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근대교육 초석 언더우드 뜻기려 미국에 언더우드大 설립 인재 양성
韓 근대교육 초석 언더우드 뜻기려 미국에 언더우드大 설립 인재 양성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2.07.22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선교와 교육의 초석을 다졌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 땅에서 활발한 교육 사업을 펼치며 주목받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윤석준(Richard Yoon) 언더우드대학교 총장이 바로 주인공. 윤 총장은 미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2011년 한국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의 이름을 따라 성경적 세계관과 진리, 자유, 선교의 모델이 될 언더우드대를 설립, 초대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8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25개의 학교를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 설립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를 모델로 삼아 세계선교의 비전으로 2013년 허드슨테일러대학교를 설립, 초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아울러 인종 간 평화를 위한 PIT(Pacific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윤 총장은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한 대학을 미국에서 운영하며 교육선교에 앞장서 온 공로로 지난 해 한국기독교학술원(원장 이종윤 목사)이 수여하는 11회 한국기독교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학술 활동을 통해 사회와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한 각계각층의 지성과 전문성을 갖춘 기독교 지도자를 발굴해 한국기독교학술원이 지난 2001년부터 수여해 왔다.

언더우드대는 처음 소수 학생의 대학부 학사과정으로 개교했다. 그러나 윤 총장 개인의 믿음과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추진력으로 단기간 성장을 거듭했다. 첫 출발은 한국 유학생 2명으로 시작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학생 수가 약 1000명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뉴욕주 검사, 변호사 출신 교육자

기독교적 소명을 다하는 교육자로서 부각됐지만, 원래 그는 뉴욕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검사였다. 10살 때 부모님을 따라 남미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 6년을 거주하다 1979년 고등학교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의 명문대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뉴욕 세인트존스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인 이민자로서 최초이자 최연소자로 뉴욕주 검사로 활약하여 뉴욕주 검찰총장실 검찰총장보, 뉴욕 퀸즈 카운티 지역 검사장실 지방 검사보를 역임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리처드 윤 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회사 소송 및 거래, 부동산 컨설팅 업무도 하고 있다.

검사로 변호사로 잘 나가던 화려한 경력의 그는 왜 기독교 교육선교와 인재 양성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도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들었던 두 가지 생각이 학교 설립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둘째는 미국 사회를 지켜보며 제 눈에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왜 발생했을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잘못된 교육시스템 탓이라는 데 문제의식이 닿았던 것이죠. 미국 사회는 과거처럼 더 이상 균형 잡힌 사회가 아니라 크게 기울어진 사회가 됐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학교에 등교하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기도하면 해고되고 잡혀가는 나라가 된 거예요.

미국 시민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어떻게 교육을 뜯어고쳐야 할까 생각해보니 내가 교육 시스템을 감히 뜯어고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올바른 교육 시스템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단순히 지식, 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왜 배워야 하고, 배운 지식을 어떻게 써야 하고, 사회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옳은지 가르쳐주는 대학을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이 섰고 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100년 전 한국 땅을 밟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름 앞에는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표현이다. 원시적 조선 사회를 근대로 이끈 언더우드의 정신은 기독교 정신이 혼탁해진 미국 땅에서 윤석준 총장의 사명감으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 이름을 언더우드로 지은 사연에는 윤 총장의 그 같은 소명의식이 녹아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름을 쓴 이유는 제가 그분을 굉장히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쓴 책도 읽고 관련 책도 많이 읽었어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1885년 한국에 왔을 때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이었을까 짐작이 돼요.

자신이 살던 미국과 완전히 다른 조선의 현실이 그분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전이었을 겁니다. 선교사로서 성경 말씀을 열심히 전했지만 그분에게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핵심 도구는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으로 도전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 정신을 존경하다보니, 저도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내가 할 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때 교육의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일조해 미국병을 고쳐가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땅에서 실천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정신

기독교인의 소명을 갖고 교육 사업에 나섰다고 하지만 초기 재정 문제는 윤 총장에게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충분한 재정이 있느냐의 문제는 교육의 질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30년 이상 변호사와 사업가로 일하며 저축해 둔 자금을 털어 토지와 건물을 사들이고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했다고 한다.

“제가 큰 부자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열심히 해오면서 저축해온 돈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학교 만들었을 때는 당연히 적자였죠. 그렇지만 ‘학생이 조금 밖에 없었으니 교수도 적게 채용하자’ 이런 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크게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크게 넘치니까 비가 올 때 빗물 받듯 일단 그릇을 크게 만들어 놓고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캠퍼스도 구입하고 빌딩도 두 채 구입했습니다. 토지가 5만 스퀘어 피트 되고니까 꽤 큽니다. 주차장도 400대 정도 주차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텅텅 비었지만 하나님께서 빠르게 어느 정도 채워주시더군요.”

윤 총장은 학교 운영에 있어서도 낭비하지 않는 효율성과 도덕적 원칙을 중요시했다. 설립 후 초반 총장인 자신을 포함한 각 직원은 한 사람이 몇 사람 이상의 몫을 감당해낼 만큼 열심히 뛰었고 그 결과 오래지 않아 적자 재정을 흑자로 돌려놨다. 또한 재정난을 핑계로 학비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총장이지만 법률가로서 필요한 실무를 맡아 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한 사람이 서넛의 몫을 할 정도로 알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했어요. 지금은 학교 운영 자체만으로도 재투자할 수 있을 만큼 재정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다른 학교들의 경우 (재정의) 10% 정도 비상금을 준비해두는데 저희는 20% 넘게 준비해두니까 대학 협회에서 매년 점수를 줄 때 그 부분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학비를 절대 비싸게 받지는 않습니다.

학생 수가 많아 학비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좋지만 학비를 올려 돈을 버는 정책은 절대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학생들한테도 약속한 것이고 하나님께도 약속한 것이에요.”

미국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과 사명감으로 가득한 윤 총장의 교육 사업은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조지아주 메인캠퍼스 3곳과 분교 1곳을 두고 있는데 7월 초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빠른 시일 안에 캠퍼스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100% 온라인으로 수업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지만, 온라인 수업 비중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수업 프로그램을 100% 온라인으로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지만 학생들이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회적 책임을 알고 학생 개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수업은 그게 어렵거든요. 특히 크리스천 교육은 필수적으로 대면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 한국기독교학술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 총장은 중국에 대한 특별한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주님께 비전을 받을 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 특히 “중국을 복음으로 둘러싸는 것이 저의 비전”이라는 소감이었다.

중국을 향한 비전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비전은 구체적으로 중국을 통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복음이 지속적으로 유럽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그 폭발력이 중국으로부터 생겨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중국이 기독교 나라가 되면 로마제국의 사례와 같이 복음 확장이 아시아에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를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유럽 사람들, 특히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1800년에 부족한 우리나라에 와서 학교를 만들고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만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중국 선교를 위해 빵을 들고 가야 한다는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중국은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에 어떻게 초점을 맞출 것인지, 저는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맞춥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차지하실 때, 전쟁을 통해 칼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둘러쌉니다.

정보를 캐고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여리고성을 7번 돌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타이밍, 그 시간에 들어가는 겁니다. 저는 중국에 공산주의 시스템은 맞지 않다고 보고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계획한 상태에서, 아직 성취한 것은 없지만 밀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대 설립 허가를 받고 빠른 성장을 거쳐 대학원 석·박사 과정까지 주 정부, 연방정부와 협회로부터 허가받는 데 주변의 시기와 음해도 없지 않았을 터다.

“처음에는 학교가 빠르게 발전하니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가짜학교 아니면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 없다. 이민국, 협회, 주정부가 저 학교 수사를 해야한다’는 비토가 많았죠. 대학 설립 후 5년까지는 그런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사 나와 보니 우리 학교 운영이 투명하고 졸업장 팔아먹는 대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나중에 그 사람들이 ‘누가 신고해 어쩔 수 없이 조사 나왔는데, 잘 하시라’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가더군요.

그리고 미국 사회는 아직도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제가 협회 이사로 나가 미팅에도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갔습니다.”

교육자이자 사업가로서 활약하지만 윤 총장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무엇보다 우선순위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필요로 해 부르시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시장 안에서 가장 성공적인 튼튼한 대학을 만드는 게 저의 목표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학교가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한 뒤 총장직을 내려놓고 선교와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창의적인 미디어 회사를 한국에 설립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 사회 뿐 아니라 유럽 사회가 다문화에 휩쓸리는 시대적 조류를 근심스럽게 본다는 윤 총장은 한국에 대한 애정 깃든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문화주의란 세계화에 발맞춰 단일 민족국가들이 갖고 있는 기존 문화에 이주, 난민 등으로 유입된 다른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교류, 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로 인한 실업률 증가와 이질적인 민족 간 불화와 사회 갈등 탓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내리고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멀티 컬처럴리즘(multiculturalism)이라는 단어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악성 암세포처럼 발전될 수 있다는 부분을 인식하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