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발안제, 해외는 어떻게?
[심층분석]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발안제, 해외는 어떻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2.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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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직접 조례를 청구해 제정하는 주민발안제는 주민소환제와 함께 지방자치,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평가된다.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지방자치법에 의해 이제 우리나라도 주민들이 직접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이러한 주민자치제도는 현명하고 신중하게 운영될 경우,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로 나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집단 이기주의에 함몰될 경우, 지대추구라는 비효율적이고 갈등적인 상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외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주민발안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활발히 운영되는 대표적인 국가다. 사진은 광장에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표결하는 모습.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활발히 운영되는 대표적인 국가다.
사진은 광장에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표결하는 모습.

미국

로마의 호민관 본딴 입법자문관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국민발안제는 없고, 지방차원에서 주민발안제(initiative)를 오래 전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 50개 주(州) 가운데 24개 주가 발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발안의 대상은 주 헌법개정안이나 주 법률개정안이다.

이 중에서 21개 주가 주 법률개정안을, 18개 주는 주 헌법개정안을 발안할 수 있다. 미국에서 주 헌법개정안의 경우 직접발안을 채택하는 주는 16개이고, 간접발안은 2개이다. 주 법률개정안의 경우에 직접발안을 채택하는 주는 14개이고, 간접발안은 9개가 있으며, 2개 주 (유타, 워싱턴)는 둘 다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978년에 재산세를 경감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발안 제13조(California’s Proposition)가 주민투표에서 65%의 지지를 얻어 관련 규정이 승인되자, 이후 미국 전역에서 많은 주민발안이 제안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주민발안 및 주민투표에 관한 법적 근거는 주헌법이며, 상세 규정은 캘리포니아주 선거법에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주 헌법과 법률개정안 모두 발안 대상이며, 주민들이 제안하고 직접 투표까지 하는 직접발안제도가 있다.

1911년 캘리포니아주가 주민발안제도를 도입한 이후 1912년부터 2020년까지 총 2068건의 주민발의안이 제출되었고 이 중에서 서명 요건 등이 충족된 392건 중에서 137건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주민발안의 절차는 5단계이다. 1단계는 법안의 기초단계로, 주민발안의 청구자는 입법자문관(Office of Legislative Counsel)의 검토와 자문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단계에서는 주민발안 청구자는 주의 법무장관에게 2000달러의 기탁금(주민투표 회부시 반환)과 함께 검토를 거친 발의안을 제출한다.

3단계는 법안의 경우 직전 주지사 선거에서 모든 후보에게 투표된 표수의 5%의 유권자 서명, 헌법 개정안의 경우는 8%의 유권자의 서명을 받은 후 법무장관에게, 발안하는 법안 또는 헌법 개정안의 법문을 명기한 청원서를 제출한다.

4단계는 법무장관이 서명자의 수를 심사하고, 주민발안의 요건이 충족되었는지 확인한 뒤 적어도 131일이 지난 후 실시되는 총선 또는 주 차원에서 실시되는 특별 선거 때 해당 주민발안을 주민투표에 회부한다. 5단계는 발의안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해 찬성표가 많으면 안건은 승인되고 입법이 된다.

일본

지방의회가 선도하는 주민발안제

일본은 지역에서 ‘조례의 제정 및 개폐청구’제도를 오래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1947년 일본 ‘지방자치법’ 제정 당시에 주민조례청구 관련 규정이 있었고, 지금까지 몇 차례 일부개정은 했으나 큰 틀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주민조례청구제도는 ‘지방자치법’ 제74조, 제74조의 2~제74조의4에 규정되어 있고, 구체적인 청구절차 등은 동법 시행령에 있다.

주민조례청구는 유권자 총수의 50분의 1 이상의 연서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청구할 수 있다. 청구 대상은 조례이나, ‘지방세의 부과징수 및 분담금, 사용료 및 수수료의 징수에 관한 것’은 제외하고 있다(동법 제74조).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인명부 등록 여부가 확인되면 조례청구 대표자에게 증명서를 교부하고, 주민의 서명 수집이 실시된다.

조례청구의 서명을 수집할 수 있는 기간은 도·도·부·현은 2개월 이내, 시·정·촌은 1개월 이내이다. 주민이 청구한 조례안에 대한 최종결정은 지방의회에서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청구를 수리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의회를 소집하고, 청구와 관련된 조례안에 대한 의견을 부쳐 그 결과를 대표자에게 통지함과 동시에 이를 공포해야 한다. 지방의회는 부의(附議)된 조례안을 의결하는데 의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된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최근 15년간(2003년 4월 1일~2018년 3월 31일) 전국에서 총 626건의 주민조례청구가 있었는데, 광역자치단체인 도·도·부·현은 9건이고,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은 617건이었다. 처리결과를 보면, 626건 중에서 지방의회에서 가결(수정가결 포함)된 안건은 90건(14.4%)이었다.

청구된 조례안의 내용을 보면, ‘주민투표에 관한 사항’이 442건(70.6%)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가 99건(15.8%), ‘의원 등의 정수에 관한 사항’이 71건(11.3%) 순이다.

여기서 ‘주민투표에 관한 사항’이 많은 것은 일본의 주민투표제도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별도의 주민투표법이 없으며, 헌법과 법률상 이외의 주민투표 사안이 발생하면 지방의회가 먼저 조례를 제정한다.

이러한 주민투표조례는 주민의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의 제안 또는 주민의 직접 청구에 의해 그때마다 의회의 의결을 얻어 제정되는 조례이다.

독일

정부와 의회의 권한 경계가 분명하다

독일은 연방 차원의 국민발안제는 없고 지방 차원에서 주민발안제도가 있다. 주민발안이란 새로운 입법안을 제안하거나 기존 법률의 개정이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직접발안과 간접발안 제도가 있으나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주민발안의 대상은 주의 입법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허용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의 인사, 조직, 예산 등의 사항은 주민발안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주민발안의 허용 여부는 주별로 결정한다.

독일의 16개 주(州)에서 주민발안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주별로 도입시기와 실시 방식 등은 차이가 있다. 주(란트)보다는 주의 자치단체(크라이스, 게마인데)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1946~2018년까지 연방 주에서 주민들의 서명등록절차까지 시행된 주민발안(Volksbegehren)은 95건이었다. 그리고 1956~2019년까지 연방 주내 자치단체(kommunaler) 수준에서 주민발안(Burgerbegehren)은 총 6737건으로 조사되었다.

1946년에 주민발안제도를 도입한 바이에른(Bayern)주의 지방자치법(Gemeindeordnung fur den Freistaat Bayern) 제18조의a에 주민발안과 주민투표 관련 사항이 있다.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정책에 대한 주민발안을 신청할 수 있으며 지방의회는 주요한 지역정책에 대한 주민투표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의 조직, 시의회 의원·시장 및 시 공무원의 법률관계, 예산에 관한 사항은 대상이 아니다. 주민발안을 지방자치단체에 청원할 때 3명 이상의 대표자 이름을 기재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대표자가 지역주민의 유효한 서명이 있는 목록을 제출해야 한다.

자치단체의 주민수에 비례해 연서의 규모를 3~10% 이내로 정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주민발안을 주민투표로 부칠지 여부를 한달 내로 결정해야 한다. 주민투표는 발안이 승인된 3개월 이내에 일요일에 실시하고, 의회는 주민발안 대표자와 합의하여 마감일 3개월까지 최대 연장할 수 있다.

스위스

인구가 적을수록 더 촘촘한 주민주권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제도가 활발히 운영되는 대표적 국가다. 국가 단위에서 국민발안제도가 있고 지방정부인 주(칸톤)와 기초자치단체(게마인데)에서도 주민발안제도가 있다. 주민발안은 지역별로 대상, 요건, 절차 등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주의 법률개정안에 대한 주민발안은 평균 1~2%의 주민 서명이 요구된다. 스위스의 경우 발안이 주민투표로 가기 전에 의회와 발의 대표자들 간에 사전 토의를 주로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수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음은 제네바(Geneve)주의 운영사례이다. 주민발안 관련 사항은 제네바주 헌법(Constitution de la Republique et canton de Geneve) 과 제네바주 참정권 행사에 관한 법률(la Loi sur l’exercice des droits politiques)에 근거가 있다.

제네바주의 경우 주민들이 주헌법의 개정, 주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 등에 관련된 사항을 발안할 수 있다.

제네바주의 선거권자 3% 이상의 연서로 주헌법의 개정에 대한 주민발의안을 주의회에 제출할 수 있으며, 2% 이상의 연서로 주법률안에 대한 주민발의안을 주의회에 제출할 수 있다.

주민발안 청구자는 개인 또는 단체의 이름을 통지하고 주민발안에 대한 철회 권한이 있는 9명의 인적 사항을 적어 서명부 견본을 주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다.

선거공보에 주민발안 개시 공고가 나면 주민의 서명 수집이 시작되며 4개월 이내에 법률 제·개정에 필요한 수의 주민 서명이 수집되어야 한다. 서명 수집이 완료되면 서명부를 제출하고 제네바주의 내각에 해당하는 평의회(Conseil d’Etat)는 서명의 유효성을 심사하고 그 심사결과를 청구자에게 통지하고 주의회(Grand Conseil)에 송부한다.

주의회에서는 주민발안을 심의하는데, 심의 기간은 최대 12개월이며, 다만 일반적 제안 형식의 주민발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거나 대안 제출 여부를 결정할 경우에는 심의기한을 24개월로 연장할 수 있다.

주의회는 제출된 주민발안에 대한 승인이나 거부 등 심의권한이 있으나 주민발안의 채택 자체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의회가 주민발안에 대해 거부 결정을 한 경우에도 해당 주민발안이 철회되지 않는 경우에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며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채택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해외 사례를 통해 본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발안제도가 활발한 국가나 지역의 경우에 주민발안을 청구하는데 필요한 주민연서의 기준이 높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주민연서의 기준을 완화시켰다.

그런데 주요국의 실제 운영실적을 보면, 광역자치단체 수준에서 실시하는 주민발안은 많지 않았고, 기초자치단체에서 보다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둘째, 주민발안의 청구 대상에 대한 규제가 많지 않았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주민발안의 형식과 내용에 규제가 있으나, 주로 행정기관 내부의 조직 및 인사, 예산 관련 사항 등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주민조례청구의 대상에서도 조례 중에서 ‘지방세의 부과징수 및 분담금, 사용료 및 수수료의 징수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청구가 가능하다.

일본의 한 지방자치 의회 모습.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지방분권적 사회였다.
일본의 한 지방자치 의회 모습.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지방분권적 사회였다.

선진국 사례의 시사점

주민발안제도가 활발한 국가나 지역의 경우에 주민발안을 청구하는 데 필요한 주민연서의 기준이 높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주민연서의 기준을 완화시켰다.

그런데 주요국의 실제 운영실적을 보면, 광역자치단체 수준에서 실시하는 주민발안은 많지 않았고, 기초자치단체에서 보다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주민발안의 청구 대상에 대한 규제가 많지 않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주민발안의 형식과 내용에 규제가 있으나, 주로 행정기관 내부의 조직 및 인사, 예산 관련 사항 등이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주민조례청구의 대상에서도 조례 중에서 ‘지방세의 부과징수 및 분담금, 사용료 및 수수료의 징수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청구가 가능하다.

주민발안 청구자가 해당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에 제출시 법적 검토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지역도 있다. 이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주민들이 작성한 발의안에 대해 제출 전 성안 검토 등을 해주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민발의가 정식으로 접수되기 전에 입법자문관의 검토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스위스, 독일의 주민발안제도에서는 지방의회만 최종결정을 하는 간접발안 방식뿐만 아니라 부결되거나 일정 요건이 되면 주민투표로 부치는 직접발안 방식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같이 지방의회에서 해당 조례안을 최종적으로 심의·의결하는 간접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사는 국회입법조사처의 2021년 12월10일 <입법과정책>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21월부터 달라지는 주민조례발안제

 

주민조례발안제는 주민이 직접 지방의회에 조례 제정을 제안할 수 있는 제도다. 주민이 필요한 정책을 직접 제안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엄격한 청구요건과 복잡한 절차 등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연평균 13건이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주민발안 기능을 강화하고 제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내년 113일부터 시행된다.

 

청구요건 완화

기존 19세 이상이었던 청구권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낮춰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 또한 기존 광역·기초자치단체로 구분되었던 청구 서명요건을 인구규모별 6가지로 세분화해 서명비율을 낮췄다. , 자치단체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법에 따른 상한선 내로 규정한다.

 

청구절차 간소화 및 지원 강화

단체장에게 제출 후 각종 절차를 거쳐야 했던 과정을 줄이고 주민이 직접 지방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민이 조례안을 작성할 때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치단체 소속 자문 변호사를 활용하는 등 국가 및 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뤄진다.

 

조례안 이행력 강화

조례안이 발의되더라도 지방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제도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1년 이내로 조례안 심의·의결을 의무화(1년 연장 가능)하고 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차기 의회에 한해 계속 심사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온라인 조례 제안

스마트 시대에 부응하여 온라인으로도 조례를 제안할 수 있게 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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