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문재인 정부의 ‘美中 줄타기’  정말 끝났을까
[심층분석] 문재인 정부의 ‘美中 줄타기’  정말 끝났을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7.02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미경중(安美經中).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하는 ‘줄타기 외교’를 지칭하는 말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더 근접한 외교를 한다는 이 전략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그럴 듯한 수식어로 치장되어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미 바이든 정부의 백신과 반도체 동맹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에 미국의 새로운 한미동맹 청구서가 준비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한미동맹을 결산하고 새로운 형태의 한미동맹이 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양 정상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하는 상황이 있었다. 중국이 꺼리는 의제였다. 아울러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 카드인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연합체) 참여 문제도 언급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소위 ‘줄타기 외교’를 해 온 상황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됨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백신 생산, 반도체·배터리·원전·6G 네트워크 등에 미국이 정한 규칙을 수용해야 하는 새로운 진영 논리를 요구받고 있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의 수준으로 나아갈 것을 예고하는 중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거나 투자를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투자 공백이 초래할 경제 문제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남겨 놓았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민주당이 이러한 새로운 한미동맹 질서를 수용할 만한 국정 마인드를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만일 여전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한다면 새로운 한미동맹의 청구서는 가혹할 수 밖에 없다.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운동권 청와대의 마인드다. 언론과 외교 전문가들은 지난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미중간의 줄타기 외교를 끝내고 미국의 주도권에 편승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과연 과거 반미 운동권 세력이 중심을 차지한 문재인 정권의 핵심부들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열린 2021년 G7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중국에 대한 서방국가의 공동 대응이었다. G7 확대회의 제1 세션 회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왼쪽),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 바이든 미 대통령(오른쪽)
영국에서 열린 2021년 G7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중국에 대한 서방국가의 공동 대응이었다. G7 확대회의 제1 세션 회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왼쪽),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운데), 바이든 미 대통령(오른쪽)

중국 굴종 외교가 가져온 ‘코리아 패싱’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친중 행보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무시였다.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특사로 중국을 방문 중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마치 조선 임금의 신하가 중국 황제를 알현하기라도 하는 듯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장면이 보도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한중 간 사드 관련 갈등으로 인해 문 대통령은 중국 국빈 방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굴욕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한 후,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양국관계에 찬물을 뿌린 것이라고 항의했고,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에게 속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고 알려졌다.

냉랭한 관계가 지속되던 한중은 2017년 10월 31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담은 공동문서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은 한국 측이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 협력 등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을 약속했다고 선전해 대한민국 내 굴욕 외교 논란이 일었다.

중국은 사드 보복에 대한 유감 표시나 재발 방지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3불 약속을 지켜야 한중간 교류가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향후 이 문제가 불씨가 될 가능성을 남겼다. 중국 측의 계속된 압력과 이견 때문에, 이례적으로 정상회담 이후의 공동성명은 물론 이보다 급이 낮은 공동 언론 발표문도 내지 못 했다.

게다가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주요 인사들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식사를 거부해 문 대통령은 중국 국빈 방문 기간 중 열 끼 중 여덟 끼를 중국 측 인사 동석 없이 혼자 먹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가 12월 14일 중국 측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무차별 집단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고, 이를 뜯어말리던 청와대 춘추관 간부까지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의식하면서도 적대시 정책을 표면화해서 견제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헤징(hedging)이나 연성균형(soft-balancing) 전략을 취하며 미중 간 선택을 지연하거나 ‘회피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컨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전면적 참여보다는 현 정부 ‘신남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부분적 참여를 선택한 것이나, 비록 시진핑 주석의 역점정책인 일대일로 구상에 바로 참여하진 않지만 최근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한 것 등이 바로 그런 한국의 정책 기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런 미중 간 한국이 취하는 헤징전략의 근거는 흔히 두 가지를 내세운다. 하나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이란 표현이 시사하듯이 안보는 당연히 미국에 의존하지만 최대의 교역량을 가진 중국과의 경제관계 역시 중요한 국익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미국과 중국으로부터는 물론, 일본으로부터도 겪은 ‘코리아 패싱’이었다. 이러한 외교적 실패가 지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평가들이 있지만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한 달여를 앞두고 가진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살펴보면 미중간 줄타기 외교는 쉽게 포기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집착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만약 미중간의 갈등이 격화된다면 북한이 그런 갈등을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이용하려고 할 수도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하루빨리 마주 앉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북한이 위협을 가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북한의 도발 행동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해석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6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6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북한 집착 외교가 문제

문 대통령은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관련 “초강대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 비핵화를 위한 모든 협상을 해칠 수 있다”며 “미국이 북한 및 기후변화를 포함한 기타 세계적인 관심 현안에 대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요구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워싱턴의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5월 20일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 영상 메시지에서 백신 공급을 놓고 미국을 대놓고 겨냥해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당장에는 자국 경제를 지키는 담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존과 새로운 번영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 백신 지원이 시급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공격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상태로 이뤄진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분위기가 좋았을 리는 만무하다. 문제는 그 후과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한민국에 요청할 한미동맹 신질서의 비용과 대우는 ‘확실하게 손봐야 한다’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상되는 이유에는 문재인 정부가 한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G7 초청과 관련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옳고 그름을 파악해 (미국의) 편향된 장단에 휩쓸려선 안 된다”며 협박과 내정 간섭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황당한 사실은 이러한 내용을 우리 정부는 감추고 중국이 공개했다는 점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는데 중국이 깼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해 시비 삼으며 “불장난하지 말라”는 거친 언사를 퍼부었을 때도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는 넘어가야 할 외교적 문제에도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시비를 붙던 문재인 정부가 정작 주권에 간섭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을 워싱턴은 놓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더 이상의 줄타기 외교를 하지 않고 미국과의 동맹을 진지하게 새롭게 구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주변 적대국을 친구로 만든 싱가포르 외교정책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라는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강하고 적대성을 가진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국가다. 지정학적으로 갈등의 요소가 많았던 싱가포르는 접경 공동개발을 소지역 협력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협력 방식을 채택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시도된 IMS-GT(Indonesia-Malaysia-Singapore Growth Triangle)가 그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싱가포르는 경제적 협력의 이점이 크지 않고 오히려 경쟁과 갈등의 요소가 높았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소지역 삼각 협력의 틀로 엮음으로써 역내의 구조적 공백을 메우고 자국의 중심성을 확보하는 네트워크 전략에 성공했다.

지난 2020년 1월 비비안 발카리시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싱가포르 경영대학(SMU)의 한 강연에서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된다’는 원칙에 입각해 활기차고 성공적인 경제 및 단합되고 조화로운 사회를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가 지난 50년간 성공, 성실성, 신뢰성과 건설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판을 쌓아온 바, 이 같은 소중한 명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외교적 성공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약속을 유지해야 하며, 젊은 싱가포르인들에게 정체성, 가치, 희망, 국가에 대한 소속감 등을 심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결코 속국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절대로 매수당하거나 주눅 들거나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점에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이웃으로 하는 동시에 ASEAN에 비중 있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다자간 협력 네트워크 외교를 통해 자국의 위상 강화를 통한 외교적 자주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특히 비비안 외교장관은 ‘싱가포르가 살아남을 방법은 항상 싱가포르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놓되, 장벽을 만들거나 불화를 조장하지 않고 개방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일원이 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개방적이고 다자적인 외교 전략으로 신뢰와 협업의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약소국을 넘어 중견국이 가져야 할 외교전략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주목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법도 하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