까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美, 단계적 대북정책 성공할까
  •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
  • 승인 2021.06.04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韓美정상회담 기획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망: 쟁점, 북한의 대응, 그리고 한국의 과제  

지난 4월 30일(미국 현지 시각),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의 윤곽을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grand bargain)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도 아닌, 탄력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하겠다는 것이 현재까지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의 복안이다. 

현재로서는 전임 양대 행정부를 절충한 정책을 펼 것이라는 것이 전반적 예상이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대내외적 정책추진 여건, 북한의 반응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북한의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다. 

북한은 5월 2일자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권정근의 담화를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미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serious threat)으로 규정한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4월 28일자)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북한내 코로나19 방역 관련 인권 유린 문제를 지적한 미 국무부 대변인 논평에 대해서도 이를 ‘정치적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당분간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해 절연(insulation), 버티기(muddling-through), 맞춤형 시위(tailored demonstration)의 세 키워드 하에서 대응해 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떠한 방향성을 지닐 것인가는 이에 대한 한국의 공조 여부에 의해서도 결정될 것이다.

절묘한 절충?, 어정쩡한 타협?

얼핏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장점만을 결합하는 절충의 미학을 실현하려는 듯이 보인다. 문제는 북한에 대해 조기에 너무 큰 양보를 하지 않으면서도 신뢰성 있는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묘수를 이전 행정부라고 고민하지 않았겠는가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결국 북한의 거듭된 약속 위반으로 인해 정상적인 협상의 진행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나온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일괄타결”만을 하지는 않았으며, 일종의 “스몰딜” 역시 염두에 뒀다는 주장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새로운 것은 아니고, 단계적 접근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도 시도되었던 것이라고 지적한 Alex Wong의 발언은 관념적인 계획과 실질적 협상 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북한의 핵능력은 오바마 행정부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었으며, 2018년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핵과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모라토리엄은 유지되고 있지만, 이것이 북한의 핵무기 생산의 중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북한은 핵능력에 대한 증대된 자신감으로 인해 좀처럼 핵개발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해체되어야 할 북한 핵능력이 더 확대되고 증강되었으며 협상 과정 역시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일괄타결보다는 단계적 접근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생각된다.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북한이 이러한 장기적 과정을 활용해 의제분할 전술(salami tactic)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의 약속 위반에 따라 언제라도 비핵화 과정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2005년의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의 폐기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설사 협상을 통해 다시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북한을 구속력 있는 합의의 틀에 묶어 두는가의 어려운 과제를 바이든 행정부는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단계적 접근이 지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결국 장기적 북한 비핵화를 지향하는 협상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거나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워싱턴 내에서는 북한이 이미 일정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즉,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freezing) 수준에서 억제하고 북한이 실질적 조치를 취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러한 주장은 미국 민주당 성향의 학자나 전문가들 중에서도 주로 군축론을 옹호하는 측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북한이 2021년 들어서도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발사를 통해 꾸준히 핵투발 능력을 시위하면서 일부 안보전문가들 역시 이에 동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단계적 접근을 채택할 것을 시사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조기 대북협상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자신들의 융통성 있는 접근이 자칫 어정쩡한 타협으로 귀결될 위험성을 알고 있을 것이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 역시 양보 우선 정책에 불과했다는 국내의 비난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 핵능력의 빠른 고도화에 주목하면서도 이것이 최우선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며 대북정책 윤곽을 발표했으면서도 협상을 총괄할 대북정책특별대표 인선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이를 암시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월 30일 미 의회 연설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단계적 접근을 시사했다./연합
바이든 미 대통령은 4월 30일 미 의회 연설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단계적 접근을 시사했다./연합

美, 협상 중에 북핵 용인할 수도 있어

한미 연합훈련의 지속 유예 등과 같은 조치는 동맹의 재강화라는 자신의 약속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며 미국의 여타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안보 공약의 신뢰성을 저하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을 잠정적으로라도 용인하는 자세를 취할 경우, 국제비확산체제의 유지를 보장할 수 없으며, 이란과의 핵협상에서도 수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까지의 대북 접근은 북한이 지나치게 큰 도발적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차원에서 외교적 접촉을 지속하지만 조속한 협상 재개에 매달리지는 않는 방향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즉, 현 수준의 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북한이 얼마만큼 입장을 변화할 여지가 있는지를 먼저 타진한 이후에 실질적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다. 

북한 역시 현재로서는 미국과의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의 일부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협상 재개를 제안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1)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인권 문제 거론이 별다른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이 예상외로 급속히 발전되고 있다고 판단하거나, (2) 북한이 제재와 인권 문제로 인해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는 계산이 들 때까지 서로의 탐색전은 계속될 것이며, 2021년 하반기가 되어서도 실질적인 대화는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결국 어느 한쪽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들다는 계산이 섰을 때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상황 전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미북 상호간 기싸움의 지속의 경우이다. 미북간의 협상 시도가 있더라도 중대한 타결보다는 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차원이 될 것이며, 북한은 핵실험 재개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중대 도발보다는 한국을 겨냥한 도발로 긴장을 조성하려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 결국 선제 양보를 택하는 경우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더 이상 지켜보면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핵 동결을 대가로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더 큰 제재 완화를 제안하고, 한미 연합훈련 지속 축소 및 연기, 미북 외교관계 개선 조치 등의 조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며, 핵과 미사일 실험 재개는 없겠지만, 한국에 대한 도발은 지속될 수 있다.

마지막의 경우는 북한의 내구력 소진 및 정책 노선 변화이다. 북한이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불만에 직면, 적절한 명분을 제공 받는 선에서 기존보다 더 확실한 비핵화 조치(포괄적 핵시설 폐쇄 조치, 엄밀한 국제적 검증 수용, 일부 핵물질 조기 반출 등)를 취하는 경우이다.

물론, 김정은으로서는 핵무기가 가지는 의미가 대미 레버리지에 못지않게 내부적인 수령 독재 유지에 있으므로, 여간해서는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설사 북한이 이러한 노선을 택한다고 해도 일방적인 핵포기가 아닌, 적절한 명분의 제공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는 북한의 변화가 최선이지만 미국이 대북 양보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북한 문제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다양한 대외정책 이슈들이 있으며 제재와 인권 이외에는 북한에 변화를 강제할 여타의 자산    (군사적 옵션)도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본토를 위협하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는 불가피성을 내세울 수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맺은 싱가포르 합의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명분도 제시할 수 있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2월 이후 북한과의 외교적 접촉을 시도했으며 북한이 3월 21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이에 대해 경고했지만 외교적 해법이 열려 있다는 입장(I’m also prepared for some form of diplomacy)을 취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했으면서도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제재를 격상하는 대신 유엔 안보리 산하의 대북제재위원회에 회부하는 대응을 취하는 데 그쳤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 한미간의 이견이 발생하는 듯한 인상을 차단하려는 배려로 생각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발표시 기존에 사용하던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표현을 쓴 것 역시 향후의 양보를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워싱턴 내에 제재무용론과 대북 군축협상론이 더 거세질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핵 동결 수준에서 협상을 시작하고, 대북제재의 조기 완화·해제를 택하며, 최종적 비핵화라는 목표를 명시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의 연합대비태세의 증강이 급선무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의 연합대비태세의 증강이 급선무다.

한미연합사 강화 전략도 필요

미국이 선제 양보를 선택할 경우 남북대화나 교류협력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에 주도권을 넘겨준 남북협력이 될 것이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 북한이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대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보가 제재 해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남북대화에만 집착해 제재가 북한 변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거나 미국의 선제 양보를 권유하게 될 경우, 미국은 한국의 대북정책 파트너로서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며, 양보의 카드로 한미동맹과 관련된 쟁점을 과감히 선택할 수도 있다. 워싱턴은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겠지만 한국은 ‘평화’의 이름 하에서 사실상 핵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북한의 선의만을 기대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미국이 중대한 양보를 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기술이 고도화된 현 상태에서 지루한 눈치보기가 지속되는 것 자체가 한국의 안보에는 도움이 되지 못 한다. 미국의 양보가 극히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 경우에도 미북 협상이 재개되는 것 자체를 북한이 핵보유국 기정사실화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한미의 공조와 공통의 압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조치를 약속하지 않는 한 기존 제재를 격상하지는 않더라도 제재 이행을 강화하고 제재 회피 행위에 대한 감시 및 적발 역시 확대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해야 미국이 자신감 있는 대북정책을 전개할 수 있다.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주위 환기 역시 필요하다. 특히, ‘종전선언’과 같이 비핵화보다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집착한 접근을 취하거나, 동맹 차원에서 연합훈련의 연기나 축소를 한국이 나서서 주장하는 등 미국의 선제 양보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미국 내에서도 북한 핵능력의 기정사실화와 대북 군축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미 연합대비태세의 증강도 병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능력 해체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으며 단계적 비핵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기간은 더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 동맹 차원에서 그동안 수사적으로만 표명되어 왔던 미국의 확장억제를 구체화하는 조치 역시 조속히 추진되어야 한다. 단계적 비핵화가 불가피하다면 상당 기간 동안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것이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 한미간 핵기획그룹(NPG) 구성, 핵공유 개념 실현, 미국 전술핵 재배치 등의 조치가 실제적으로 논의되고 추진되어야 북한이 핵무기를 레버리지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될 것이며 북한의 핵능력이 존재하더라도 북한의 전략적 우월성이 상쇄될 수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