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 치유를 위한 5대 전략
한국병 치유를 위한 5대 전략
  • 최광 미래한국 편집고문. 전 보건복지부 장관
  • 승인 2022.04.06 11: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기적은 기본적으로 불굴의 정신을 가진 국민과 지도자들의 합심 노력의 결과이기는 하나 역사의 매 순간을 뒤돌아보면 알 수 없는 신의 섭리가 작용한 결과이다.

해방 후 국토분단의 와중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도, 해방 후 좌파 공산주의가 우세한 이념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나라 정체성의 중심이 된 것도, 건국 후 채 2년이 안 된 시점에 북한 공산세력의 전복 적화 야욕을 분쇄해 나라가 보전된 것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기적을 이뤄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 주는 국가로 전환한 유일한 사례가 된 것 이 모두가 체계적 노력의 결과이기보다는 무언가 신의 섭리가 작용한 기적이다.

이 기적의 뒤켠 골방에서 일군의 음흉한 세력이 배태되었고 문재인의 집권과 더불어 이 세력들의 최후 준동에 의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백척간두(百尺竿頭)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처했었다.

민족민중주의를 내세우는 종북 좌파세력은 지난 30년간 자신들이 키운 힘과 세력을 바탕으로 건국 이후 이 나라가 세운 가치와 이 나라가 이룩한 기적을 훼손하고 파괴했다. 헌법 외교 안보 국방 사법 교육 언론 문화 방송 경제 재정 기업 행정 인사 등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 파괴로 인해 대한민국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북한 공산세력에 의해 적화될 뻔했다.

2022년 3.9 대선에서 우파 세력의 기적적 승리로 대한민국을 구하고 바로 세우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선 기간 중 엄청난 공약들이 제시되고 인수위원회도 이런저런 정책들을 수없이 발표하나 일관된 관점이 없는 지엽적 단편적 진단과 처방에 불과하다.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주로 좌파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 때문이지만 우파의 잘못 또한 적지 않다.

많은 분들이 나라의 장래를 참으로 크게 걱정한다. 무언가 체계적인 논의와 보다 조직적 적극적인 나라 세우기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체계적인 논의도 적극적인 활동도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다. 더더욱 대한민국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한마디로 ‘한국병’의 치료이다. ‘한국병’ 치료에는 그 내용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처의 영국병 치료와 같은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로 종북 주사파 세력이 파괴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체제교체를 이뤄내는 것이다.

대처 영국 총리는 영국병을 고쳐 영국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대처 총리 집권 직전의 영국 경제 및 사회는 오늘의 한국과 똑 같았다. 지속적인 저성장과 높은 실업, 노동조합의 횡포, 큰 정부, 과도한 조세, 반기업 정서로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은 사라지고 나라꼴이 참으로 엉망이었다.

이에 대처 총리는 철의 여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조의 불법 활동을 완전히 제압하면서 경제안정화, 정부개혁, 노동개혁, 민영화, 금융개혁, 규제개혁 등을 통해 영국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대처 총리의 개혁은 그대로 모방해도 될 정도로 훌륭하다. 대처가 추진한 정책도 정책이지만 대처와 같이 자유주의 이념에 충실한 신념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좌파 15년의 집권 결과로 대한민국 전체가 철저히 파괴되었다. 2022 대선의 맥점은 보수 진보 세력 간 단순한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는 체제교체를 명실상부하게 확실히 해내는 것이다.

대선 기간 중 체제교체란 말이 나오기는 했으나 안타깝게도 인수위에서는 체제교체란 말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

현재의 1987체제를 파기하고 새로운 2022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1987체제의 담론 주제는 ‘민주화’였는데 좌파는 이를 ‘민중민주화’로 이해하고 ‘민족공조’를 추구하면서 광범위하게 구축한 진지를 기반으로 과감한 기동전을 펼쳐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을 집권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시대적 변화를 표피적으로만 인식하고 이념에 대해 무개념·무대책·무방비였기에 안보정책을 빼놓고는 자신들의 정책을 진보정권과 유사하게 가져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결과는 체제 전복 세력의 체제 전복이었다.

국가 정체성 회복이 생존 번영의 기반이라는 국민 공감 있어야

대한민국을 망친 1987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2022체제를 구상하려면 새로운 담론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유화’ 담론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국정운용의 기본 축을 ‘좌파 척결’,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세우기’, ‘국가 정체성 회복’ 중 하나를 명시적으로 선택 설정하고, 특히 집권 초기에 이에 총력 매진해야 한다.

체제교체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나 체제교체를 이뤄내지 못하면 임기 중이나 후에 좌파가 다시 등장하는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통합정치’와 ‘실용주의’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대처 방식 한국병 치유든 체제교체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준비된 전략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공감을 받아내야 한다.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현자(賢者)들이 시대마다 나라마다 고민에 고민을 하여 왔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의 지혜로 바른 비전과 전략이 쌓여왔다. 말의 성찬이 아닌 지혜로 쌓여온 오래된 기본에 충실한 비전과 전략을 위기의 대한민국에 새롭게 적용함으로써 나라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본 글은 이 막중한 과업을 위한 기초자료이다.

대한민국을 반듯하게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 바늘허리에 실을 꿰어 옷을 만들 수 없듯 임기응변적 땜질로 반듯한 국가가 만들어질 수 없다.

개인적 삶에는 물론이고 국가 대사(大事)에서도 원리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하는 것 외에는 대안도 비책도 없다. 담대한 비전과 전략을 논의하기 이전에 그리고 구체적 정책과 대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논의의 기본이 되는 관점을 다섯 가지 맥점으로 제시 논의한다.

첫째, 국가운영과 정책추진에서 반듯한 이념 정립이 필요하다. 이념은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국가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념과 관련된 중요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체계적으로 진화해 온 좌파(진보)‧우파(보수)의 역사적 경험이 없다. 따라서 서구에서 전개된 이념들을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으며 각 이념의 신봉자들 특히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분명히 하면서 이념과 정책 간에 정합성(整合性)을 유지해야 한다.

우파(보수) 대 좌파(진보) 진영 간의 이념적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있어 왔으나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이념적 대립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외형상으로는 논쟁이 매우 뜨거운 것 같으나 실제로는 정치적 개인적 동기에서 수사적(修辭的)으로 이념을 이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없이 편 가르기나 상대방을 비난하고 제압하는 수단으로 이념논쟁이 공허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좌파에게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우파에게로 기울게 해야만 나라가 번영하고 국민이 편안해진다. 논쟁을 회피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이념논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대립의 근원은 이념대립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우파로 기울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당면과제이다.

이념에 중도(中道)가 있고 중용(中庸)이 좋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다. 이는 잘못된 것으로 이념에는 결코 중도가 있을 수 없다. 두 종교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받아들여 중도가 될 수 없는 것은 한 개인이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믿는 종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한 사람이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는 경우 그는 사이비이고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배척 받을 것이다.

현실의 이념논쟁에서 나타나는 큰 문제는 첫째로 우리의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로 자신이 가진 이념에 배치되는 정책을 다반사로 제시하는 점이다. 정당은 이념 결사체이기에 정치가는 공인으로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온갖 진보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우파라고 자처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등과 분배적 시혜정책을 강조하는 좌파가 시장경제의 신봉자라고 외치는 것은 모순의 극치이다. 우리의 정당은 이념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어떻게 한 정당 내에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가? 정책 내용의 차이가 있는 정당 간에 나타나는 것보다 한 정당 내 다른 분파 간에 더 클 수 있는가?

좌파들이 주창했던 역사적 ‘진보’는 어떻게 되었는가?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은 그 세기 초반에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등장했다가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진보는 커녕 ‘퇴보’의 극단적 형태인 해체‧소멸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진보세력들이 주창하는 “더불어 잘 사는” 진보이념은 관념적으로 훌륭할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재앙만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에서의 교훈이다. 광신 종교집단인 종북 좌파는 대한민국에서 확실히 척결되어야 한다.

둘째, 개개인은 천부(天賦)의 자유로 태어났기에 자유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자유주의 정신이 한국병 고치기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사회의 모든 악이 자유주의 탓으로 돌려질 만큼 자유주의가 비판받고 있다. 교육에서든 정치에서든 자유를 확대하는 사상보다는 자유를 제한하고 정부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는 사상이 지배적이다.

20세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번영을 누리고 경제가 번창하는 데 반하여 한정된 이성과 이기주의적 편견의 소유자인 인간 또는 특정 집단이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 그 사회는 부패하고 경제는 쇠퇴한다는 것이다.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자유로 말미암아 우리가 번영하고, 우리의 야망을 달성하려고 애쓰며, 스스로의 인생 행로를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 또는 남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고 개발된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각종 혜택을 향유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정책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일한 진보정책이다.

최근 우리는 자유가 확대되기보다는 자유가 제한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커질수록 자유는 제한된다. 법률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예산규모가 확대될수록 정부는 커지고 개인과 기업의 활동은 제한을 받기에 자유는 축소된다. 국가 번영의 길은 자유 확대와 작은 정부에 있다.

일부 사람들은 평등을 자유보다 중시한다.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평등을 자유보다도 앞세우는 사회는 결국 평등도 자유도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첫째로 내세우는 사회는 보다 큰 자유와 보다 큰 평등을 동시에 달성할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좋은 사례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월간조선 캡처 이미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월간조선 캡처 이미지

지도자는 인기 의식하지 않고 역사의 성공 실패 교훈 인지가 중요

셋째, 국가의 운명은 훌륭한 지도자를 갖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부국과 안민은 언제나 위대한 지도자와 함께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확고한 신념 하에 국가정책을 추진할 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다.

대중이 요구하는 바를 따라가는 사람(follower)이 아니고, 신념과 확신으로 국민을 끌고 가는 사람(leader)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일 때 나라가 번창했다.

국민은 소통하는 지도력(leadership) 있는 지도자(leader)를 원한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에 주목하며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이 어떤가를 즉각적으로 인지 판단한다. 반듯한 심성의 지도자의 언행에 신뢰를 보낸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보다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은 영악하며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 지도자의 심성이 불순하면 즉각 마음을 거둬 민심이 이반(離反)한다.

나라의 번영 여부와 정책의 성공 여부는 지도자들의 인기 여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지도자들이 지난 역사에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얼마나 인지하고 그 교훈을 거울삼느냐에 달려 있다.

좋은 지도자는 현실적 감각이 탁월하고 현실 문제를 극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는 위기 속에서도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고양시키며 더 큰 미래를 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건국 이래 12분의 대통령 중 위대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단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살 수 있게 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이고, 경제번영으로 우리가 잘 살 수 있게 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일등 공신은 80년대의 속칭 민주화 세력이 아니고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초로 해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자체가 우리의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큰 민주화 작업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정점(頂點)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위업(偉業)이 없었다면 1980년대 민주화가 가능했겠는가?

정부 수립 후 3년이 안 된 시점에서 공산세력이 무력 도발을 했을 때 이를 격퇴시킨 고군분투가 건국 이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두 번째 초석이 아닌가? 80년대의 민주화는 세 번째 방점에 불과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도 매우 흥미롭고 훌륭한 사례이다. 그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했는데도 지지율이 대단히 높았다.

이는 좌파들이 그를 왜곡 폄하했으나 그가 추진한 정책이 경제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그 자신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안보관 아래 박정의 대통령이 성취한 ‘한강의 기적’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산업화를 달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도자와 관련해 우리의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 김일성 사진이 중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나 이승만 사진은 없으며 김구와 좌파 대통령들의 동상과 기념관은 즐비하고 화려하나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동상과 기념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광화문과 화폐 도안에 조선시대 인물로 채워져 있으나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없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넷째, 국가 경제의 운영에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이 인식되고 경제정책은 물론 많은 국가정책에서 시장경제 원리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해 우리나라만큼 일반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실패했고 만악(萬惡)의 근원이란다. 공황, 불황, 실업, 양극화 등을 경제적 재앙이라 부르고 그 재앙의 원인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난한다.

재앙의 실질적인 원인은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 정부에 있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야말로 경제적 기적을 창출한 최고의 성공 사례이다. 지금껏 어떤 체제도 인간의 삶을 이만큼 발전시키지 못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 무엇일까? 20세기 초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후 72년 존속하다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이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

좌파 사회주의 사상은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설계하면 인민이 다 같이 잘 사는 지상낙원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마르크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은 마르크스의 예상과는 달리 경제체제 전쟁에서 사회주의의 처절한 몰락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완벽한 승리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국가 번영의 유일한 대안임을 인류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분명히 보여줌에도 대한민국 지도자와 지성인의 무식과 무능 때문에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문제가 많은 체제 그리고 만악(萬惡)의 근원인 체제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유난히 근면하여서 또는 정부가 경제정책을 특별히 잘 입안하여 우리 경제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번영을 이룬 것이 아니며 운 좋게도 시장경제를 우리 경제체제의 근본으로 채택해서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이나 잘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한국병을 앓고 있는 것은 후진적 정치, 만연된 형평의식, 또는 사이비 시장논리에 의해 시장경제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거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힘이 질곡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과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무리 정책을 잘 못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계속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세기 말 북미의 미국과 남미의 몇 나라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선진국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그들이 반시장적 정책을 펴 남미의 옛 선진국들은 계속 추락했으며 빈부격차는 더 확대되었다. 한국병 치유의 첩경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다.

정부는 민간 또는 시장이 잘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아야

다섯째, 큰 정부보다 작은 정부가 국가운영의 대안이다.

정치에서 가장 큰 질문은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첫째 다른 독립된 사회로부터의 침입이나 전쟁으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둘째 가능한 한 사회구성원간의 억압, 불법을 막는 일로 법질서를 확립하고, 셋째 공공사업과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부가 할 일은 사람의 재능이 꽃을 피울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정부의 역할이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정부의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큰 정부와 정부의 과대한 규제가 경제의 후퇴는 물론 나라의 파산까지 야기했음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고 문제의 원인 제공자 즉 문제를 야기하는 원흉이다.

평상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력과 비능률을 한탄들 한다.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그 국민은 그 정부에 문제를 해결하라 요청한다. 문제투성이인 정부더러 모든 문제를 하라는 것은 참으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닌가?

항상 정부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무엇을 반드시 해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정부가 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정부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살피고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 또는 시장이 잘 할 수 있는 일들에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더더욱 국민 세금을 투입해 낭비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잠재적 생산성이 높은 곳을 찾아내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는 일은 시장이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교육, 문화, 예술, 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면서 예산이 집중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예산지원을 받기 위해 경쟁을 장려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잘못된 적용이다. 정부의 집중 지원으로 우리가 손에 쥐는 것은 높은 품질이나 낮은 가격이 아니라 충성이나 허위보고의 경쟁일 뿐이며 이 과정에서는 자원 자체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 귀중한 자원인 창의력도 소멸된다.

오늘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는 활력이 넘쳐야 할 기업이 탈진한 상태이고, 수동적 입장이어야 할 정부가 적극적인 데 있다. 작금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골라서 하는 형국이다.

기업은 대외 경쟁과 각종 질곡에 억눌려 힘이 쇠진해지고 있으며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정부에 캄풀 주사와 당의정을 요구하고 있다.

큰 정부보다 작은 정부가 국가운영의 대안이다. 작은 규모의 예산을 가진 나라가 자원관리를 효율적으로 했으며 작은 정부는 국가의 생산성을 저하시킨 경우는 없다. 그러나 국가예산이 방대하고 민간부문에 원칙 없이 적극 개입하는 큰 나라는 언제나 곧장 난관에 봉착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 국민은 문재인 정권의 대한민국 파괴에 지쳐 ‘애국심 넘치는 반듯한 큰 바위 얼굴의 성군(聖君)의’ 지도자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다. 성공하는 대통령,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우나 역설적이게도 의외로 쉽다.

역사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사전적 의미로 ‘preside(사회를 보는)하는 사람’ 즉, 사회자이다. 모든 견해를 피력하도록 유도한 후 경청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 결단을 내리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대통령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는 자신의 신념(belief)과 소신(conviction)으로 국민을 선도(lead)하는 지도자(leader)였지 국민의 눈치를 보는(follow) 추종자(follower)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논의한 다섯 가지 관점과 과제를 지도자는 물론 국민 모두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지도자의 결기가 중요하다. 차기 대통령의 책무는 매우 막중하다. 우파의 가치를 확실히 인식하고 체제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국병 치유는 물론 파괴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 차기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원영 2022-05-16 13:54:16
요즘 네티즌 말을 빌리자면 헛소리를 길게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