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미사일 주권’  한미 동상이몽
[이슈] '미사일 주권’  한미 동상이몽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6.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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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충남 안흥시험장 인근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발사’라는 소리와 동시에 해안에서 미사일이 치솟아 올랐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 ‘백곰’ 발사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세계 7번째로 지대지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는 200km로서 평양까지 타격이 가능했다.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에 카터 미 행정부는 화들짝 놀랐다. 핵개발 의지까지 보이던 박정희 대통령을 카터 행정부는 매우 싫어했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적극 추진한 데는 절박한 안보적 이유가 있었다. 미국 민주당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이었다. 지대지 미사일 백곰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발했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각종 유도 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당시 백곰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안동만 한서대 교수, 김병교 전 한화종합연구소 기술고문, 조태환 전 경상대 교수 등 3명은 백곰 개발에 얽힌 비화를 책으로 펴냈다. <백곰, 도전과 승리의 기록(플래닛미디어 발행)>이라는 책을 통해 당시 상황을 사실감 있게 설명한다.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백곰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의 유도탄 개발국이 됐다. 사진은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박정희 대통령.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백곰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의 유도탄 개발국이 됐다. 사진은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박정희 대통령.

“미국도 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76년 5월경 한국에서 ‘백곰 미사일’ 설계도 초안이 거의 완성됐다는 보고서를 국무부에 올렸고 이후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 미대사, 미 국방부 안보담당차관보까지 ADD를 찾아와 미사일 개발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카터 행정부의 압박은 매우 강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의심되는 연구소는 모두 찾아와 상황을 파악했다. 백곰 지대지 미사일은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을 기초로 해서 개량했다.

지대지 미사일 핵심 부품은 자세제어와 유도를 담당하는 관성항법유도장치다. 미국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 ‘페란티’사에서 관성항법유도장치를 수입해 장착했다. 미국이 지원 거부한 무기체계 상당수를 영국, 프랑스로부터 도입을 추진했다. 카터 행정부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미국은 모든 방산 부품의 한국 수출을 중단했고 심지어는 미국이 아닌 관련국 부품도 한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았다. 카터 행정부는 혹시라도 대한민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을 우려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박정희 정부의 ‘멸공통일’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지 않던 박정희-카터 정부간의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 ‘한미 미사일지침’의 발단이다. 

백곰 미사일 발사에 화들짝 놀란 카터 미 행정부

1979년 7월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당시 노재현 국방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미사일 개발 중단을 재차 요구했다. 카터 행정부의 강한 압박에 결국 1979년 9월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사거리 180㎞ 이내, 탄두 중량 500㎏을 넘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180km사거리 제한은 평양을 넘어 중국까지 미사일이 넘어가지 않도록 제한한 것이고 500kg 제한은 핵탄두 탑재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것이 1979년 한미간 미사일지침이다. 그리고 나서 한 달 뒤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 당했다.

청와대는 5월 21일(미국 현지시각) “한국은 미국과 협의를 거쳐 개정 미사일지침 종료를 발표하고, 양 정상은 이러한 결정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미 미사일지침은 4번에 걸쳐 개정했다.

1차 개정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1년이다. 탄두 중량은 500kg으로 유지하면서 사거리만 300km까지 늘렸다. 이로써 평양선까지가 아니라 신의주 압록강라인까지 사정권에 두게 되었다. 두 번째 개정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이다. 

미사일 사거리를 800km까지 늘리면서 함경북도 끝단까지 북한 전역을 사정권 안에 둘 수 있었다. 탄두 중량 제한을 폐지하는 3차 개정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11월에 있었다.

한국군의 전략 지대지 미사일 현무2. 사거리 500KM, 탄두 무게 최대 2톤까지 탑재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군의 전략 지대지 미사일 현무2. 사거리 500KM, 탄두 무게 최대 2톤까지 탑재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7년 7월 4차 개정을 통해 우주발사체 등 민간 부문에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풀 수 있었다. 액체연료는 무기급 미사일에 사용하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무기급 로켓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체연료에 대한 제약 사항이 크다.

그것을 4차 개정으로 풀었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극에 달한 가운데 한국만 미사일 관련해 제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한미 양국 모두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미사일 개발에 관련한 모든 제한이 폐지됐다.

이와 같은 결정에 전문가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우주개발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평가다. 미사일지침 종료가 알려지면서 방산업체의 주가는 바로 뛰었다.

5월 24일 국내 대표 방산주인 LIG넥스원은 전 거래일 대비 3850원(9.75%) 오른 4만3350원에 마감됐다. 한국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생산하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소폭 상승했다.

친여매체는 이번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를 두고 한미정상회담 최대의 성과라고 극찬한다. 정작 국민들이 바라는 코로나 백신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되찾았다고 자화자찬한다.

친문 사이트에서는 ‘안보를 입에 달고 사는 보수우파는 미사일지침을 풀지 못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것을 풀었다’고 보수우파 및 전 정권을 비난하는 도구로도 삼는다.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를 일종의 마타도어 정치선전의 도구로 이용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미사일 기술 발전의 토대는 박정희 전두환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1978년 한국 최초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백곰 발사 성공 이후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은 사거리 200km의 백곰 개량형인 현무-1 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1986년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1을 완성했다.

기존 백곰 미사일보다 정확도를 대폭 상승시킨 미사일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하에서 한국군의 군사력은 급성장했다. 

F-16 전투기 도입과 순항미사일 개발 등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을 능가하고 압도하기 시작했다. 탄도미사일 대신 정밀 유도무기 개발, 특히 순항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뒀다. 순항미사일은 한미 미사일지침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건조된 국산 전투함에는 국산 순항유도미사일이 탑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미 미사일 지침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부터다. 일명 ‘대포동 쇼크’다.

이때부터 남북 간 탄도미사일 부분에 심각한 불균형이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한은 재래식 부문 군사전력 증강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핵과 탄도미사일이라는 비대칭 전력으로 방향을 바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력은 급성장했다.

북한은 남한 정부가 어떻게 바뀌든 그들의 비대칭 군사력 증강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남북 간 비대칭 전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사실상 미사일과 핵을 완전하게 결합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번 미사일지침 종료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미사일 개발을 하게 되면 주변국에 대해 억제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정상적이라면 맞는 말이다.

한미동맹을 우선하고 중국의 팽창에 맞서는 정부라면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는 큰 의미가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 미사일은 둘째치고 총이라도 한 방 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미사일지침 종료가 중국이나 북한에 억지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중국은 사드 사태보다 더한 보복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미간 미사일지침 종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다만 대만 문제 언급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10일이 지난 5월 31일 비난 성명을 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명철 국제사안 논평원 명의의 ‘무엇을 노린 미사일 지침 종료인가’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호전적인 대북정책과 그들의 수치스러운 이중 언행(double-dealing)의 적나라한 상기’라고 비판했다. 상투적인 미국에 대한 적대감 표출일 뿐이다.

사거리 2000km 이상 탄도미사일이 군사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서 싸운다는 군사전략을 수립할 때 가능하다. 한반도에서 북한만을 상대로 했을 경우 현실적으로 한반도를 벗어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미사일지침 종료에 따라 한국의 우주개발을 위한 로켓 개발도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런데 민간 로켓 개발 역시 군사적 동맹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처럼 한미동맹이 위태로운 상태에서는 미사일지침이 종료되더라도 민간분야 로켓개발로까지 바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전작권과 미사일 주권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현실적 상황보다 더 크게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를 부각시키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전작권 전환용’이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노무현 정부도 줄기차게 추진했던 사항이다. 노무현 정부 2기라고 볼 수 있는 문재인 정부 역시 전작권 조기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모건조를 밀어붙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와 반미좌파단체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그들이 말하는 ‘전작권 환수’다. 미사일지침 종료와 항모 건조가 전작권 전환을 위한 일종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이명박 정부 때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정부가 미사일지침 폐기를 요구한 것은 임기내 전작권

전환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반미자주화 투쟁’의 성과가 필요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애당초 한미 미사일지침은 미국 정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북한을 미사일로 선제타격을 우려해 제한을 둔 조치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동맹국에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두는 것은 미국의 동맹전략에도 맞지 않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 될 여지가 없다. 미 국방부도 이번 미사일지침 종료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4일(현지시간) 국방부 브리핑에서 한국에 대한 ‘미사일지침 종료’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사일지침 종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I am not sure)”고 답했다.

추가 질문이 나오자 더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한미간 중요한 사안이라면 국방부 대변인이 모른다고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첫 번째 관심사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어떻게 압박하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소련과 맺은 중거리탄도미사일 제한 협정을 파기했다. 아시아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불균형이 심각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중국이다. 미 육군은 아시아에서 미군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가 숙제다.

사드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국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는 힘들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일본이 가장 유력시 된다. 

미국도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중국을 상대로 한국의 미사일은 전혀 압박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보수우파 정권으로 바뀌고 한미일 동맹을 완전히 회복하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자체 미사일 전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중 압박이 된다는 것이 미국의 희망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는 한미 간 동상이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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