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제3세력 돌풍’이 불었다. ‘제3정당’, 대만민중당이 대약진했다. 커원저 후보가 무려 26.46%를 득표했다. 이변이었다. 공고했던 거대 양당 구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균열 발생 원인은 거대 양당에 있다. 여당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야당은 무기력했다. 양당은 국민의 바람을 외면했다. 국민은 거대 양당에 경고를 보냈다. 제3세력에 기회를 거대 양당이 준 셈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정치환경과 선거환경은 대만과 판박이다. 거대 양당이 정국을 주도했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인 문제 해결과 갈등 해소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야 협치는 없었다. 오히려 거대 양당이 증오를 부르는 피 튀는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이득을 나누는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해 왔다. 거기에 적극적 지지층이 편승했다. 극한 대립이 확대 재생산됐다. 혐오와 대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된 원인이다. ‘제3세력’은 거대 양당의 부패와 비효율을 파고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도 대만처럼 제3세력을 비효율적 거대 양당 체제의 치료제로 선택할까.
‘제3지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다. 제3지대 정당 후보 지지자 당선을 바라는 유권자가 24%에 달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6일 발표한 조사 결과다. 이번 조사에 드러난 ‘24%’는 무당층이 아니다. 지지 의사를 밝힌 숫자다. 반면 여당과 제1야당이 각각 33%를 얻었다. 거대 양당을 위협하는 지지율이다. 이 여론조사 결과만을 본다면, 거대 양당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게 국민적 요구다.
거대 양당의 부패와 비효율을 파고드는 ‘제3세력’
4·10총선을 눈앞에 두고 신당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신당 추진 세력은 그동안 거대 양당의 약점을 겨냥해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양대 정당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깨겠다”라고 역설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양당 체제란 불판을 갈아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탈당의 변이었다. 다당제로의 전환을 통한 양당 독점구조를 타파하겠다는 의미다.
신당 창당 세력은 거대 양당에 대적할 근육 불리기에 열심이었다. 마침내 이준석 신당(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가칭 개혁미래당)으로 중텐트가 쳐졌다. 개혁신당에 ‘한국의 희망’(양향자 의원)이 합류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이 손을 잡았다. 개혁미래당 창당 준비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새로운 선택’(금태섭·류호정 전 의원)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새로운 선택’은 개혁미래당보다는 개혁신당과 더 가까워 보인다. 이준석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의 멘토 역할을 한 김종인 전 의원이 그들의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중텐트가 ‘종착역’이 될 것인지, 아니면 빅테트로 가는 ‘환승역’이 될지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정치권에서 ‘빅텐트로 가는 중텐트’라는 시각과 ‘빅텐트로 갈 수 없어 중텐트로 간 것’이라는 시선이 공존한다. 통합신당의 앞날 전망을 위해 두 개의 중텐트의 성격을 따져 보자. 신당 세력의 구성원을 보면 유일하게 이질적인 집단이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다. 이낙연 전 대표, ‘원칙과 상식’, ‘새로운 선택’. ‘한국의 희망’ 모두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념적 교집합이 전혀 없다. 이만이 아니다. 이준석 신당은 중도와 젊은 층의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이낙연 신당은 호남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공동의 명분을 통해 빅텐트를 칠 수 있다면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고착된 지역대결, 이념대결, 세대 대결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만큼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얘기다. 확장력 증진을 위해서는 종전에 없던 이념, 지역, 세대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실용적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똑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다소 세대가 차이 나는 이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추구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념과 세대, 지역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용 정치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매력적일수록 실현되기는 어려운 게 세상의 이치다. 이질적인 정치 세력의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다. 빅텐트는 신기류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잡탕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빅텐트를 언급하면 “잡탕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빛깔은 잃지 말자”라고 덧붙였다. 이질성이 더 부각하면서 ‘빅텐트’ 통합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말과 행동에는 차이가 난다. 개혁신당의 창당 프로세스는 이준석 대표의 수사와 이율배반적이다. 이준석 대표가 조건 없는 통합 논의보다 개혁신당의 ‘자강’에 무게를 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개혁신당의 선명성을 부각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빅텐트의 상대인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한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개혁신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를 공약했다. 공수처 폐지는 이낙연 전 대표가 수용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문재인 정권 때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기치였다. 공수처는 이 전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 신설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다. 또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도 마찬가지다. 개혁신당의 차별성에 방점이 찍힌 공약이다.
이런 일련의 공세는 이준석 대표가 각개약진을 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신당’의 당명, ‘개혁미래당’을 “무임승차 당명”이라고 트집 잡았다. 더 나아가 지난1월 31일에는 ‘개혁미래당’과의 연대에 대해 “미래 공약이나 지향점을 공유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이질성이 하나둘씩 부각하면서 빅텐트 통합이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도권 행사라기에는 너무 의도성이 짙어 보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독점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본격적인 신당 통합 논의를 지연시킴으로써 통합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결국 주도권을 자신이 지고 빅텐트를 치든, 아니면 중텐트로 가면서 선거 연대를 하든 개혁신당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준석의 독자 행보는 민주당 출신 제3세력과 이념적 이질성 때문
독자 행보를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념적 이질성의 극복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경제정책이나 대북정책 등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통합 효과는 물거품이 된다. 오히려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보수 기반까지 훼손되는 행보를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차별화된 보수라는 자신의 정치 지향을 상실하는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다.
만일 그런 결심을 한다면 상황에 따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특히 현재까지 개혁신당이 확보된 국회의원은 양향자 의원이 유일하다. 더 큰 문제가 그 앞에 있다. 선통합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영남권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을 개혁신당으로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개혁신당의 간판으로 영남 지역에 출마해야 하는 현역 의원에게 이낙연이란 그림자는 결코 구미에 당기지 않는 일이다. 현역 의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공천권 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면 이준석 대표가 ‘전략적 공세’를 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준석 대표의 ‘도발’에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한 측근은 “패거리 싸움을 지양하겠다고 신당을 만들면서 진흙탕 싸움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공멸”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개로 조각난 배로 거함(거대 양당)에 대적할 수 없음을 이준석 대표도 잘 알고 있다. 거대 양당의 정쟁을 보기 싫어 신당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 세력도 싸움을 벌인다면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기존의 양대 정당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당도 진흙탕 싸움이네’라는 여론이 이는 순간, 신당은 실패한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은 상대적으로 다른 신당 세력보다 고르고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주도권만 장악한다면, 이를 앞세워 다른 신당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신당 통합 선언을 한다면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일종의 ‘대반전 전략’인 셈이다.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거의 한 달째 답보하고 있다. 양당과 차별화되는 신당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국민은 지금도 신당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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