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北·中·이란, 러시아 편드는 사이버 여론전
[이슈] 北·中·이란, 러시아 편드는 사이버 여론전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2.08.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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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 전후 양측 간 온라인 여론전은 치열했다. 전쟁 발발 두 달 가량이 지난 뒤 세계적인 보안업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온라인 선전선동, 즉 여론전에 러시아와 궤를 같이하는 독재정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와 같은 내용은 지난 5월 ‘가디언’이 영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보안업체 ‘맨디언트’는 지난 5월 19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사이버 여론전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이란, 북한 등도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 작성자 가운데 한 명인 알덴 월스트롬 맨디언트 수석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밝힌 (사이버) 공격 가운데 일부는 이미 알려져 있다고 보고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새롭게 확인된 정보작전(여론전)을 벌인 중국과 이란의 공격자를 찾아냈다”며 그동안 의심만 하던 중국, 이란 등의 러시아 여론전 지원 정황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전쟁터에서 휴대폰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군
전쟁터에서 휴대폰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군

이란 배후 로밍 메이플라이, “아프간에서 도망친 美, 우크라 버릴 차례”

맨디언트는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의 사이버 여론전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세컨더리 인펙션(2차 감염)’이라는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여론전이다. 이 작전은 특히 젤렌스키의 전사 등 가짜뉴스를 SNS와 온라인을 통해 확산시켜 우크라이나 군대와 국민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한 시도다.

실제 세컨더리 인펙션은 지난 3월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군대의 군사작전 실패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을 먼저 낸 뒤 나중에는 “젤렌스키가 키이우의 지하 벙커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4월에는 동유럽에서 유명한 ‘아조프 연대’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했다. 이들은 아조프 연대를 ‘아조프 갱(Gang)’ 또는 ‘나치 세력’이라 부르며 “아조프 연대 지휘관들이 현재 민간인 행세를 하며 러시아에 포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아조프 갱들이 자기네 대원들이 마리우폴에서 전사하게 놔둔 젤렌스키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조프 연대는 지난 4월 말까지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제철소)에서 최후까지 항전했다. 젤렌스키에 대한 복수 시도는 거짓말이었다.

젤렌스키 정권과 군에 대한 여론전이 먹히지 않자 세컨더리 인펙션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간의 이간질을 시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로 온라인과 SNS 등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정부가 폴란드군을 우크라이나 서부에 배치하려 한다”고 선동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위인 학살’ 등으로 인해 아직 정서적 거리감이 큰 두 나라 국민들을 이간질시켜 서방 진영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런 선동 또한 먹히지 않았다. 폴란드를 통한 서방진영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 규모가 커졌다.

‘고스트라이터(유령작가)’라는 조직도 러시아를 위해 온라인과 SNS에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맨디언트에 따르면 이들은 “폴란드 범죄조직이 자국에 피난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유인·납치한 뒤 장기를 적출해 유럽연합(EU) 국가들에서 불법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면서 “폴란드 고위 관료들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범죄 기업을 당국이 수사 중”이라는 소문도 함께 냈다.

이 소문은 지난 3월 SNS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맨디언트 등 보안업체들이 조사를 한 결과 해당 소문은 실제 사용자를 확인할 수 없는 ‘손상된 계정’에서 흘러 나온 것이었고 이들이 낸 소문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맨디언트에 따르면 러시아의 온라인 여론전을 돕는 세력 가운데는 배후에 이란과 중국 정부를 둔 조직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장 치열한 사이버 전쟁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장 치열한 사이버 전쟁이기도 하다.

중국 드래곤브릿지, 올해부터 러시아 위해 활동

먼저 ‘로밍 메이플라이’라는 조직은 배후에 이란 정부가 있다. 2019년 실체가 알려진 ‘엔드리스 메이플라이’라는 친이란계 조직과 연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맨디언트의 지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밍 메이플라이는 아랍어로 온라인과 SNS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린다.

이들은 “미국은 2021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쳤는데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버릴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미국이라는 ‘악의 축’과 동맹을 맺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숙명”이라는 주장을 퍼뜨렸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를 외침에 취약하게 만들었다”거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예멘 전쟁을 비교하면 서방 진영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대해 다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란 편이라는 특징도 드러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지난 2월 전쟁 전에는 러시아 국민들을 상대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여론전도 펼쳤다.

이들은 러시아 언론인이자 외교전문가인 표도르 루키야노프를 사칭해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이 현재 위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면서 “2000년, 2004년, 201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내용을 트위터 등 SNS에 퍼뜨렸다.

샘 리델 맨디언트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이란은 보다 영향력 큰 여론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침략에 관한 (가짜) 뉴스 확산 여세를 몰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여론전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맨디언트에 따르면 중국을 위한 조직들은 하나의 거대한 여론전을 진행 중이다. 작전명은 ‘드래곤브릿지’이다. 보고서는 “이들은 수많은 SNS 플랫폼과 웹사이트, 포럼에 수천 개의 가짜 계정을 이용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며 “이들은 러시아 국영매체들이 내놓는 주장과 영향력 확대 작전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내용이 “우크라이나 내에 미 국방부와 연관이 있는 생물학무기 연구소가 있다”는 가짜뉴스다.

이 내용은 지난 3월 초순 각국의 음모론 커뮤니티와 게시판 등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336개의 생물학무기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그 중 26개가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나아가 “이런 생물학무기 연구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이며 러시아는 미국이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고 했다.

그러자 중국은 3월 8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 주장을 폈다. 이날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생물학무기 실험실이 각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주변 지역, 전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생물학) 실험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오리젠 대변인은 “미국은 그 실험실에 어떤 바이러스가 저장돼 있는지, 어떤 연구를 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틀 뒤인 3월 10일에는 이고리 코나셴코브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이 “러시아군이 발견한 문서를 보면 우크라이나에 건설돼 운영 중이던 생물학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고위험성 병원균 전파 과정을 연구한 내역과 자금지원 등을 증명할 증거물 다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글로벌 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들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자본을 지원해 각종 바이러스 실험을 자행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 자료는 바로 미국이 박쥐를 이용한 코로나 바이러스 실험을 자행했음을 증명한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한 목적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은밀하게 연구하고 전파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음모론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내 미군 생물학무기 연구소’ 설은 이렇게 중국과 러시아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결국 3월 11일 두 나라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한다. 이후 음모론을 기정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여론전이 성공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정보공작 단체는 2500건 이상 정보 날조 및 조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소셜미디어 리서치그룹 그래피카는 러시아 정보공작 단체 세컨드리 인펙션을 추적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그래피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정보공작 단체는 2500건 이상 정보 날조 및 조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소셜미디어 리서치그룹 그래피카는 러시아 정보공작 단체 세컨드리 인펙션을 추적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그래피카

퍼지는 음모론…“러, ‘딥 스테이트’와 싸우려 우크라이나 공격”

음모론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이나 트위터 등 SNS를 검색해보면 “푸틴 대통령이 ‘딥스테이트’를 없애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로스나 바이든 등이 움직이는 ‘카발’(딥스테이트의 다른 이름)의 하수인이며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생물학무기 연구소 수십 개를 운영 중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음모론을 믿는 사람 가운데는 러시아 국영매체들의 선전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내 일부 온라인 매체는 딥스테이트와 카발 등 과거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서 나온 음모론을 근거로 러시아와 중국 당국이 퍼뜨린 내용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풀이하며 러시아 편을 적극적으로 들고 있다.

몇몇 매체는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친러정권 전복, 즉 오렌지 혁명의 배후에 미국이 있으며 이때 우크라이나 들어선 반러정권이 돈바스 일대에서 러시아계 국민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러시아 정부의 선전을 그대로 따라 쓰기도 한다.

이런 음모론은 얼핏 그럴싸하지만 중대한 모순점을 품고 있다. 음모론에서 딥스테이트에 맞서 싸운다는 국가와 세력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 또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음모론을 관통하는 주장을 따를 경우 궁극적으로는 중국 같은 일당독재체제, 이란과 같은 신정일치체제,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장기독재체제가 딥스테이트 같은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나은 체제처럼 보이고 이 국가들의 독재자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한 사람보다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여론전에 맨디언트의 보고서는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련 ‘정황’에 대해서는 주의를 당부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킹의 계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지난 3월 구글에서 나왔다.

구글 위협분석그룹(TAG)은 지난 3월 30일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 해커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킹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당국의 지원을 받는 해커들과 소속이 모호한 해커 집단이 피싱 사기나 악성코드, 바이러스 유포 등의 사이버 공격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끼로 삼고 있다”면서 “이 해커들은 전쟁 관련 정보나 동영상 등을 제공한다며 메일 첨부파일 또는 링크를 보내 악성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맨디언트 측도 북한 정권 소속 해커뿐만 이들에게 고용된 해커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맨디언트의 마이클 반하트 북한 담당 선임연구원은 지난 6월 23일자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들은 북한 정권과 연계돼 활동하는 사이버 범죄자들(해커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하트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사이버 범죄 활동만큼은 누구보다 빨리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는 등 능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 해커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 알아낼 수 있고, 그 후에 어떤 공격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는 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北 직접 언급 없었지만 구글 “北 해커들, 우크라이나 전쟁 악용 늘어”

한편 국내에서 북한의 해킹 공격에 대해 가장 많은 사례를 연구한 문종현 이스크시큐리티 시큐리티대응센터(ESC) 센터장은 “현재 북한이 중국이나 이란만큼 러시아를 돕는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펼치지는 않고 있지만 만에 하나 러시아와 중국 측이 김정은에게 비밀리에 도움을 요청하면 본격적으로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종현 센터장은 “북한이 이란·중국과 다른 이유는 매일 반복적으로 꾸준히 공격해야 하는 대상 즉 우리나라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적극 나설 이유가 없다”면서 “뿐만 아니라 북한 해커들은 러시아, 중국, 이란 해커들과 달리 모두 군(정찰총국)이나 정부 소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러시아와 같은 편이라고 하더라도 김정은의 지시가 있을 경우에만 그들을 돕는 여론전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센터장은 “다만 사이버 공격이나 사이버 여론조작의 특성 자체가 비밀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 수뇌부가 이미 북한에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북한이 꾸준히 러시아를 편드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러시아로부터 뭔가 대가를 얻는다면 여론전에도 충분히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 러시아를 두둔하는 것을 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세력들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북한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북한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등을 국가로 공식 승인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하려는 시도로 간주한다”면서 “러시아와 북한이 야합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북한이 러시아를 위한 여론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는 것이 국내외 보안업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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