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안철수를 지지했던 호남의 집단 기억 
[심층분석] 안철수를 지지했던 호남의 집단 기억 
  •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 승인 2021.08.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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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호남의 선택은?  上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에게 호남은 뜨거운 감자다. 영남의 표심은 여야로 갈려 있는 반면 호남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남이 진보 일색의 선택만을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호남의 정치적 선택에 미치는 근본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미래한국>이 2회 연속 기획으로 이 뜨거운 이슈를 분석해 본다.(편집자 주)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어떻게 해야 호남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 호남의 변화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호남 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로부터 필자가 가끔 받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배경은 짐작할 수 있다. 호남의 변화는 우파의 정치적 승리라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명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좌파세력이 커지고 그 세력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이런 궁금증은 커지게 마련이다. 도대체 호남은 왜 저럴까? 어떻게 해야 호남을 대한민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호남의 변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호남이 과거에 보여온 정치적 선택 가운데 가장 진폭이 컸던 사건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호남이 평상시 보여온 정치적 행보에서 가장 벗어난 선택을 분석하면 호남의 정치적 변화가 어느 지점까지 갔는지, 어떤 한계에 부딪혀 좌초하고 현재의 상태로 고착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이 좌파의 숙주라는 자신의 처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것이 2016년 20대 총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 지역구 당선자 25명 가운데 23명이 호남 선거구였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13명이 얻은 표 역시 호남의 비중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국민의당이 호남을 제외하고 당선된 두 개의 서울 지역구(노원병 안철수, 관악갑 김성식)에서도 관악갑은 호남 출향민의 비중이 높다. 즉, 국민의당은 철저하게 호남인들의 정치적 실험의 결과였다고 봐야 한다.

20대 총선 호남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현상이 당시 새누리당의 지역구 의석 확보이다. 19대 총선 호남 지역구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던 보수정당이 2개 지역구 당선자(순천 이정현, 전주을 정운천)를 냈던 것이다. 

새누리당의 약진과 대조적이었던 것이 진보정당의 몰락이었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광주, 전남, 전북 등에서 고르게 1명씩 총 3명의 호남 지역구 당선자를 냈지만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호남 지역구에서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20대 총선은 호남이 작심하고 좌파를 배척하고, 선택의 폭을 넓힌 선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20년 8월 19일 광주 5·18 묘역을 찾은 김종인 국민의힘 당시 비대위원장. 호남이 보수 정치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과 심리적 장벽을 많이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0년 8월 19일 광주 5·18 묘역을 찾은 김종인 국민의힘 당시 비대위원장. 호남이 보수 정치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과 심리적 장벽을 많이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호남에 불었던 안철수 현상

필자는 20대 총선 호남의 선택에 대해 ‘삼성전자 같은 블루칩의 대주주가 자기 지분을 몽땅 손절 처리하고 이제 막 IPO를 한 벤처기업에 몰빵 투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거둔 승리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호남의 선택이 갖는 또 다른 측면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 의석을 휩쓸었고 더불어민주당과의 득표율 차이도 컸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승리에는 그런 표면적 성과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질적인 문제가 잠재했다. 그것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층의 사회적 차이였다.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지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광주가 고향인 필자가 광주광역시와 전남, 전북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샘플 조사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 호남 유권자들의 사회적 성격이 뚜렷하게 갈린다는 점이었다.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호남 유권자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세대적인 특징과도 중첩된다. 즉, 60대 이상의 연령층이 국민의당 지지를 주도했던 것이다. 이념성이 강하지 않은, 평범한 생활인에 가까운 분들이었다.

호남 정치에 강한 소속감을 가진 분들이 노무현과 좌파세력에 대해 품고 있었던 분노가 변화를 선택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호남 유권자들은 정반대의 특징을 보였다. 세대로는 40~50대에 많이 분포돼 있었고, 직업도 교수나 교사,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실무자, 언론사 기자 등 비교적 이념성이 강한 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국민의당이 지역구 의석을 휩쓸었지만 이런 지지층의 성격 차이는 장기적으로 국민의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이념성이 강하다는 것은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기능이 강하다는 얘기이고 이는 평범한 유권자층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20대 총선이 끝나고 나서 이런 분석과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담은 제안문을 국민의당 관계자를 통해 안철수 대표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다. 그 제안문이 안철수 대표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또는 전달했다 해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안철수 대표로부터 반응은 없었다. 그 제안문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째,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는 위에서 말한 것 같은 지지층의 성향 차이 때문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시간이 지나면 오피니언 리더의 속성을 가진 민주당 지지층의 이념 공세에 의해 국민의당 지지층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호남 유권자들에게 어설픈 퍼주기식 접근은 의미가 없다. 

이들은 오랜 소외와 고립 속에서 정치적으로 단련됐기 때문에 그런 당근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사상과 이념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즉, 소수 지식인이나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평범한 대중들을 상대로 한 이념·사상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고 봤다. 국민의당의 지지층인 평범한 대중들을 이념적으로 무장시켜 민주당 지지층인 호남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을 포위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호남 내부의 이념·사상 투쟁을 주도하는 것이지만, 제도권 정당이 그런 투쟁을 전면화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당시 필자가 대표로 있던 지역평등시민연대가 악역(?)을 도맡을 테니 국민의당은 뒤에서 지원만 해도 된다고까지 제안했다. 

두 번째 제안은 안철수 대표가 주도해 국민의당을 매월 당비 1만 원씩 내는 진성당원 중심으로 재편하라는 것이었다. 총선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둔 당시 그의 위상으로 이런 정당 체질 개편에 적극 나섰다면 적어도 진성당원 10만 명 확보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봤다.

제안문에는 ‘매월 당비 1만 원씩 내는 진성당원 10만 명이면 월 당비만 10억 원이다. 국고 보조금 전혀 없이도 정당 운영이 가능하다’는 내용까지 부연했다.

그뒤로도 이런저런 자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 얘기지만, 안철수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새정치가 실질적으로 갖춰야 할 내용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안철수 대표가 이 제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했다면 그의 현재 위상은 존재감이 희미해진 마이너 대선 주자가 아닌 퇴임을 준비하는 청와대 주인의 자리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는 한다.

역대 대선에서 지역별 표심. 호남의 표심은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좌파와 손을 잡으면서 오히려 우파가 고립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역대 대선에서 지역별 표심. 호남의 표심은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좌파와 손을 잡으면서 오히려 우파가 고립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정현, 정운천 행보가 의미했던 것

5년 전의 얘기를 새삼 다시 꺼내는 것은 당시 필자가 안철수 대표에게 제안했던, 호남 문제를 푸는 원칙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원칙의 현실성을 증명해 주는 반면교사가 20대 총선에서 호남의 견고한 벽을 뚫고 지역구 당선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던 새누리당 이정현 전 의원(순천)과 정운천 의원(전주을)의 사례이다. 

호남 정치에서 이정현 전 의원을 상징하는 표현이 ‘예산 폭탄’이다. 그는 예산 확보를 비롯해 호남 지역 이익 챙기기를 내세워 정치 역정을 전개했고, 그 결과 호남 출신으로서 보수정당 대표에까지 오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성실함과 대중과의 소통능력 등에서도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다. 득표율은 3.53%. 집권당의 대표까지 지낸 거물 정치인으로서는 너무 초라한 성적이다.

진박 정치인으로서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피하기 어려웠다지만, 예산 폭탄이라는 표현까지 내세우며 공을 들였던 지역구에서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지 못한 것은 정운천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6번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이었던 호남의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은 정치적 명분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정현 전 의원이나 정운천 의원 모두 우파의 정치적 콘텐츠를 내세우는 정치는 아니었다. 예산 퍼붓기 등 호남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 견고한 벽을 뚫어보려고 시도한 경우이다.

그런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접근이 과연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군부 엘리트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87체제 이후 우파는 선거를 통해서만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선거 승리 공식이 ‘호남 대 대한민국’이라는 대립구도였고, 3당 합당은 그런 구도의 출발점이었다.

광범위한 호남 혐오 현상은 그런 구도가 먹혀드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호남이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좌파와 손을 잡으면서 오히려 우파가 고립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등장과 대한민국의 위기는 그 최종적인 결과이다. 이정현과 정운천의 호남 접근은 기존 우파의 전략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역시 본질적으로 호남 혐오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과거의 전략과 새로운 접근법이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과거에는 호남이 약하고 소수였기 때문에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 전략 중심이었고 그래서 혐오라는 수단에 의지했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돼 호남이 다수와 주류의 위치를 차지했기에 반대로 호남 달래기에 나섰을 뿐이다.

바뀐 것은 호남 vs 보수진영의 역관계지, 호남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철학이 아니다. 이런 보수 정치인들의 문제는 김종인 위원장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5·18묘역에서 무릎을 꿇는 이벤트를 통해 호남이 보수 정치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과 심리적 장벽을 많이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평가를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접근의 성과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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