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열 최고위원 "600년 만에 지방행정체제 개편 임박"
허태열 최고위원 "600년 만에 지방행정체제 개편 임박"
  • 미래한국
  • 승인 2009.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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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
▲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로 꼽히는 대한민국. 하지만 지방행정체제만은 600여 년 전에 만든 골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지방행정체제는 1413년 조선 태종 때 확립한 8도제를 1896년에 13도제로 개편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로부터 다시 113년이 지난 지금, 약간의 구역 변경과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제도 도입 등의 개편은 있었으나 근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최근 600여 년 동안 잠잠했던 지방행정체제가 급물살을 타고 개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가 행정적 이유와 함께 정치적 이유가 합쳐지면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여·야, 체제 개편위해 의기투합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대결형 정치구도를 깨자”며 중·대선거구제를 제의하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근본적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그로 인해 17대 국회 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개편 논의가 이뤄졌다.이명박 대통령 역시 행정체제 개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작년 10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의 상위 순번에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올려놓았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지난 3월 3일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9월 30일까지 국회에서 지방행정체제의 전면 개편 문제를 다루게 된다.과연 지방행정체제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 것인가. <미래한국>은 17대 국회에서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18대 국회에서도 특위 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진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난 10일 만나 알아보았다. 허태열 의원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1991년 지방의회를 구성하기 이전부터 내무부에서 논의되었던 사안이라고 전했다. “지금의 지방행정체제는 고도로 체계화된 중앙집권제도로서 5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조선조를 지탱하는 국가통치구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군국주의 아래 인력과 자원의 수탈 조직으로서, 60~80년대에는 한정된 국가자원과 역량을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시절부터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심을 가졌던 허 의원은 행정개편은 우리 사회 각계에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임을 강조했다.“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의 행정 환경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시대를 맞이하여 기존의 행정체제는 더 이상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학계에서 지방행정체제의 개편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이러한 필요성에 공감을 하여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의원들이 ‘기존의 산발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여러 가지 안에 대하여 당리당략적 입장을 버리고 국가의 장래를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당시 세 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열어 학계와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외국의 지방행정제도 등도 돌아봤다.교통·통신 발달로 지리적 개념 급변허 의원은 개편의 필요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밝혔다.“현행 지방체제는 ‘계층은 축소, 구역은 광역화, 사무는 지방 분권화’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단계의 행정계층은 기능의 중복에다 과다한 인력과 예산, 시간을 소요하여 고비용 저효율을 조장하고 주민 불편을 심화시키고 있죠. 도로 교통 통신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그동안 시간적 지리적 공간적 개념이 크게 변화했으니 그에 따른 행정체제가 필요합니다. 이제 저비용 고효율의 간편한 광역 체제로 개편해야 합니다.”현재 우리 나라는 전국 16개 시·도와 230개 시·군·구로 구성되어 있다. 시·도 &#52077; 시·군·구 &#52077; 읍·면·동의 3단계인 현 지방행정체제가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17대 특위에서 시·도 폐지 및 50~70개의 광역시 또는 통합시 설치 쪽으로 의견 접근이 상당히 이뤄졌다. 그러다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의가 중단됐다. 50~70개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을 허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경쟁력 있는 사이즈가 70만 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인구가 4900만이니까 약 70개 정도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죠. 경우에 따라서 100만이 될 수도 있고, 함양 산천처럼 주변에 도시가 없는 경우는 20~30만이 될 수도 있겠죠.”허 의원은 전국을 70여 개의 광역시로 변경했을 때 장점이 많다고 했다. “246개 행정기관을 70개로 줄이면 인건비, 기관운영비, 유지관리비가 대폭 줄어듭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비용을 주민복지비로 쓸 수 있겠죠. 1년에 동사무소와 구청에 한 번도 안가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전 세계에서 읍·면·동 단위까지 국가공무원을 파견하여 낭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습니다. 국민들 의식수준 높아지고 동사무소 갈 일도 많이 없어졌는데 아직도 60~70년대 개발행정 시대의 모델을 그대로 끌고 간다는 건 국력 낭비입니다. 그로 인해 국민들이 안내도 될 세금을 내고 있는 거죠. 그런 걸 정비하자는 겁니다.”그와 함께 효과적으로 각종 시설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광역 상수도망과 쓰레기 소각장, 공설운동장 등 공동 이용이 가능한 기존 시설을 지역자치단체마다 따로 만들어서 불필요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3개 시를 합치면 서울시 면적의 3배 정도 됩니다. 그 정도면 광역행정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어느 시·군·구도 자족적으로 일을 못합니다. 적은 돈으로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으니까 난개발도 많이 줄어들 겁니다.”현재 여론조사에서도 행정개편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의회가 14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전화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1%가 ‘일시 개편’ 또는 ‘부분적 개편’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중앙 집권체제 강화의 위험성이미 마산·창원·함안 지역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통합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통합 논의를 하는 지역은 ‘통합할 경우 행정비용은 최소화하고 주민복지는 최대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을 최대 강점으로 꼽고 있다.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도(道)를 해체하면 자치단체가 더 왜소해져서 신(新)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반대이론이다. 현재 대한민국 지방자치를 흔히들 ‘3할 자치’라고 부른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서 의사결정 법규를 만드는 것이 3할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국방, 사법, 금융 등 중앙정부가 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허 의원은 통합시가 되면 거의 ‘70% 자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지금은 지방자치의 조례제정을 법령에서 위임된 것만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법률에 위임을 해놓지 않으면 자치단체에서 조례를 못 정한다는 뜻이죠.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많은 부분을 위임하면 범위가 상당히 넓어집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이하 교육권을 통합시에 넘겨주면 평준화하든지 입시제도를 만들든지 그 도시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주민생활과 가장 가까운 게 지방자치입니다. 연천 사람과 수원 사람이 지역에 대한 공통관심사를 가질 수가 있을까요? 서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 경기도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을 뿐입니다.”지방행정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들보다 이해당사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국회의원 지역구 문제도 있다. 허 의원은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서로 경계를 달리하는 시·군·구를 통합할 때 선거구 중심으로 통합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시골은 두 세 개 지역을 한 선거구로 하고 있기 때문에 통합운동도 그 중심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행정체제 개편이 중·대선거구로 가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처음 도전하는 분들은 지명도가 낮아 중대선거구로 가면 아무래도 불리할 테니까요. 여야간에 18대와 같이 19대도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하면 웬만한 반대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70개의 시로 통폐합되면 공무원 유휴 인력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작은 자치단체가 큰 지역으로 흡수될 경우 작은 지역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허 의원은 남는 공무원 문제도 1990년대 중반 81개 시군을 40개로 통합할 때의 방식으로 풀면 된다고 했다.“당시 남은 인력이 5년 정도 지나면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정년퇴직을 비롯하여 스스로 그만두는 분들이 있었고 5년 간 충원을 안 하니 자연 해소가 되더군요. 그런 방법으로 남는 인력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문제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이다. 특히 도시에 살아 행정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던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가 힘들다.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익숙해진 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혼란과 불편을 느낄 수 있다.
국민의 대승적 합의가 관건여러 도시가 합쳐졌을 때 과연 명칭을 어떻게 정하느냐, 시청사는 어느 도에 두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외곽지역으로 도시의 혐오시설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 자립도가 높은 도시의 주민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낙후지역에 투입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가질 수 있다. 불편해도 내 고향을 사수하겠다는 사람들의 반대도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허 의원은 모든 것은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100년이 넘게 이어온 제도를 정치권의 논의만으로 바꾸는 건 오만한 일이지요. 충분한 준비를 하고 홍보를 하여 국민투표를 하는 게 빨리 알리는 길이겠죠. 만만찮은 저항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낙관은 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건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행정체제 특별법 법문에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논의할 과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대승적으로 동의해 주셔야 실행할 수 있습니다.”허 의원은 17대 특위에서 지방행정개편에 대해 여야가 상당 부분 합의를 했다며 이번 특위에서는 지방을 돌면서 공청회를 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고 했다. 야당도 뜻이 같다고 하지만 자유선진당의 의견은 다르다. 자유선진당은 개편의 필요성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전국을 6~7개 광역단위로 나눠 각 광역단위가 스위스, 핀란드처럼 세계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의 유력 방안은 오히려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지방자치의 왜소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허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서 행정개혁이 가시화되기 바란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하기 위해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 입법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입니다. 지금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시대에 맞지 않는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행정체제개편에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행정안전부 수장으로 이달곤 장관을 임명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이뤄질 것 같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 장관은 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이 분야 전문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70개의 광역시로 재편하여 행정비용은 최소화하고 주민복지는 최대화하는 효과를 얻을지, 이해관계에 얽혀 온 나라가 시끄러워질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113년 전에 만들어진 제도 속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변화무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과연 새로운 행정체제를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낼 것인지, 아니면 113년을 참아온 은근과 끈기로 이대로 계속 갈 것인지 우리 자신이 궁금한 사안이다.#이근미 편집위원·소설가 gosus@dreamwiz.com사진·허태열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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