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韓·中·日 조선산업의 명암
[심층분석] 韓·中·日 조선산업의 명암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6.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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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 조선업은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조선업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3대 지표(수주량, 수주잔량, 건조량) 모두 중국에 밀렸다. 저가격으로 치고 나오는 중국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대우해양조선과 삼성중공업 등이 있어 조선업으로 먹고 사는 거제도에도 불황이 닥쳤다. 당시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5년 정도 빠른 추세였다. 2013년에는 조선·해운의 주축이었던 STX그룹이 해체되었다. 

한국 조선업의 대표주자인 현대중공업도 2010년부터 영업이익이 줄어들다가 급기야 2014년에는 3조2495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조선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동안 한국 조선업은 황폐해지고 있었다. 거제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통영, 목포 등 군소 조선사는 대부분 폐업할 정도였다.

LNG선 특수로 한국의 조선소마다 드라이 도크는 쉴 틈이 없다, 사진은 거제 삼성중공업.
LNG선 특수로 한국의 조선소마다 드라이 도크는 쉴 틈이 없다, 사진은 거제 삼성중공업.

그런데 뜻밖의 두 사고가 터졌다.

첫 번째 2013년 6월 17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2008년 건조한 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인도양 해상에서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해 버렸다. 40피트 컨테이너 8000개를 실을 수 있는 길이 316m, 폭 46m, 총중량 8만6000톤급 대형선박인데 사고 원인은 인도양상에서 발생한 태풍에 선체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항공모함 길이가 313m다. 크기 면에서 8000TEU급 컨테이너선은 미 항공모함보다 더 크다. 일본 조선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한국과 중국의 협공에 일본 조선업은 계속 축소되면서 숙련된 기능공과 기술자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일본 조선산업 기반 자체가 약화되고 품질 저하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 원자력산업의 풍토가 일본 조선산업 모습을 닮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두 번째 2018년 6월 22일 호주 인근 해상에서 중국의 대형 LNG 운반선 ‘CETI 글래드스턴’ 호가 갑자기 멈춰 섰다. 원인은 엔진 고장이었다. 2016년 10월 31일 건조된 ‘CESI 글래드스톤’호는 불과 2년도 안 되어 치명적 고장을 일으켰다. 결국 파푸아 뉴기니 인근 라바울항으로 예인되었고 2개월간 수리 끝에 운항을 재개했다.

우리 언론 대부분은 이 선박이 폐선된 것으로 보도했지만 잘못된 내용이다. 현재 홍콩 선적으로 상업 운항중이다. 어쨌든 이 사고로 중국 조선업에 대한 신뢰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CESI 글래드스톤호는 중국 후동중화조선에서 건조한 총톤수(Gross Tonnage) 11만3000여 톤의 초대형 천연가스 LNG 운반선이다. 

한국 조선업을 살린 뜻밖의 행운

중국이 한국의 LNG 운반선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프로젝트의 1번호이다. 호주에서 생산한 LNG를 중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중국 국영석유기업인 시노펙은 중국 국영 선사와 공동으로 총 6척을 발주했다. 이를 토대로 외국 선사의 LNG 운반선을 대량 수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첫 번째 선박이 엔진 고장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노출하면서 중국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CESI 그래드스톤과 동형인 후속 5척도 역시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그뿐 아니었다. 중국의 다른 조선소도 마찬가지였다. 기술 결함이 속출했다.

프랑스 선사 CMA CGM이 2017년 중국선박공업(CSSC)에 발주했던 9척의 2만3000TEU급 LNG 추진 컨테이너선 역시 기술적 문제로 2차례나 납기가 지연됐다. 당연히 중국 조선소는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인건비가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상실하고 중국 조선소의 재무구조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외국 선사들은 중국에서 발을 빼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뜻밖의 일로 한국의 조선산업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를 두고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2018년 중국은 단 한척의 LNG 운반선도 수주하지 못했다. 특히 LNG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대부분은 한국 조선소로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LNG선은 척당 가격이 1억8600만 달러(약 2050억 원)에 이르는 고가 선박이다. 2018년 발주된 대형 LNG 운반선 59척을 모두 한국 조선소가 수주했다.

대형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 24척, 대우조선해양이 17척, 삼성중공업이 18척을 수주했다. 2020년에도 역시 LNG선, VLCC(초대형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부문은 한국 독주가 두드러졌다.

글로벌 조선·해운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발주된 LNG선은 총 63척 중에 한국이 수주한 물량은 46척이다. 중국은 5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고 일본은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대형 프로젝트도 기다리고 있다. 카타르가 추진하는 100척의 LNG 운반선 수주전이다. 올 상반기 초도 물량 40~60척 규모의 본계약이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수주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카타르 발주 LNG선은 1척당 가격이 평균 2300억 원으로 수주가 성사되면 국내 조선업계 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 

한국 조선업에 LNG 운반선 외에 또 다른 효자 종목이 생겼다. 그것은 LNG 추진선이다. 선박 연료를 중유나 벙커C유 대신 LNG를 사용하는 선박이다. 자동차에 비유해 설명하면 디젤엔진 대신 LPG를 사용하는 엔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역시 LNG 운반선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극저온의 LNG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 조선사들은 독주를 하고 있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다. LNG 추진 선박 건조가 러시를 이루는 것은 국제해사기구(IMO)가 강력한 탄소 배출 억제전략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유엔 산하기구로서 한국은 이사국이다.
2018년 4월 영국 런던에서 국제해사기구(IMO) 총회가 열렸다. 172개 회원국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08년에 비해 50%까지 감축하는 것을 의결했다.

국제해사기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다를 오가는 9만여 척의 선박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량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친환경 정책은 바이든이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힘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말하면서 친환경 정책을 추진할 것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 해운업계는 IMO가 정한 단계별 목표에 따라 2024년까지는 탄소 배출을 20%까지 감축해야 한다. 3단계인 2025년부터 2029년까지는 신조 선박의 경우 2008년 대비 30%까지 줄여야 한다. 당장 2024년까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일단 벙커C유나 중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부터 도태시켜야 한다.

그 대체 연료로 LNG가 각광 받고 있다. 새로 선박을 건조하는 비용보다는 기존 선박을 LNG 추진선으로 개조하는 것이 비용이 적다. 신조 선박도 LNG 추진선으로, 그리고 선박 개조 역시 LNG 추진선으로 하면서 현재 조선산업은 ‘LNG 특수’가 일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친환경 연료인 LNG를 사용할 경우 벙커C유 대비 황산화물과 미세먼지는 99%, 질소산화물은 최대 85%까지 줄일 수 있고, 연료 효율 또한 30% 이상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LNG 추진 선박은 최대 30%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있다는 보고다. 현재 울산이나 거제 등 조선소 밀집 지역에서는 기존 선박의 LNG 추진선으로 전환하는 개수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에서 건조한 LNG 운반선 CESI 글래드스톤. 건조한 지 19개월만에 바다 한가운데서 엔진 고장으로 멈추면서 중국 조선기술의 한계를 노출했다.
중국에서 건조한 LNG 운반선 CESI 글래드스톤. 건조한 지 19개월만에 바다 한가운데서 엔진 고장으로 멈추면서 중국 조선기술의 한계를 노출했다.

조선산업 발목을 잡는 복병

2014년 전 세계에서 68척에 불과하던 LNG 추진 선박은 2020년 시점에서는 360척으로 늘었으며 향후 10년간 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적으로는 LNG 추진선 외에 수소연료전지를 동력으로 하여 가스 배출이 제로인 선박까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LNG 추진선의 핵심 기술은 극저온의 천연가스 LNG를 △액화 저장하는 기술과 △가스 엔진·연료공급 시스템 △극저온 단열 저장 용기 △재기화·냉열발전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LNG 저장탱크는 -196도에서도 균열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LNG 추진선에 사용되는 극저온 연료탱크 기술은 부산에 본사를 둔 동성그룹 자회사 동성화인텍이 보유하고 있다. 

동성화인텍은 지난 3월에도 대우조선해양과 396억 원 규모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LNG 연료탱크 공급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5월 7일에도 대우조선해양에서 VLCC LNG 연료탱크를 148억 원에 수주했다고 밝혔다. 동성화인텍은 1분기에만 총 LNG 보냉재 3700억 원을 수주했다.

그런데 부활하는 한국 조선업 발목을 잡는 복병이 생겼다. 그것은 원자재 급등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과 함께 미국·영국·유럽연합(EU)·중국 등 세계 경제 강국들의 경기가 동시에 회복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올해 1~4월 국내 조선 3사의 수주액은 전년 대비 7배나 증가한 것만큼 철판 가격도 70%나 올랐다. 철광석 국제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조선소 관계자에 따르면 원자재 단가가 올랐다고 해서 이미 계약이 완료된 선박 수주단가를 재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LNG선의 기본 구조와 장점
LNG선의 기본 구조와 장점

국내 조선소에 선박용 후판(두꺼운 철판)을 공급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후판 가격을 톤당 8만~13만 원 인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소 입장에서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반도체 역시 숨은 복병 중 하나다. 10만 톤이 넘는 대형 선박이라 할지라도 선원은 20명 안팎이다. 그만큼 자동화, 첨단화 되기 때문이다. 선박에는 대형 엔진이 적게는 2대에서 많게는 4대까지 탑재된다. 선박 추진 엔진 외에 발전기도 있다. 엔진과 각종 장비를 컨트롤 하는 것은 역시 컴퓨터다.

각종 센서는 반도체에 의해 구동된다. 선박에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반도체가 다량 사용된다. 발전기에는 전력반도체가 필요하다. 각종 운항 장비 역시 반도체가 필요하다. 선박용 철판, 그리고 반도체 등 원자재의 품귀와 가격 급등이라는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조선산업 부활의 핵심요소다. 

조선산업은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불황과 활황의 폭이 매우 크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도산한다. 특히 선박 수주가 매출로 잡히기까지 기간은 그 어떤 산업보다 길다. 대략 길게는 2년이 걸린다.

올해 수주한 선박 매출은 2022년 하반기부터 반영된다. 일본의 조선산업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시장 축소 사이클에서 핵심기술인력까지 축소했기 때문이다. 핵심 고급인력이 산업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가전략산업을 보호하는 가장 핵심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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