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전략 없이 협상만 붙들다 끝난 부시행정부
對北전략 없이 협상만 붙들다 끝난 부시행정부
  • 미래한국
  • 승인 200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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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됐나? 부시행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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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한반도전문가인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미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사진)은 미국 내 유력한 보수잡지인 위클리스태다드에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기고했다. 내용을 정리·소개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부시행정부 對北정책 실패, 대북전략 마련 못한 데 기인6자회담, 북한 핵위협 줄이는 많은 옵션 중 하나 불과조지 부시행정부의 여러 가지 실망스러운 점에서 대북정책의 실패 만큼 뼈아픈 것은 없을 것이다. 김정일과 북한정권에 대한 단호한 말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간 부시 팀의 대북정책 성과는 패배와 후퇴의 연속이다. 부시행정부의 임기가 끝난 지금, 북한의 핵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부시 취임 때보다 북한의 핵확산 활동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적어졌다. 악의 축이니 자유의 행진이니 하는 장황한 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잔인한 폭정을 유지하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최근 워싱턴에서는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에 대한 비공식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오바마 캠프에서는 부시행정부가 세 가지를 잘못했다고 보고 있다. 첫째, 클린턴행정부 당시 실용적이고 ‘포용’(engagement)적인 대북 태도에 비해 부시의 이념적이고 도덕적인 대북관, 둘째,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한 부시행정부, 셋째, 고위급 회담 즉, 양국 정상 간 만남을 통한 돌파구 마련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부시행정부. 그러나 이 분석은 표면적일 뿐 정확한 것이 아니다. 대북전략 있었으면 北이익만 극대화하는 6자회담 폐기 클린턴의 대북 포용(engagement)을 구상한 사람들은 북핵과 관련, 자기 기만에 빠져 있었다. 클린턴 재임 끝 무렵, 워싱턴 고위 관리들이 북핵과 다른 문제들에 대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환호하고 있을 때 북한은 미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여러 비핵확산 약속을 어기고 비밀리에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었다. 당시 클린턴의 포용주의 추종자들은 북한이 속이고 있다는 증거들을 무시했다. 대신 김정일과의 ‘고위급 회담’으로 양국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며 스스로 만든 이야기를 믿었다. 이런 거짓 진전은 미국 관리들이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외면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북핵위기는 부시행정부가 미국이 속았다는 증거를 북한에 마침내 들이대면서 시작되었다. 클린턴행정부가 자랑하는 1994년 ‘북핵협정’(Agreed Framework)은 불행히도 미국이 북한에 핵시설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협정에서 장래 세워질 원자로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않기에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안전한’ 플루토늄은 없다. 미국의 이 같은 묵인과 김정일 정권 하에서 북한의 평화적 핵개발에 대한 지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정일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한 외교적 돌파구 마련 가능성은 어떤가? 김정일과의 고위급회담은 이미 있었다. 그것도 여러 번. 김정일은 미 국무장관, 일본 총리, 2명의 한국 대통령과 직접 만났다. 그러나 어떤 만남도 외부에서 보기에 뚜렷한 외교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정일은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2002년 준이치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해 속였으며 2007년 평양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과의 2000년 회담은 처음에는 진정한 ‘고위급 만남을 통한 돌파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만남은 한국이 김정일에게 수억 달러의 현금을 제공한 이면 거래로 이뤄진 것이 드러났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과해야 했고 그의 측근들은 이 일로 감옥에 들어갔다. 고이즈미·노무현 등 김정일과 정상회담했지만 성과 없어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외교적 활동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살펴보면 부시 대통령 취임 후 처음 1년 반 동안 상대적으로 북한과의 접촉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부시행정부의 길어진 대북정책 검토 기간과 북한의 거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북한과 협상 및 회담을 했다. 지난 5년 반 동안 미국과 북한은 북한 비핵화를 두고 6자회담으로 엉켜 있었다. 이를 통해 수천 시간의 직접 접촉이 있었고 6개 당사국이 서명한 2개의 합의서가 나왔다. 간단히 말해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협상 및 회의가 부족했다고 할 수 없다. 부시 임기 마지막 2년 동안 부시행정부 북핵특사는 끊임없이 북한과 협상했다. 문제는 계속되는 비핵화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한 데 있다. 오히려 외교협상이 거듭될수록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위상이 더 공고해졌고 이를 억제하려는 국제사회의 제약은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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