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국가과학기술개발원
우수인재들은 일반 직원들을 뛰어넘는 생산성을 지닌다. 2012년 연구에 따르면 고성과자는 직원 평균 대비 약 400퍼센트 정도 높은 생산성을 낸다고 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실시한 좀 더 최근 연구에서 복잡한 소프트웨어 개발 또는 전문 관리 직종에서는 우수인재의 생산성이 800퍼센트 더 높다고 분석했다.
국적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이 우수인재를 찾고 유지하기에 혈안이 된 이유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21년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331명을 대상으로 ‘우수인재 확보 및 관리 현황’에 대한 조사에서 참여사의 85.8%가 우수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우수인재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맡은 일에 열정적’(복수 응답, 42.6%), ‘직무경험 및 전문지식’ (28.4%), ‘강한 책임감’(26.6%), ‘팀워크 및 분위기 주도’(15.4%) 등이 순서대로 꼽혔다. 하지만 열정과 능력으로 무장한 우수인재들이 위기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뛰어난 인재가 위기 상황에 무너지는 이유
예를 들어, 조직의 중요한 과업을 떠앉고 무리해 일을 하다가 탈진하거나, 기대를 모았던 중요 프로젝트 실패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하는 경우다. 부서가 바뀐 후 급격히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거나 새로운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결국 조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 원인은 매우 많겠지만 우수인재들은 대개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적인 원인보다 내적인 요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이 실패에 대한 태도다. 학창 시절에서부터 항상 1등만 하고 입시나 취업뿐 아니라 승진에서도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실패에 대한 내성이 쌓이지 못한 우수인재들이 특히 그렇다. 새뮤얼 피어폰트 랭리(Samuel Pierpont Langley)는 19세기 말 미국의 존경받는 물리학자이자 대학 교수였고 1896년 동력 비행체 제작에 성공한 후 풍부한 재정적 지원까지 받으며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에게 이 영예를 빼앗기고는 항공 관련 연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지금까지 겪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진학 또는 취업 면접의 단골 질문 중 하나다. 면접관들이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후보자의 ‘회복 탄력성’을 평가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회복 탄력성을 갖춘 인재가 우수인재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시작된 카우아이섬 종단연구(the Kauai Longitudinal Study)에서였다. 하와이 인근의 작고 가난한 섬마을에서 출생한 신생아 수백 명의 삶의 궤적을 30년 이상 추적하여 유년기의 성장 환경과 유전적 요인 등이 성인으로서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연구였다. 가장 성장 환경이 열악했던 200여 명을 별도로 분석했을 때 3분의 1 정도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했는데, 그 원인을 회복 탄력성의 작용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삶의 역경이나 실패에 직면했을 때 좌절과 실의를 딛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능력과 태도’를 의미하는 이 개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연구 및 실천에 적용되고 있다. 발달심리, 정신의학, 교육학, 사회학, 조직이론,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는 점은 이 개념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적용됨을 말해준다.
회복 탄력성 연구자들은 이 개념이 매우 복잡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 만큼 정의(定義)도 다차원적이고, 구성 요소에 대해서도 연구 분야나 학자에 따라 관점이 다르다. 카우아이섬 종단연구를 주도한 워너는 ‘결손 가정 출신에도 불구하고 잘 성장’, ‘스트레스 하에서 지속적 역량 발휘’,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을 개념적 구성 요소로 상정한 바 있다.
최근에는 역경에 대한 긍정적 적응(positive adaptation despite adversity)이라는 정의가 많이 쓰인다. 삶의 역경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회복 탄력성 역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회복 탄력성이 요구될 가능성이 더 크다.
실패 확률이 매우 높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대표가 그렇다. 돌보던 환자가 돌연 사망할 위험 속에서 극한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다. 한 건의 주문에 수백억의 자산이 좌우되는 펀드매니저들도 다르지 않다.
높은 회복 탄력성으로 인한 대표적인 장점들로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과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한다는 점이 꼽힌다. 아울러 실패로부터 배우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어려운 과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소속 집단 안에서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 등이 있다. 동시에 상처나 트라우마로부터 빨리 회복하고 긍정적이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지 않으며 면역기능이 강하고 대체로 건강하다.
회복 탄력성 사례
회복 탄력성에 대한 HRD 관점의 핵심은 이것이 개발 가능한 역량인지 여부다. 다행히 Schetter & Dolbier (2011) 등 많은 연구자들이 회복 탄력성의 개발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긍정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스트레스 내성(stress resistance)과 같은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유전적인 요인이 결정적이라는 연구도 있지만, 역량 전체로 보면 교육, 훈련, 실천을 통하여 후천적 습득 및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을 발휘한 사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실직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중요한 직업적 도전에서의 실패, 심각한 질병과 부상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 사례가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인 경우가 효과적이다. 회복 탄력성의 사례로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를 정리해 본다.
옥스퍼드에 재학 중이던 호킹은 스물한 살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손발 근육부터 시작해 결국은 호흡기까지 마비되어 죽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환자 중 절반 이상이 2~3년 안에 사망하는 것과 달리 그는 76살까지 살았고, 물리학 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 그는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원칙을 정했다.
잡스는 자기가 설립한 회사의 이사회 결정으로 해고되었다. 심지어 해임을 주도한 사람은 회사의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잡스 본인이 직접 영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12년 동안 와신상담 끝에 다시 애플 CEO로 복귀했고, 그 동안 형편없이 망가져 있던 회사를 되살려 혁신적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췌장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끝까지 자기가 꿈꾼 기업 문화를 만들고 후계자까지 임명한 후 떠났다.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 농구팀 지명을 받지 못해 실의에 빠져 일탈의 나날을 보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결국 NBA 스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농구 황제로 성공한 비결에 대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너무도 유명하다. “나는 농구 인생을 통틀어 9000개 이상의 슛에 실패했으며, 3000번의 경기에서 패배했다.”
롤링은 대학 졸업한 지 7년 만에 이혼 후 딸 하나만 데리고 직장도 없이 정부 보조로 겨우 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실패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소설가로 성공하겠다는 꿈만 가지고 작품을 써내려갔다. 무수한 퇴짜 끝에 그녀의 작품은 대박을 쳤다. “몸을 사리고 조심하면 실패를 면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삶이 아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실패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개인의 실천
회복 탄력성은 선천적인 측면과 후천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노력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강화의 핵심은 뇌가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성인의 뇌도 의식적 훈련과 노력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뇌 가소성’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떤 실천을 통해 긍정적인 뇌로 바뀔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많은 연구와 실천 사례 속에서 공통적으로 중시되는 실천 방안을 요약해 본다.
① 감사의 습관
회복 탄력성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효과성을 인정하는 방법은 ‘감사의 습관’을 훈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감사일기’ 쓰기가 많이 추천된다. 일기는 대개 취침 전에 쓰게 되는데, 기억이 수면 중에 정리 과정을 거치게 되어 효과적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감사하거나 다행스러웠던 일을 구체적인 글로 적는 과정에서 뇌의 사고 회로가 긍정적인 패턴으로 바뀐다. 감사, 기쁨, 즐거움 등 긍정 정서를 느끼도록 하면 안정감을 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장이 뛰는 패턴도 안정적으로 바뀐다.
② 강점 발견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행위가 목표지향적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목표 달성에 관련한 강점을 확인하는 것이 동기를 유발시키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긍정적 자극보다 부정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향을 받으며, 이는 편도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충분히 실증되었다. 가트먼(Gottman) 등은 긍정적 자극이 부정적 자극 대비 5배 이상이 되면 부정적 자극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강점을 확인하는 것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향상을 통해 회복 탄력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③ 명상 훈련
코너-데이비슨 회복탄력성 척도(Conner-Davidson Resilience Scale)는 회복 탄력성을 크게 ‘자기조절력’, ‘대인관계력’, ‘긍정성’으로 나누는데, 명상은 특히 자기조절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집중력과 통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명상은 부정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의 크기를 줄이고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졸(cortisol) 분비를 현저하게 줄여준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목적의 명상은 영적인 수준의 고난도 명상이 아니어도 된다.
④ 관계망 확충
회복 탄력성의 또 다른 축인 ‘대인관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뢰하고 소통이 가능한 관계망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퇴사 가능성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가 조직 내 친한 동료가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친한 동료나 친구가 있으면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에 빠지지 않고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 관계망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감에 기반한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⑤ 신체 에너지 충전
신체적 건강의 균형이 무너졌는데 의식과 감정은 멀쩡할 수 없다. 사람의 신체나 정신은 모두 같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려면 식사, 수면, 휴식, 운동 등 몸의 좋은 습관을 통해 신체 에너지를 충전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신체 리듬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운동이 스트레스 완화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무수한 연구를 통해 검증이 되었다. 건강으로 인한 걱정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회복 탄력성이 뚜렷이 개선된다.
4차 산업혁명, 전 세계적 팬데믹, 공급망 위기, 대퇴사 시대 등, 기업과 조직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가면 갈수록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적 위협과 변화 리스크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다 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의 지속성과 조직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회복 탄력성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경영 방식 하에서 회복 탄력성은 주로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비즈니스 지속성(business continuity) 차원의 이슈였고, 구성원 역량으로서의 회복 탄력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와 혁신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는, 구성원들의 적응 능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적인 회복 탄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재, 조직, 리더십을 중심으로 기업 전반의 회복 탄력성을 측정하고 개발하는 HRD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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