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 교수의 인생담론
老 교수의 인생담론
  • 미래한국
  • 승인 200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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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이 보내는 칼럼
교수는 나의 6년 선배다. 60년대 초 독일서 공부할 때 ‘하이데거 교실’에 들렀다가 대뜸 동양철학에 대해 얘기해 보라 해서 진땀을 뺐던 일 같은 것을 즐겁게 회상한다. 황혼기 철학 교수의 인생담론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하다. 다음은 그의 얘기 몇 가지다.얘기 1 뇌출혈 이후“죽을 병에 걸려 보지 않은 사람은 어차피 바보다.” 그 말이 내겐 절실하게 다가온다. 환갑 해에 쓰러져 뇌 수술을 받았다. 말과 보행이 전만은 못하지만 그런대로 한 두 시간 대학원 세미나를 주재할 만큼은 회복이 되었다.생전 그리스 철학을 가르쳐 왔지만 ‘플라톤’의 진수를 이해한 것은 병 치례 이후이고, 옛날 독일서 사다가 쌓아 놓았던 LP의 선율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깨달은 것도 병 이후다.얘기 2 풍요와 장수의 아이러니지난 50~60년대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80~90년대 들어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서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왕창 늘었다. 평균 수명이 40~50세 때는 모두들 좀 더 살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막상 80~90세 장수시대가 되면서 잔인한 여생에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이 양산됐다.가난 구제니, 노인 복지니 하고 아무리 떠들어 봐도 그건 영원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라나 사회는 인간을 집단으로 다루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는 절대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각자 제 일은 제가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 자조의 길 뿐이다. 장수에 대비해선 첫 월급부터 모든 수입의 25%를 미리 뚝 떼어 적금을 부어 나가면 된다. 노후 뿐 아니라 생전 돈 걱정 안하고 살 수 있다.얘기 3 남자의 3대 죄악‘정욕, 탐식, 나태’가 남자들의 3대 죄악이라고 엊그제 교황청에서 발표했다. 동물은 하나 같이 암놈을 쫓고, 먹이를 찾고, 이게 채워지면 하릴없이 빈둥거린다. 교황청의 계고는 말하자면 사람이 동물과 같아서야 되겠느냐는 얘기 같다.그런데 실은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게 한 가지 있다. 짐승은 두 가지 본능만 채워지면 만족하고 물러서지만, 유독 사람만은 오히려 그때부터 허욕이 발동해서 불평 불만이 끝없이 분출한다. 인간의 커다란 함정이다.나는 진심으로 내 못난 데 비해 오늘의 내 형편이 아주 과분하다고 믿기 때문에 불만은 커녕 지금의 내 행운에 마음 속 깊이 감사할 뿐이다.얘기 4 ‘지적능력’의 효도교수의 지적 능력이란 돈 벌고 출세하는 데는 별 볼일 없다. 방마다 책만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 집에서도 구박둥이다. 그게 늙어서 효도를 한다. 재간이 좋아 젊어서 펄펄 날던 친구들은 정년을 고비로 일거리가 똑 떨어져 팍삭 늙는다. 그에 비해 교수는 정년이 돼도 책 읽고 글 쓰는 지적 작업에 아무 지장이 없다. 게다가 돈을 벌어야 할 책임마저 벗으니 세상에 이 이상 마음 편할 데가 없다.얘기 5 치매미국 통계로는 치매 비율이 75세에 13%, 85세에 50%다. 치매 예방의 키는 머리에서 피가 힘차게 돌아가게 하는 것. 결국 심장에 좋은 운동이 치매에도 좋은 셈이다. 예방책의 또 한 기둥은 두뇌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 두뇌 활성화엔 독서와 사색이 좋고, 그에 적합한 장소로는 Bathtub, Bed, Bus, 이른바 ‘3B’가 좋다. 옛날 선비들은 측상(뒷간), 침상(벼개), 마상(말위), ‘三上’을 쳤다. ‘3B ’와 ‘三上’은 얼추 일치한다.낱말 퍼즐 놀이도 머리 활성화에 좋다. 신문에서 보는 ‘십자풀이’도 재미 있고, 또 이런 것도 있다.“다음 낱말들을 보고 모두에 연관되는 하나의 낱말을 찾아라.”“Red Nut Bowl Cup Basket Jelly Fresh Cocktail Candy Pie Bakery Salad Tree Fly”(정답 Fruit)교수의 마감 얘기내 인생 최악의 세월이 되겠구나 생각했던 수술 후의 나의 여생은 뜻밖에 나의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 모여 있는 보물단지가 되었다. 보고 듣고 맛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다.누구나 나이 70~80에 ‘또렷한 머리’와 ‘온화한 성품’만 지닐 수 있다면 그의 노년은 인생 최고의 시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성원 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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