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스톰 왜, 어떻게 오고 있나
퍼펙트 스톰 왜, 어떻게 오고 있나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2.07.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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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 경제계에서 말하는 퍼펙트 스톰이란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 등이 뒤얽힌 복합적 경제위기를 말한다.

지난 6월 23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과 개최한 2차 ‘금융리스크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우리나라도 고물가·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국채금리와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복합적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보다 면밀하고 폭넓게 리스크를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 등 주요국들의 통화긴축이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경기침체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자 미국은 최근 1994년 이후 최대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시장에서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매우 높게 점치고 있다. 여기에 환율마저 비상이다.

원·달러 환율이 13년여 만에 처음으로 장중 1300원을 넘어 1302원까지 치솟아 국내 기업들은 비명을 질렀다. 경기침체 우려가 불거지며 달러와 채권 등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한 여파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대개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 채산성이 좋아져 수출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세계 물동량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환율과 금리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미 진입하고 있다.
환율과 금리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미 진입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해외경제포커스-최근 세계교역 여건 점검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상품교역량(CPB)은 지난해 3분기 전기 대비 0.2% 감소했다가 4분기 2.8%로 올라선 뒤 올 1분기 들어선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봉쇄 조치 등의 영향으로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중국 봉쇄 조치의 영향으로 대중 교역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인상은 원자재 수입과 맞물려 물가상승이 심화하는 국면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내 유가의 안정세는 쉽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로서는 환율인상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게 된다.

특히 정유업계의 경우 외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유 공정을 거쳐 제품을 내놓기까지는 약 두 달이 걸리는데 이 기간 현금이 묶이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자금을 융통할 목적으로 유전스(Usance)라는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한다. 환율인상은 이러한 정유사들에 직격탄을 안겨주고 있다.

가전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전 세계 TV 출하량은 지난 3월 전망치인 2억1163만 대에서 300만 대 줄어든 2억879만대로 하향됐고,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 부문의 최대 판매처인 미국 쇼핑몰 베스트바이에는 재고가 쌓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두 기업 가전 부문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와 비교해 20~45%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앞으로 1년간 소비자가 예상하는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9%로,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상승폭 0.6%p는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에 달한다. 반면에 소비자심리지수는 96.4를 기록하며 1년 4개월 만에 기준선인 100 밑으로 떨어졌다.

특히 경기 관련지수가 크게 하락하는 가운데 그만큼 미래를 비관하며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경제학회 차기 회장인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나치게 경제 주체의 불안감을 자극하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WB) 역시 지난 6월 7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5개월 새 1.2%포인트나 낮춘 2.9%로 전망한 수정 보고서를 내놓으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문제는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의 해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태그네이션이라는 경기침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기업들의 도산이 발생하면 은행 금융권의 경영 상태에 위협을 주고 이는 신용경색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자산가치의 하락이 발생하면서 자본시장에 큰 충격이 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게 된다.

지난 6월 9일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율은 14.8%로 2017년(12.6%)보다 2.2%p 증가했다.

6월 28일 경제부총리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좌)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 노동시장 유연성 등 각종 규제완화를 촉구했다./연합
6월 28일 경제부총리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좌)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 노동시장 유연성 등 각종 규제완화를 촉구했다./연합

한계기업들 도산하면 신용경색 도래

2017년 상장기업 2035곳 중 한계기업은 257곳이었으며 지난해 한계기업은 전체 상장기업 2052곳 중 304곳이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대기업 7.4%, 중소기업 25.3%가 한계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계기업은 3개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즉 재무구조가 부실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말한다. 이들 기업은 정상적인 상장기업에 비해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매출액영업이익률 등 경영지표가 5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악화했다.

한계기업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 없이 만기연장, 상환유예 등을 통해 연명할 경우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좀비기업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최근 5년간 한계기업에 대한 신용공여(대출/보증)는 48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중은행은 11조3000억 원, 국책은행은 37조5000억 원 규모로 나타났다. 전체 신용공여 대비 한계기업에 대한 신용공여 비율은 시중은행이 5.6%인 것에 비해 국책은행은 약 3배인 14.4%에 달했다.

코로나19 지원책이 종료될 경우 도산하는 기업들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선제적으로 채무조정 제도를 정비하라는 국제기구의 권고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민간 사모펀드를 통한 부실기업의 채무조정과 회생 방안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혜리 한은 IT리스크총괄팀 과장은 지난 6월 14일 한은이 발간한 ‘기업 채무조정제도 개선에 관한 글로벌 논의 및 시사점’ 관련 BOK 이슈노트에서 “우리나라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2년 신용카드 사태 때와 달리 기업 파산이 증가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충격이 큰 취약기업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현재화되면서 부실 기업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계기업이 전체의 14%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는 3년 연속 이자를 못 갚는 기업을 말하는 것 뿐이고 1년-2년차에 달하는 이자 지불능력 없는 부실기업들의 비중을 포함하면 대략 30%의 국내 기업들이 재무적 부실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내걸며 중소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각종 대출 지원으로 연명이 가능했었고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한은이 금리를 연속해 낮추면서 위기를 모면해 왔다.

하지만 이제 금리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수요감소라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가려진 기업들의 부실이 드러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한계기업들과 부실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 여기에 대출금이 있는 은행들이 같이 물려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꺼리거나 만기연장을 하지 않는 신용관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이 경우 금융시장 전반에 신용경색을 불러오면서 자본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다.사정이 이러함에도 노동계는 여전히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에 대응하는 임금인상은 그 주장에서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결국 상승한 임금이 다시 물가를 인상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임금인상의 억제는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퍼펙트 스톰의 해법은?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 주체들의 고통분담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감세와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재계 역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6월 2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기업들이 급속한 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노동 시장의 유연성도 높아져야 한다”며 “핵심 과제로 근로시간 유연성, 임금체계의 유연성과 함께 고용의 유연성 강화”를 요청했다.

특히, 현재 32개 업종으로 제한돼 있는 파견근로 허용 제한을 풀고, 계약직의 경우 2년까지 허용하는 계약기간 제한도 4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법 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사업장 점거 금지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기업가들의 의욕을 꺾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진국 수준으로 인하하고, 법인세제 역시 기업들이 활력을 되찾고,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대규모 투자가 국내로 충분히 유입될 수 있도록 더 과감한 세제 지원방안을 마련해 줄 것도 당부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70년대 발생한 인플레이션과 이어 찾아온 80년초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고금리로만 잡는 데는 실패했다.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해소되는 데는 레이건 대통령의 과감한 법인세 인하와 정부지출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통해 기업의 생산성과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는 친기업 정책이 유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고 기업이 고비용 환경을 혁신으로 흡수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때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이런 친기업, 친시장의 경제정책을 정치권과 국민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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