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지방자치, 제2의 민주화인가
[심층분석] 지방자치, 제2의 민주화인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2.01.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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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3일부터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효력을 발휘한다. 30년 만에 이뤄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의미지만, 올해 6월 지방자치 선거가 3월 대선과 불과 3개월 차이를 두고 실시된다는 점 때문에 지방자치의 굵직한 의제들이 대선 공약과 맞물려 등장할 수도 있는 관측들이 있다.

다만, 지방자치에 대한 기본 철학과 이념적 측면을 볼 때, 국민 사이에 제대로 된 이해나 튼튼한 합의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2020년 8월 MBC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방자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73%가 넘는 사람이 지방자치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OBS가 8월 13~18일 경기·인천 거주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지방의회 활동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67.8%, ‘기초단체장의 활동을 전혀 모른다’는 답변은 50.7%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은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지방자치에 그렇게 관심이 큰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같은 해 영남일보-KBS 대구가 실시한 공동 7월 정기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점을 보다 잘 보여준다. 응답자들의 40.7%만이 ‘지방자치를 잘 알고 있다’고 답했으며 ‘기초의원을 잘 모른다’는 응답은 43.3%였다. 심지어 ‘기초의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에는 60.6%가 찬성했고,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은 23.7%에 불과했다.

지난 해 2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지방자치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63.5%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에 만족하는가?’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13.5%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부정적인 답변은 35.8%(긍정 24.0%)로 조사되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재정분권은 지방자치제의 가장 핵심적 사항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재정분권은 지방자치제의 가장 핵심적 사항이다.

지방자치와 수직적 민주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찬성률과 동반되는 지방자치에 대한 적지 않은 무관심, 무용론 현상은 우리 정치 제도가 가진 역사적 경로성에 의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민주화’를 중앙 독재 권력에 대한 시민의 통치적 길항 개념으로 파악해 온 반면, 주민적 관점에서 중앙 권력의 분산화라는 개념으로는 민주화를 인식해 오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에는 우리 국민 내부에 자리한 유교적 중앙국가의 전통과 6·25전쟁을 통해 획득된 안보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연구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시 말해, 중앙 통제를 벗어나는 지방자치는 안정보다 혼란을, 통합보다는 분열을 불러오기 쉽다는 인식과 함께 ‘수준 낮은’ 지역 정치가 부정부패를 부르게 된다는 우려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배경에는 국가주의(statism)가 작용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국가주의란 사회 여러 부문의 궁극적 정점은 국가라는 생각이다. 이와는 달리, 국가란 결국 사회 연대체들의 정치적 연합에 불과하다는 관점도 있다.

따라서 국가에 앞서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연대로서 이웃이라는 ‘커뮤니티’, 즉 지역 공동체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당연한 정치 철학이 된다. 이러한 입장들은 각 나라가 처한 역사적 경험의 제도적 경로를 따라 진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우리가 채택하는 지방분권의 정치철학은 유럽, 특히 독일이 분열에서 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획득한 정치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지방자치, 지방분권 제도가 독일의 경험을 넘어 유럽 전체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된 점에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철학적인 사유가 있다.

독일어의 표준이 어디냐는 논쟁이 있을 정도로 다원화되고 다양한 로컬리티를 가진 게르만의 독일에 통합을 유지하는 원리를 제시한다는 것은 독일 정치학자들과 법학자들에게는 악몽과 같았다. 하지만 끝내 길을 찾았으니, 바로 ‘보충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큰 것이 작은 것에 개입할 때는 작은 것이 할 수 없는 것에 한해야 한다’는 원칙이며 이를 위반하면 ‘죄악’이라는 도덕과 법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작은 지자체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며 보다 높은 주(州)의 행정 개입은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만 허락된다.

이러한 원칙이 독일의 통일된 정체성을 유지하는 지방자치, 지방분권의 기본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방자치의 미덕을 독일 학자들보다 먼저 알아본 이는 다름 아닌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아담 스미스였다.

서구 지방분권은 주민자치 'Town Meeting'에서 출발했다. 사진은 영국 포츠머스 웨스트포트 지역의 주민자치회의 모습.
서구 지방분권은 주민자치 'Town Meeting'에서 출발했다. 사진은 영국 포츠머스 웨스트포트 지역의 주민자치회의 모습.

오래된 이념 ‘분권’, 중앙과의 균형이 관건

1776년 출간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지방자치와 관련해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도시의 흥기와 발전에 대하여’라는 장(章)에서 아담 스미스는 로마의 몰락 이후 쇠락해 가는 도시와 발전해 가는 도시들이 있음에 주목했다. 쇠락해 가는 도시의 주민들은 대개 토지를 갖지 못하고 노예적으로 떠돌거나 시장과 시장을 떠돌며 행상을 했다.

반면, 어떤 도시의 사람들은 지주들에게 고정률의 지대를 지불하거나 땅을 사서 자영농을 했는데 이들에게는 자치권이 주어졌다. 이들은 군대를 가질 수는 없었으나 자신들의 행정관과 판사들을 가질 수 있었다.

강도떼들과 외적들이 이들의 재산을 탐해 쳐들어 올 때 대영주들은 보호를 제시했지만, 이들은 이를 거절하고 스스로 연대해 외적을 물리쳤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치권을 가진 구역에 담장을 둘러 쌓았다. 이들은 부르거(burghers)라 불렸는데, 바로 훗날 유럽의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주도한 부르주아들의 시초였던 것이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고찰은 주민자치에 대한 시민적 덕목을 발견케 했다. 많은 학자들이 주민자치가 공동체의 운영방식을 뛰어넘어 주민들의 민주시민교육의 장(場)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주목했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고찰하며 ‘시민들의 지방 모임은 자유국가의 힘의 원천’이라며 ‘타운미팅(town-meeting)과 자유와의 관계는 초등학교와 학문과의 관계와 같다. 타운미팅은 자유를 어떻게 이용하고 향유하는지 가르친다’고 일찍이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 지방자치론에 이정표를 세운 영국의 톨민 스미스(Joshua Toulmin Smith)는 앵글로 색슨 주민들의 자조·협동 전통이 영주들의 폭정을 막아내온 역사적 경험들을 제시해 주민자치제가 주민들의 참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민의식을 함양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미스는 지방자치와 국가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중앙집권화는 개인을 이기적으로 만들어 인류를 퇴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공적인 책임을 회피하게 한다. 반면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 보장,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 경쟁사회에서 창의력 발휘를 보장하는 지방자치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 프랑스 몽테스키외(Baron de Montesquieu)는 중앙정부의 ‘3권 분립’을 통한 권력 남용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력분립을 통해 중앙정부의 독재를 방지하고,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한 축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의 지방자치를 연구해 온 이진원 서울시립대 교수 연구에 의하면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패전 이후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의 점령 하에 추진된 ‘타율’적 분권이었다. 그러한 지방자치 분권은 일본 사회 전반의 개혁을 담지한 ‘일본의 민주화’와 ‘비군사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진원 교수는 그러한 대표적인 제도 변경으로 경찰관련제도, 교육관련제도, 지방자치 등을 꼽는다. 군국주의 사상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실행하며 그 도구로 이용된 각종 제도는 패전 이후 전면적으로 제·개정되어 민주화와 지방분권화를 원칙으로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제도가 재개정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비군사화’ ‘민주화’라는 사회적 원칙이 깨지고 경제적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능률화’에 초점을 두고 이를 위해 중앙집권적 성격을 띤 전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역코스’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방자치제 역코스는 마을 단위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역성에 한계가 확인된 것이다.

일본의 지방자치제도의 역코스와 관련해 제기되는 지방자치 무용론 중에는 영토가 넓고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 나라들에는 지방자치가 필요하지만 한국처럼 단일 문화에 작은 나라에는 지방자치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정치 철학은 개인과 가족의 실존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라는 점은 간과될 수 없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곳에서부터 행복해야 국가에서도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엉망진창인데 국가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잘 알며, 그 해결 방안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지자체들로 하여금 경쟁을 통해 성공한 지자체의 행정과 경험이 확산된다는 장점도 있다. 중앙의 잘못된 정책으로 모두가 실패하는 것보다 어느 하나는 성공할 수 있고, 우리가 그 성공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제도가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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