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보호해야 할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동’이다
[심층분석] 보호해야 할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동’이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1.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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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보수 야권에서 노동개혁이 뜨거운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후보들의 주장은 민주노총과 같은 대기업 귀족노조에 대한 해체부터 실업급여 등의 사회적 안전망과 연계된 해고 자유화, 그리고 보다 온건한 입장으로는 노사 간 대등한 협상력을 유지하고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낸다는 방안에 이른다.

1776년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부의 생산에 필요한 3요소로 노동, 자본, 토지를 들었다. 그에게 부의 생산은 노동만으로도 가능하지 않고 자본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다.

노동과 자본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효율성을 높여 결국 자본과 노동은 동반적 관계에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스미스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입증된다. 우리는 자본이 고도로 투자된 나라에서 노동의 효율성도 높고 노동 생산성도 높다는 것을 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긴 이유도 중소기업들에 자본이 충분히 고도화 되지 않아 노동으로 그 생산성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선진국들은 지난 20년 전부터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독일의 슈뢰더 정부(2003~2005)는 하르츠 개혁을 단행하여 해고제한법 적용 제외 사업장을 5인에서 10인 이하로 확대했고 파견기간의 2년 상한을 폐지했다. 이후 메르켈 정부에 들어서도 해고제한법 적용 제외 사업장을 10인에서 20인으로 확대 추진했다.

여기에 ‘근로시간 계좌제’를 도입해 업무량이 많을 때 근로시간 초과분을 적립한 뒤 업무량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할 수 있도록 하여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 등 노동개혁의 기조를 이어나갔다.

서울 서대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민노총 10월 20일 총파업 행렬./연합
서울 서대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민노총 10월 20일 총파업 행렬./연합

독일·영국이 노동개혁으로 얻은 성과

독일의 이러한 노동개혁은 ‘유럽의 환자’라고 불리던 통일 독일의 경제적 불확실과 정체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게 만들었다. OECD의 평가에 의하면 노동시장 유연성 점수(최대 10점)는 하르츠 개혁 시작 시기인 2003년 3.5점에서 2019년 7.5점으로 큰 폭 상승했다.

그 결과 독일의 고용률은 2003년 64.6%에서 2019년 76.7%로 증가했고 실업률은 같은 기간 9.4%에서 3.2%로 감소했다. 또 파견규제 완화로 인해 2003년 32.7만 명이었던 파견근로자수가 2018년 100.1만 명으로 3.1배 증가하며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영국의 노동개혁은 독일에 앞서 이뤄졌다. 영국의 대처 정부(1979~1990)는 기업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무리한 파업 관행을 막기 위해 노조의 과도한 단체활동을 개혁했다. 대표적으로 다른 노조의 파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동정파업과 노동조합원만을 채용하기로 정한 클로즈드숍 조항을 불법화했다.

이후 캐머런 정부(2010~2016)에 들어서는 돌발, 장기파업을 제한하기 위해 파업 전 찬반 투표시 투표용지 내 파업기간을 명시하도록 했고, 파업 사전 통지기간을 7일에서 14일로 확대하는 등 파업행위에 대한 엄격한 절차를 마련해 나갔다.

그 결과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줄어들었다.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연평균 기준 캘러헌 정부 기간(1976~ 1979) 동안 1307.6만일에서 대처 정부 기간(1979~1990) 동안 862.6만일로 감소했고, 캐머런 정부(2010~2016년) 들어 53.3만일로 대폭 줄었다.

노동시장 유연성 점수는 1980년 6.7점에서 2016년 8.4점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노사관계가 개선되고 노동유연성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고용여건이 개선되어 영국의 고용률은 1984년 65.9%에서 2016년 73.8%로 올랐고, 실업률은 1984년 11.9%에서 2016년 5.0%로 감소했다.

이러한 노동개혁에서 네덜란드는 중요한 모범 사례로 지적된다.

네덜란드의 루버스 정부(1982~1994)는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시간제 고용을 확대하는 노사정 합의를 도출해 냈고 물가연동 임금인상제도 폐지와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 동결 등으로 노동비용 부담을 완화했다.

이어 빔콕 정부(1994~2002)는 해고예고 기간 단축을 6개월에서 1개월로 완화했으며 업무능력 결여로 인한 해고 허용 등 해고규제를 완화했고, 파견사업 허가제를 폐지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했다.

이후 뤼터 정부(2014~) 들어서는 해고수당의 상한을 설정하는 해고규제 완화와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최장 38개월에서 24개월 단축을 골자로 하는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의 노동시장 유연성 점수는 1980년 3.0점에서 2019년 7.6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시간제 고용 활성화, 파견 기간제 규제 완화 등 노동유연성 제고는 상대적으로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청년과 여성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전체 고용지표 개선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여성 고용률은 1982년 35.8%에서 2019년 74.1%로 2배 이상 상승했고 청년실업률은 같은 기간 11.3%에서 5.4%로 감소했다. 전체 고용률은 1982년 52.8%에서 2019년 78.2%로 올랐고, 실업률은 같은 기간 9.7%에서 3.4%로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직된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직된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대등한 노사관계마저 훼손한 文정부

반면 우리 나라 노동정책은 이러한 국가들과는 반대로 진행됐다.

노동유연화가 아니라 노동경직성을 강화하는 노동정책들이 다수 도입되었는데, 2017년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의 노동비용 부담은 증가했고 인력 운용의 자율성이 제한됐다.

여기에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비종사자 사업장 출입 허용 등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소지가 있는 노조 단결권 강화 정책이 시행된 바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점수는 2019년 기준 4.8점으로 노동개혁 성공 3개국의 평균인 7.8점을 하회했고, 고용률은 66.8%로 3개국 평균인 76.8%보다 10.0%p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 역행적인 노동정책은 노조들의 잦은 파업과 정치적 영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은 파업이 선진국보다 많은 편이다. 지난 10년간(2009~2019) 한국과 G5 국가들의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를 비교하면 ▲한국 38.7일 ▲프랑스 35.6일 ▲영국 18.0일 ▲ 미국 7.2일 ▲일본 0.2일로 한국은 일본에 비해 193.5배 높았다. 무리한 파업 관행으로 인한 산업 피해도 컸다.

2017년 이후 언론에 보도된 파업 사례만 종합해봐도 파업으로 인한 기업들의 생산손실 피해액은 4조 원이 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파업 시 대체근로를 금지하기 때문에 파업이 발생하면 생산 차질로 인한 판매 및 수출 타격은 물론 협력업체 폐업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H사는 2016년 총 36차례 파업에 대해 대체근로를 사용하지 못해 3조1000억 원의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고 R사는 2019년 총 312시간의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하여 한때 매출액 200억이었던 협력업체 한 곳이 폐업하기도 했다.

반면 G5 국가들은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대체근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미국은 임금인상·근로조건 개선 목적의 경제적 파업의 경우 영구적인 대체근로까지 허용하고 있으며 추후 파업참가자의 사업복귀도 거부할 수 있고 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경우 신규채용 및 도급 방식으로 대체근로를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등하지 않은 노사관계를 정부가 방치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파업 시 주요업무시설에 대해서만 점거를 금지하고 사업장 내 부분점거가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직장점거는 종종 생산라인의 점거, 회사 시설물 손괴, 비조합원 및 사무직원에 대한 작업방해와 폭력행사 등의 불법행위로 이어져 기업에 더 큰 손실을 미치게 된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직장점거를 불법으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이들 선진국에서는 파업은 사업장 밖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는 경우 미국·영국에서는 징계·해고까지 가능하며, 독일은 사업장 출입을 희망하는 근로자를 강제로 저지해 위력으로 파업참가를 강요하면 형법상 협박죄가 적용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직장내 부분·병존적 점거를 허용하나 실제 파업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파업에 대한 공권력의 미온적인 대처는 파업이 장기화로 이어져 관련 산업의 피해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불법파업에 대해 공권력이 엄정하고 빠르게 대처한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항공 관제사들이 벌인 불법파업에 대해 48시간 내 업무복귀를 명령했고 이를 어긴 근로자들 1만1000여 명의 해고를 단행하여 대규모 불법파업 관행의 고리를 끊었다.

영국 대처 정부는 1984년 탄광노조 총파업에 대해 위법으로 판단하고 공권력을 동원했으며 약 2만 명 광부들의 해고를 내용으로 하는 국영광산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우리도 ‘친노조’에서 ‘친노동’으로 그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비되어 일컫는 용어로서 2010년 11월 ISO 26000을 통해 사회적 책임(SR)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노조, 시민단체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 이 중 노동조합의 실천과제가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USR은 노동조합 활동시 기업, 정부, 소비자, 하청근로자, 비정규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포함하고 투명한 운영과 법적 윤리적 행동 준수를 통한 역할을 수행하라는 책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USR의 주요 내용은 ISO 26000에서 체계화되어 있고, 그 중 USR에 관련된 핵심 주제에 관한 지침은 조직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운영관행, 소비자쟁점, 지역사회 참여와 개발 등 7가지로 표현된다. 

USR은 노동계에서 적극적으로 반기는 아젠다는 아니지만, 과거의 노동조합은 이러한 역할을 다 못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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