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그들만의 리그’ 이제는 끝낼 때  
[심층분석] ‘그들만의 리그’ 이제는 끝낼 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0.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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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 발표가 있었다. 오 시장은 브리핑을 열고 “지난 10년 동안 마을, 도시재생, 주민자치, 협치는 말할 것도 없고 주거, 청년, 노동, 도시농업, 에너지 등 분야에 서울시가 지급한 보조금과 민간위탁금이 1조 원 가까이 된다”며 “집행 내역을 점검해보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박원순의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ATM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들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비롯해 NPO 지원센터, 청년 사업, 사회주택 등 주요 민간보조·위탁 사업이 주를 이뤘다. 오세훈 시장의 언급에 따르면 이들은 “일부 시민단체들을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중개소를 만들어냈다”으며 ‘특정 시민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이 돼 다른 단체들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런 지원은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서 운영됐다”고 오 시장은 비판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라는 두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표적 시민단체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바 있다./참여연대
대표적 시민단체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바 있다./참여연대

시민 없는 시민사회의 민낯

1994년 여름 참여연대라는 한 신생 시민단체가 국가를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 승리했다. 다름 아닌 노령수당지급 문제였다. 당시 지방단체들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노령수당을 지급할 연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탄생 1년도 안 됐던 참여연대는 이 문제를 소송이라는 국가 제도권의 영역으로 가져갔고 결국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로 인해 당시 국가가 국민에게 자비를 베푸는 시혜쯤으로 여겼던 공공복지 개념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 명확하게 각인됐다.

아울러 사회 최저 안전망 구축이라는 참여연대의 꾸준한 활동이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참여연대의 초기 활동은 서민복지라는 개념이 취약했던 우리 사회에 분명히 건강한 역할을 해왔고 아울러 권력형 비리 감시와 만연했던 공공기관들의 부패와 부정을 척결시키는 데도 그 공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자신의 시민사회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07년 자유기업원의 용역 연구보고서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150명이 넘는 참여연대 소속회원들이 직간접 형태로 정부기관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던 참여연대가 스스로 권력에 유착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는 외관상으로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지만 참여연대의 하부기관인 좋은기업연구소는 영리법인으로 활동하며 자신들이 관여하는 소액주주 운동의 대상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제3자에게 팔아먹는 영리사업을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참여연대는 지난 2005년 국제 투기자본인 소버린 펀드가 SK 경영권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을 때 소버린 측에 대주주 조건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컨설팅해 줬고 소버린을 ‘SK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소버린은 참여연대의 기대와는 달리 SK 지분을 시장에 되팔고 막대한 차익을 챙긴 채 소위 ‘먹튀’를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들인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갔다.

현 문재인 정부는 참여연대 정권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들었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세 번 연속 참여연대 출신이 맡고 정부 부처 장관·위원장과 실·국장 등 곳곳 요직을 꿰찬 참여연대 인사가 60명이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참여연대와 쌍벽을 이루는 환경운동연합은 어땠던가?2003년 부안군수의 위도 방폐장 유치신청 기자회견을 계기로 진보 환경단체들은 부안을 해방구로 만들어야 한다며 비합리적 선동으로 1년 6개월간 주민 갈등을 초래했다. 폭력과 유언비어 난무한 후 주민 투표를 통해 반대가 결정됐다.

이후 포항, 대구, 경주 등이 방폐장 유치 경쟁 끝에 경주로 결정되었고 2007년 4조5000억의 지원이 결정됐다. 경주 원전 방폐장은 오히려 환경보호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7년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안 방폐장 반대투쟁에 참여한 주민들의 상당수가 투쟁 과정에서 생업 포기로 심한 경제적 어려움과 대인 기피증을 호소했다. 이후 부안 지역사회에는 깊은 골이 형성됐다.

당시 정운찬 총리는 세종신도시와 관련해 부안 주민의 80%가 방폐장을 유치했어야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 보호를 앞세워 국군과 주한미군을 압박하고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범국민대책위원회’ 등에 참여해 반미운동에 동참해 왔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에 참여했고 2008년에는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긴급대책회의’에도 참여했다. 

환경운동연합이 MD 미사일 방어 기지에 반대한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반미자주’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이렇듯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의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은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라는 이름의 저항적인 시민활동의 유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과제를 우리 시민사회가 전향적으로 해결해 왔다는 평가는 받기 어려워 보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당의 기능 상실’로 진단한다.

즉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정당이 대의제인 의회 정치를 통해 해소해 나가는 데 실패하면서 시민단체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 행위들이 일어났지만, 이해관계가 다원해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오히려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사회의 올바른 개념과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사실이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시민사회센터에서는 시민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시민사회는 공유된 이해, 목적, 가치를 둘러싼 강제되지 않은 집합 행동의 장을 이른다. 이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제도적 형태는 국가, 가족, 시장과 구별되지만, 실질적으로 국가, 시민사회, 가족, 시장의 경계는 복잡하고 모호하며 합의가 필요할 때가 많다.

보통 시민사회는 다양한 공간, 행위자, 제도적 형태를 포괄하며, 형식성과 자율성, 권력 면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시민사회에는 등록 자선단체, 비정부개발기구, 공동체 조직, 여성단체, 신앙 관련 단체, 직능단체, 노동조합, 자조집단, 사회운동, 기업집단, 연합 및 옹호 집단과 같은 조직을 아우른다.”

학자들에 따라 시민사회에 대한 여러 정의들과 개념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수렴하는 부분은 시민사회가 국가와 시장이라는 이분법적 체제에 제3의 섹터라는 영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일찍이 알아 본 이는 알렉시스 토크빌이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하면서 ‘무한하고 열성적인 자유로운 결사체’에 주목했다. 토크빌은 그러한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의 시민들이 자치와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민주주의의 참된 질서와 가치가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토크빌은 그러한 미국의 시민사회를 두고 ‘자유로운 결사체의 사회에서는 비록 파당은 존재할지언정, 음모론은 없다’고 말했다. 토크빌은 시민혁명을 이뤄냈다는 프랑스에서 결사체가 연고주의로 이뤄지는 사적 행태들을 보고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예언했다. 

실제로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시민정부 파리꼼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런 나폴레옹을 열렬히 지지했고 그는 황제에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개방성과 공공성은 사회적 자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학연, 지연, 정파성 등으로 결사된 시민사회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공공의 시민사회가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시민사회로는 민주주의 정착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열린 시민사회, 공공적 대의성을 가진 시민사회만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 사이에 사회적 신뢰자본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안적 시민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정부의 관치가 개입되는 행정 동원 사업 지원보다 시민의 자조와 협동의 능력을 고양하는 시민 교육에 투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월 3일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 발표에서 '박원순의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ATM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9월 3일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 발표에서 '박원순의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ATM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서울시

시민사회 국제적 역량 키워야

시민사회 30년 역사를 되돌아볼 때, 보수적 가치를 표방했던 정권에서도 부침은 있었으나, 시민사회 활성화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발표되었던 ‘시민사회발전 10대 과제’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시민사회발전 10대 과제’가 제안되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도 시민사회발전위원회 활동이 중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표방했다. 시민사회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끈 주역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며, ‘시민사회 성장기반 마련’을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고, 시민사회발전기본법(안) 제정 추진과 ‘시민사회발전위원회’를 통해 시민사회 활성화를 촉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사회 지원 발상에 앞서 OECD가 제시하는 세계적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제협력을 통한 NGO들의 활동이다.2015년 기준 정부지원금 대비 국제개발협력(이하 개발협력) 분야 NGO의 집행비 규모다.

한국 정부가 ODA 자금 중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비율은 2011년 이래 전체 국제개발원조(ODA)의 2% 내외다.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평균(10% 이상)의 5/1 수준이다.

시민단체들은 “시민사회는 개발협력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나, 정부는 시민사회를 ‘협력’이 아닌 ‘관리’와 ‘지원’의 대상으로 인식해왔다”면서 “시민사회는 국제수준에 맞는 파트너십이 필요하며 양적, 질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정부와 시민사회 간 협력원칙을 합의하는 첫 공식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로부터 프레임워크 수립을 권고받은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31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시민사회 파트너십 프레임워크(지침)’ 수립을 선언했다. 주무부처인 외교부와 KCOC, KoFID 등 국제개발협력 시민단체협의체는 대표단을 꾸려 시민사회 목소리를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시민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는 여러 협의 과정을 거쳐 정부의 프레임워크에 반영된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부응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워감으로써 국내 시민사회들의 조직과 사업 능력이 고도화 되고 국제 시민연대를 통해 민간외교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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