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에 맞섰던 튀르키예, 한국과 1천년 우정 
[역사] 중국에 맞섰던 튀르키예, 한국과 1천년 우정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4.11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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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일 정부와 민간이 1000만 달러(한화 약 132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해 튀르키예에서 임시 재해복구 사업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처참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한국은 그들의 말로 ‘칸 카르데시’, 즉 피로 맺어진 형제임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는 유엔군 일원으로 총 1만5000여 명을 파병했다.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는 유엔군 일원으로 총 1만5000여 명을 파병했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 튀르키예 취재를 갔던 경험이 있다.
터키를 여행해 본 한국인들은 대개 튀르키예 사람들이 유난히 한국인에 대해 친절하고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한국인을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하면 대개 “우리 큰 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다”든가, “삼촌이 참전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사돈의 팔촌 누군가는 참전한 것을 꼭 알려주고 싶어 한다.그래서 궁금함이 생겼다. 도대체 왜 튀르키예 사람들은 그렇게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6·25로 드러내는 것일까. 사실은 엉뚱하게도 호주의 제1정예부대라고 불리는 ‘가평 대대(Gapyeong battalion)’의 부대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춘계 대공세를 펼치며 파죽지세로 내려와 가평 일원에서 서울을 노리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중공군의 공세에 연합군은 일단 후퇴해 반격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는데 최전선에서 공세를 저지해야 할 부대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때 튀르키예군이 자원을 했다는 것. 이유는 튀르키예가 6·25전쟁을 통해 미국과 자유세계에 확실한 우방임을 각인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튀르키예는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서서 영국, 프랑스와 맞섰다. 그런 튀르키예는 영연방군에 속했던 호주군을 갈리폴리 전투에서 궤멸시켰고, 그 날이 호주의 현충일인 앤재크 데이가 됐다. 

이 사건으로 호주와 튀르키예는 앙숙이 되고 말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패배한 튀르키예는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연합군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막판에 영국 편에 서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공로로 튀르키예는 유엔에 가입했고 6·25전쟁에 파병하게 된 것이다. 그런 튀르키예로서는 6·25전쟁이 자신들이 자유세계 국가의 일원임을 확실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결국 튀르키예가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1선에서 막는 역할을 자임하자 이번에는 호주군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호주군으로서는 6·25전쟁이 영연방군 소속에서 최초로 호주군으로 독립해 참전한 전투였다. 그런 호주로서는 자신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튀르키예군에게 1선을 맡기고 후퇴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호주군이 튀르키예 군과 함께 가평에서 1차 저지선을 지키게 됐지만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맞서 아군 동지로서 최후 육박전을 벌이다가 대부분의 병력이 전사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이로써 튀르키예는 서방 국가들에 확실하게 자유 수호 국가로서 인식을 심었다는 것이다. 튀르키예가 6·25전쟁을 높이 기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튀르키예인들이 한국에 대해 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칸 카르데시’는 튀르키예인들에게는 자국의 자긍심과 명예의 다른 이름이 되는 셈이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호감에는 ‘아량’과 ‘대견함’ 같은 것이 묻어 있다. 공산 위협에 놓인 가난한 나라 한국을 자신들이 지켜줬더니 나라가 부흥해서 88올림픽과 월드컵도 치르게 됐다는 점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튀르키예인들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투르크’라는 그들의 역사적 자부심이 자리한다. 이스탄불만하더라도 그 역사와 문화면에서 사실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튀르키예인들의 그런 호의는 종종 한국인들이 튀르키예를 여행하다가 문제가 됐을 때 경찰들이 여권을 보고 웃으면서 덮어주는 ‘봐주기’로도 나타난다.

튀르키예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6·25 참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들의 원류 투르크의 역사를 아는 튀르키예인들이라면 한국인에 대한 호의와 우정은 더 깊은 유대감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바로 오늘날 터키라 불리는 그 원형에는 우리가 고구려 역사에서 배운 돌궐(突厥)족이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원류인 돌궐과 고구려 관계

돌궐은 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종족이다. 오늘날 북경어가 아닌 당시 중국어의 ‘중고한음(中古漢音)’으로 ‘돌궐(突厥)’을 읽으면 ‘tu-guet’에 가까웠다. 바로 ‘뚜르크’(Turk)라는 그들의 정치적 부족연맹을 음사한 것이다. 돌궐과 고구려는 6세기에 서로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7세기에 이르면 상황이 바뀌어 연맹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기막힌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고구려 영양왕은 7세기 초 돌궐과 손잡고 수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사신을 오르도스(현 내몽고자치구)에 보냈다. <삼국사기>에는 그곳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의 긴박한 상황이 잘 서술돼 있다. 고구려 사신들이 돌궐의 계민카간과 작전 모의를 하던 중에 급한 전갈을 받게 되는데 수나라 양제가 순시 중에 예고 없이 계민카간의 막사에 들르게 된 것이다. 그 러자 고구려 사신들은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자리를 피할 사이도 없이 수양제는 막사에 들어섰고, 계민카간으로부터 ‘고구려 사신들’이라는 설명을 들은 수양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수양제는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쳤다가 별무소득으로 끝나 돌아왔던 수문제의 아들이었다. 그런 동북아의 강자 고구려가 돌궐과 손잡게 되면 수나라의 운명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국사기>는 수양제가 그 자리에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서술한다. 그런 수양제는 다시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칠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살수대첩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를 지낸 고(故) 김방한 박사는 고조선의 고대 어휘에 만주어와 투르크어의 요소들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를 펴낸 인디애나 중앙아시아학과 교수 크리스토퍼 백위드는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고구려에 스며 있는 투르크어의 요소를 발견하는 논문도 썼다. 이래저래 튀르키예와 우리가 오랜 인연으로 묶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튀르키예, UAE 바라카 원전 2배 넘는 40조 원전에 한국 러브콜?

한전은 튀르키예 북부 지역에 차세대 한국형 원전(APR1400)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1400㎿(메가와트) 규모로, 수주 금액은 아랍에미리트(UAW) 바라카 원전의 2배가량인 약 40조 원으로 추산된다.

정승일 한전 사장(좌)과 파티흐 된메즈 에너지천연자원부장관(우)
정승일 한전 사장(좌)과 파티흐 된메즈 에너지천연자원부장관(우)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은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 시 열린 UAE 원전 3호기 가동행사에 참석하고, 30일 튀르키예를 방문해 파티흐 된메즈 에너지천연자원부(이하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튀르키예 원전사업 참여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양측은 내년에 공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뒤 원전 건설에 대한 환경·기술 여건과 재원 조달 방식에 합의하면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에는 정부 간 협정(IGA)을 체결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튀르키예 정부는 2013년부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이 사업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지만 2020년 미쓰비시가 2배 많은 액수를 제시하며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이번 예비제안서 제출로 튀르키예에 신규 원전을 수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됐다. 한전은 향후 튀르키예측과 공동으로 사업타당성 조사를 시행하여 최적의 사업추진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폴란드 정부와 추진 중인 퐁트누프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이어 한전의 튀르키예 원전 수주까지 성공할 경우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다시 한 번 APR1400 노형 원전 수출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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