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에 대한민국은 없다
남북회담에 대한민국은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0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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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야기
▲ 2007년 10월 4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양국회담에서 있을 수 없는 배석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 보고하는 모양새다
벌써 햇수로 10년 전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돼 있는 한반도 역사의 희화적 장면이 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 순안비행장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만나는 ‘세기적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북에서 북한군 명예의장대와 함께 예포(禮砲)를 책임진 부대의 지휘관을 지냈기에 그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전용비행기 트랩을 내려 마중 나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맞잡으며 힘껏 포옹했고 이에 김정일은 화답의 웃음을 보냈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예우는 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특이한 점들은 북한의 육해공군 명예의장대 사열 순서에서부터 나타났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의전절차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한의 대남인식이란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북한이 지배하는 종속지역이며 남한 대통령은 그 지역을 관리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한 국민들은 대부분 눈치 채지 못하고 있겠지만 인민군 의장대의 복무규정에 정통한 나는 당시 의장대의 사열 절차가 가진 상징적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어찌 되었든, 그날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김대중 대통령은 자리에 없었다. 다만 남한에서 김정일을 알현하러 온 ‘남한지역사령관’ 정도의 인물이 있었을 뿐이다. 국빈을 맞이하는 의전순서의 절차와 방법들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타국의 국가원수가 북한을 방문하면 의장대 사열에서 반드시 두 가지 절차를 밟는다. 첫째는 상대국의 국가원수 앞에서 의장대장이 칼을 빼어들고 의장대 사열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엄숙히 보고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장대 사열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도열한 의장대 사열이 마쳐지는 시간까지 모두 21발의 환영 예포를 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두 절차가 모두 생략됐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과 함께 걷는 의장대 사열은 있었지만 의장대장의 엄숙한 보고도 21발의 예포도 없었다. 또한 의장대장의 사열준비 보고가 김대중이 아닌 김정일에게 있었다. 정상적 의전절차라면 의장대장이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동지,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의장대는 당신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명예의장대장 대좌 아무개!”라고 보고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의장대장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당신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명예의장대장 대좌 아무개!”라고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예포는 외국의 국가수반과 김정일, 인민무력부장에게만 발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당시 예포발사가 없었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국가수반으로서 예우를 않았다는 증거다.남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은 국빈을 태운 의전차량 행렬이 연도를 지날 때도 드러났다. 2000년 7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연도의 군중들은 “김정일, 푸틴 만세”라고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는 “김정일 동지, 조국통일 만세”라고만 외쳤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남한 대통령에 북한의 인식은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있었던 김정일과 노무현 대통령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만남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났다. 의장대장의 엄숙한 사열준비 보고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김정일을 향해 있었고 21발의 예포는 울리지 않았다. 연도의 군중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대신에 김정일 동지라는 이름만 외쳐댔다. 또한 실제 회담장에서는 김정일이 대남담당관 한명만 대동한 채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 명의 고위 인사들을 상대 테이블 앉히고 나란히 대담함으로써 자신을 알현하러온 남한인사들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했다. 국빈 방문은 양국 사이에 의전에 대한 면밀한 사전합의가 전제조건이다. 국가 정상을 맞이하는 의전은 상대국을 향한 상호존중과 신뢰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외교적 상징성을 갖는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그러한 의전이 무시되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남한에 대한 차별적 예우를 알면서도 인정했다. 처음부터 비굴한 만남을 인정하고 차별과 멸시를 묵과했던 것이다. 이는 남한국민들로서는 수모의 극치가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국가적 권위와 존엄성이 여지없이 모멸되고 만 것이다.#/이주성 가명·전 북한 인민군 중좌·1998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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