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세계화의 종언 그 대안은? 
[심층분석] 세계화의 종언 그 대안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1.1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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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시작은 암울하다.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이 더 깊어진다는 전망 속에 그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구촌 인플레에 지속적으로 연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전쟁의 결말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유럽의 경제는 미국보다 더 침체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여기에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중국은 코로나 팬데믹과 미국의 규제로 그 공급망이 붕괴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 결과 전 세계 물동량과 교역량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 30년 간, 지구촌은 ‘세계화’라는 질서 속에서 자본과 노동과 기술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이제 미중 경쟁에 이어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질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계화의 종언이 자유주의와 다자간 질서의 종언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에 대해 ‘세계화의 종언이 아니라, 재세계화’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견지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다자주의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거칠게 말하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우리 민주주의 국가끼리 세계화’라고 부를 만하다.

지난 30년 간의 세계화 질서가 후퇴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이 자리한다. 과거 WTO로 상징됐던 다자간 무역질서는 중국을 자유경제 시장질서에 포획함으로써 정치 체제도 민주화될 것으로 기대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생각은 달랐다.

2008년 미국이 서브프라임사태로 휘청거릴 때 중국은 본격적인 굴기의 야심을 드러냈다. 중국은 위안화 블록을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중화경제권 건설에 나섰으며 미국에 수출한 대금으로 획득한 달러를 다시 미국 금융자산에 투자해 미국의 채권국 지위를 노리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이 두 체제의 정치적 이념과 가치관이 상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김태환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미중 간 가치충돌’로 설명한다. 즉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군사, 경제, 무역, 기술 분야를 넘어 가치 분야로까지 확대되면서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양국의 가치경쟁은 명백히 소프트파워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각국의 지정학적 경합의 수단적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21세기 신냉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중화주의의 충돌이다.
21세기 신냉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중화주의의 충돌이다.

익숙한 것들과 이별할 때

오늘날의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의 성격은 전통 지정학에서처럼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 심지어는 문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그저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정도로 폄하했던 학계에 반성의 여지를 던지는 것도 사실이다.  

미·중 간 경쟁이 단순한 군사, 경제를 넘어 비(非)물질적 가치와 규범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가치의 경합, 소프트파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한마디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재음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질서가 경제적인 것의 우위에서 이제 정치적인 것의 우위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갈파한 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인 ‘적과 동지의 질서’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새로운 질서는 경제와 안보가 커플링되는 경제안보의 시대이자,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이라는 점에서 신국가주의, 신권위주의 시대의 서막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가치 대(對)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반(反)자유주의 가치 간의 대립인 ‘가치의 진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세계화 종언이 가져올 가치 경쟁과 가치 동맹의 내용은 무엇일까.

김태환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소프트 파워’를 제시한다. 김 교수의 설명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조셉 나이(Joseph S. Nye, Jr.)는 특정 국가의 소프트파워의 근원으로서 대표적으로 문화, 외교정책, 그리고 가치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적시하고 있다. 특정 국가의 문화가 매력적일 때, 외교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정통성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때, 그리고 국가의 행태가 주창하는 가치와 부합할 때 그 국가의 소프트파워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특정 가치는 국제사회에서 집단적 믿음이라는 형태로 자국의 힘과 권위에 대한 자발적 인정(recognition)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정부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물질적 힘이 곧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나 권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국가들은 동시에 물질적 힘을 정통성 있는 권위로 전환시킴으로써 지위 상승을 모색하게 된다. 이에 따라 물질적 힘의 여러 분야에서의 하드파워 경쟁은 물론, 강대국 지위 정체성(status identity)을 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와 규범과 같은 비(非)물질적 힘의 분야에서도 경쟁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2022년은 중국이 WTO 가입 20주년이었다. 중국은 다자간 무역질서를 이용해서 세계 패권까지 넘보고 있다.
2022년은 중국이 WTO 가입 20주년이었다. 중국은 다자간 무역질서를 이용해서 세계 패권까지 넘보고 있다.

자유주의 vs 전체주의 가치 동맹

이에 따라 경합국들은 자국의 전통적 문화와 국가·민족 정체성에 깊게 자리 잡은 특정 가치를 내세워 경쟁적으로 외국민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무정부 국제사회에서 정통성 있는 권위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강대국 경쟁의 문화적 성격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이들 강대국들은 자국이 주창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자국에 동조하는 국가들을 규합하고 국가 간 관계를 구성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지정학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공공외교를 ‘특정 국가의 문화, 외교정책, 그리고 가치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외국민에 대한 소통 행위’라고 이해할 때, 바로 이러한 성격이 오늘날의 공공외교를 강대국 경쟁의 중요한 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국가적 이념 가치는 무슨 이유로 충돌한다는 것인가.

유럽의 종교 개혁을 통한 개신교와 계몽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 자유주의 전통은 미국 정체성의 핵심 요소를 집약한 ‘미국의 신조(The American Creed)’로 이어져왔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자국 정체성의 핵심 요소들 특히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의 지배 등을 표방하는 외교정책을 펼치면서, 이들 가치와 더불어 서방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반영하는 일련의 제도, 규칙, 규범을 제도화했다.

1990년대 미국은 서구 문명의 핵심 국가로부터 비(非)서구까지도 포함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표방하고, 1970년대 이래 확립되기 시작한 보편적 인권 개념 즉, 공동체, 국가, 민족, 문명을 초월하는 보편적 인권 개념을 수용하면서 보다 포용적인 ‘글로벌 문명(global civilization)’을 대변하기 시작했던 것. 이는 서구 문명의 지리적 의미에서의 세계화 즉, 19세기 서유럽의 핵심과 20세기 북미의 핵심을 넘어 비(非)서구까지 포함하는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보편적 인권 개념 및 규범의 확장과 더불어, 미국이 새로운 글로벌 문명의 핵심 국가인 동시에 이를 대표하는 ‘문명형 국가(civilizational state)’로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김태환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공공외교는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 및 외교정책의 설파와 더불어 일관성 있게 ‘보편적 가치’로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가치 증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교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바이든 행정부의 보편주의 가치외교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most serious competitor)’인 중국에 대해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견제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둘째, 바이든이 이미 대통령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중 경쟁을 “21세기 민주주의의 효용과 독재 간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것처럼,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차용하고 있다. 셋째, 이를 위해 동맹과 파트너 및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빅 텐트’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러한 접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100년 역사, ‘수출통제’를 이해해야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외 어젠다로서 공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점에서 바이든은 “권위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동류(likeminded)의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함께 협력하여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재활성화 시켜야 한다”라고 하면서, “국내적으로 우리의 가치를 제고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를 수호하기 위해 분명하게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길항하는 중국의 가치는 ‘중화(中華)’라는 민족주의로 표상된다. 중국은 고대로 중심과 변방, 즉 화이(華夷)라는 세계관을 통해 이를 유교 정치이념으로 발전시켜왔다. 당연히 중국은 과거 서구 열강에 대한 자신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중화정신의 부흥과 세계의 중심을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포퓰리즘으로 견지해 왔다. 이에 시진핑 하의 중국 공산당은 서구 자유주의 가치에 대한 대안으로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 철학적 가치와 사회주의 가치를 강조하고, “중국의 스토리를 세계에 전달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담론 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시진핑 집권기에 들어 중국은 서구의 우월성을 거부하고 중국의 역사, 문화에 자리 잡은 사상 및 가치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는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으며, 이는 ‘문명형 국가(civilizational state)’론과 ‘천하(tianxia)’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논리로 제시되는 중국은 교류하는 국가들에 대해 ‘운명공동체’라는 레토릭을 구사한다. 같이 흥하고 같이 망하자는 이 논리는 상대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제국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몽골의 격언 중에 ‘자신이 탄 말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있다. 정답은 ‘말에서 내리는 것’이다.

수출지상주의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세계화의 종언과 블록화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문제는 이 모든 현상이 100여년 전부터 있어왔던 ‘수출통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세계질서는 이제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었고, 과거로 되돌리기도 어렵다. 미국이 우방국과 구축하려는 수출통제제도를 제대로 이행해야만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가 보장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인식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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