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기본소득을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    
[전문가 진단] 기본소득을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    
  • 장경수  여의도연구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21.07.29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보수·진보 진영 모두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양쪽의 강한 비판도 받는 아젠다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기본소득 논쟁을 둘러싼 층위(level)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자체를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기능과 효과를 기대하는지에 따라 각기 입장과 견해가 상이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책 패키지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문제점도 크다. 따라서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분석해봄으로써 도입의 당위성과 효과성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3가지 관점

기본소득을 일종의 시민기본권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접근하는 경우로 한 사회에서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유부(共有富)가 존재하며 이로부터 얻어지는 소득은 공평하게 배당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공유부가 충분히 존재한다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명분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실제 공유부라고 할 만한 것들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가에 의문이 있게 된다. 국가가 대규모 유전을 소유한 중동 국가들이나 노르웨이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득이 창출되는 공유부의 범위에는 제한적이게 된다.

토지, 천연자원, 지식, 기술, 데이터 등을 모두 공유부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중 데이터 정도를 제외하고 생산성 있는 것들은 대부분 개인 소유권이 확립된 상태이다. 따라서 주로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가 수익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공유부의 논리는 현재 개인이 소유권을 가진 자산들을 고율의 세금부과나 국유화를 통해 사실상 공동소유로 만드는 과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기본소득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가라는 오래된 논제의 변형이라고 봐야 한다. 

그 다음으로 기본소득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해결책으로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으면서 광범위한 직업의 소멸을 경고하고 대량 실업과 불평등의 확산을 기존의 복지 제도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 주장은 로봇세 도입을 주장한 빌 게이츠나 미국 대선 후보로 나섰던 앤드류 양과 같은 유명인들이 가세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이 논리는 우리가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어 그에 상응한 정책 기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기본소득이 가장 유효한 대응책이라는 주장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가 전면적으로 감소한다는 예측은 아직 실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된다. 신기술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는 수백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한 번도 현실화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즉, 기술의 발전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자리를 줄이지만 항상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으로 인해 실업자가 크게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소득이 가장 유효한 대안이라는 증거는 없다. 실업자가 광범위하게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장기실업급여제도나 고용보험의 확충이 직접적인 대응책으로 더 유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체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론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현 사회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복지의 전달체계나 범위에 있어 비효율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본소득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단지 제도적 측면의 효율성만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검증과 비교가 가능한 부분이다.  우파적 기본소득이라 불리는 ‘음의 소득세’와의 접점도 여기서 발생하는데 이는 기본의 복지제도를 저소득층에게는 세금을 걷는 대신에 오히려 돈을 더 보태주는 형태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는 소득세 징수와 기본소득을 함께 묶은 형태가 된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대신에 다른 추가적 소득에 대해서는 10%를 세금으로 걷는다면 추가적 월 소득이 100만 원인 사람은 결국 40만원을 지급받는 셈이고(음의 소득세), 월 소득 1000만 원인 사람은 60만원을 세금으로 내는 셈(양의 소득세)이 된다.

어차피 기본소득의 재원은 세금이므로 효율적 복지전달체계로서의 기본소득제의 실질적 의미는 음의 소득세와 동일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에 어떠한 기능과 효과를 기대하는지에 따라 입장과 견해가 다르며, 기본소득 도입의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기본소득의 현실적 쟁점

막대한 재정 소요가 불가피하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기대감은 앞서 다양한 견해와 더불어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면 절망적 한계에 봉착한다. 국내 기본소득론자들은 GDP의 10% 정도를 중기 목표로 삼고 기본소득을 단계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OECD 평균 조세부담률(24.9%)과 한국 조세부담률(20.0%)의 차이로 인한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을 GDP의 10%로 간주하고 이를 기본소득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또 OECD 국가의 공공사회지출(GDP 21%)과 한국의 공공사회지출(GDP 12%)의 차이 9%P만큼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해 지급하자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 경우 GDP의 10% 정도에서 약 3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을 가정했을 때 연 192조 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이는 GDP의 10%를 차지하는 대규모 사업인데 이러한 국가사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었다.

국회예산정책처 사회보장정책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유아에서 평생직업교육까지, 그리고 지방교육재정과 중앙의 교육비 지출을 모두 합쳐도 93.8조 원, 가장 큰 사회보장 프로그램인 건강보험도 2019년 지출액이 70.8조 원에 불과하다. 과연 30만 원 기본소득을 위해 GDP의 10%인 192조 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을까?

과연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정 소요만큼 만족스러운 정책적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이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된다.기본소득제는 가성비 낮은 정책효과를 불러온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으로 인한 사각지대 해소는 실효성이 없다. 2019년 9조3000억 원이 소요된 실업급여제도에서 1인 최저 180만 원, 최대 198만 원을 보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본소득방식의 가성비는 너무 낮은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는 기본소득이 아닌 기초연금이나 의료급여처럼 조세 기반 복지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적용하고 수급조건을 완화해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복지급여에 비해 기본소득에 의한 양극화 해소 효과도 역부족이다. 

계금융복지조사(2019년) 자료에 따르면 소득분위별로 공적이전소득(복지급여)의 절대액에는 큰 차이가 없다. 즉 4분위부터 10분위까지는 공적연금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3분위 이하 저소득층은 조세로 지원되는 재정 기반 공적이전소득의 비중이 매우 커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근로장려금(EITC)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저소득자를 상대로 한 조세 기반 복지급여를 늘리면 양극화 해소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조세 기반 급여라도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전체 국민에게 나눠주게 되면 소득재분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복지급여에 비해 기본소득에 의한 소비 및 경기 부양 효과도 역부족이다. 한계소비성향 차이를 무시하고 소득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지급하면 소비증대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복지급여의 대상자인 실직자 등 소득이 격감한 집단이나 저소득계층은 항상 쓸 돈이 부족해 소득이 생기는 대로 소비하는 반면, 기본소득이 중산층에게도 지급되면 일부 소비가 일어나더라도 상당 부분 저축으로 이전될 것이다.

2020년 6월 5일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여론, 20대·60대에서는 찬성이, 70대 이상에서는 반대가 높다. 50대·40대·30대는 팽팽하다./리얼미터
2020년 6월 5일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여론, 20대·60대에서는 찬성이, 70대 이상에서는 반대가 높다. 50대·40대·30대는 팽팽하다./리얼미터

따라서 경제침체기에 내수 진작을 위해서도 기본소득 방식이 아닌 소득보장을 강화하는 방식이 적합하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우리 사회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서비스 경제 중심의 탈산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일자리의 불안정성과 양극화가 심화 될 것이므로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로는 탈산업 사회의 일자리와 소득보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복지선진국의 주요 정당들은 이런 전제를 거부했으며 여전히 복지국가 체제를 견지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기본소득 도입이 아니라 이미 성과가 검증된 현대적 복지국가의 건설이어야 한다.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맞게 선진국 수준으로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을 내실화해야 하며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누구나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다만 기본소득제는 복지전달체계를 효율화하는 전제로서 현실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당장은 실현되기 어렵기에 청년 등으로 대상을 특정하거나 낮은 금액으로 지급해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타협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한국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제도인지를 정책 실험을 통해 면밀하게 살피고 공론화를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