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박사 “우파적 사고가 성공을 부른다”
공병호 박사 “우파적 사고가 성공을 부른다”
  • 미래한국
  • 승인 2009.04.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미가 뛴다 _ ‘1인 기업가’ 공병호 박사 인터뷰
▲ 공병호 박사
2001년 10월, 41세에 1인 기업가로 나선 공병호 박사는 지난해 저술과 강연, 자기경영아카데미 운영으로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성공비결을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과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라고 분석했다.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운영하는 1인 기업가 공병호 박사(경제학)를 만나 “비서가 있으면 1인 기업이 아니지 않느냐”고 딴지를 걸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비서 한 명이 상근하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사람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공병호 박사는 국토개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을 거쳐 자유기업원을 창설하여 초대 원장을 지냈다. 그후 인티즌과 코아정보시스템 대표를 역임했다. 2001년 10월, 41세에 1인 기업가로 나선 그는 지난해 저술과 강연, 자기경영아카데미 운영으로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누구나 연봉 7천만 원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공 박사는 세금을 제하고도 매월 7,000만 원 이상 벌고 있다. 그는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새 삶을 찾아 나섰고, 목표를 달성했다.“남이 만들어준 자리는 한계가 있어요. 연구소를 잘 만들어서 키운다 해도 60, 70세가 되면 그만두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 정도 그릇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연구소 더 키우는 걸로 만족할 수 없다, 노력해서 부유해져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새 출발을 했습니다.”스스로가 생각하는 성공비결을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과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라고 분석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직장생활 할 때 관리 능력, 콘텐츠 만드는 능력, 강연하는 능력 등을 트레이닝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초작업이 잘 되어 있었지요. 가장 큰 건 책임지려는 자세입니다. 저 자신을 믿으니까 조직을 떠나 오늘까지 온 겁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을 반듯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인생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게 되어 기쁩니다.”‘젊은 보수 꼴통’이라는 꼬리표지난 10년 간 좌파가 목소리를 높일 때 우파 젊은 지식인들은 보수 언론의 원고 청탁이나 인터뷰 요청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 생으로 386세대인 공병호 박사는 자신의 신념을 거리낌없이 펼쳤고 그런 그에게 ‘젊은 보수 꼴통’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전경련을 비롯하여 500여 명에게 도네이션을 받아 자유기업원을 개원했을 때도 시끄러웠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저는 기업가 정신을 갖고 인생을 살아요. 제가 가진 신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신념대로 밀고 나온 겁니다. 말이 많을 때 ‘죽은 개는 차지 않는다, 살아 있기 때문에 발로 차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남의 눈치볼 거 없잖아요. 제 소신대로 살아온 건 아마도 촌 출신의 근성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공 박사는 경남 통영 출신이다. 그는 우익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단호하게 얘기하는데 우익적 사고를 갖지 않으면 잘 살 수 없어요. 올바르고 건강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평생 다른 사람들 장단에 춤추다 갑니다. 비참한 인생이죠. 자녀에게 건강한 생각을 심어주고 젊은이들에게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합니다.”지난해 촛불집회 때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자기 관리를 잘하면 특별한 불행이 끼치지 않는 한 잘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생각이 비뚤어지면 모든 게 끝입니다. 촛불집회 때 자녀를 모두 데리고 나간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의 뜻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라’고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집회에 나가지 않더군요. 영어 잘하고 좋은 대학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하루 5시간 수면, 금주 금연, 저녁 약속 안 잡기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한 공 박사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을 비롯하여 꼭 필요한 모임에는 나간다고 말했다. “한 번 마셨다하면 일주일이 피곤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겁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골프 대신 러닝머신으로 운동합니다. 세상살이가 간단하지 않고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절제를 하는 거죠.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롱런 할 수 없어요. 나 자신을 관리하여 성과를 내는 일이 재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강연하는 것과 책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 박사는 강연할 때는 ‘동감의 힘’을 늘 생각한다.
“한국 학자들은 로맨티스트, 나는 실용주의자”“최근에 성균관대생 800여명, 경희대 교직원과 의사, 평창 군민, 여고 총동창회 모임 등 다양한 청중들 앞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긴장감이 있지요. 90분 동안 밸류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동하면서 이 분들에게 무얼 얘기해줘야 하나 늘 생각합니다. 제가 경제학을 했지만 인생살이, 자녀교육, 성공학 등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대한민국 학자들은 로맨틱한 편인데 저는 실용주의자입니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저를 찾는다고 생각합니다.”공 박사는 어디를 가건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는데 그 안에 노트북, 상비약, 면도기, 스톱워치 등 다양한 물건이 들어 있다.“이동하면서 한시도 쉬지 않습니다. 스톱워치로 공부는 얼마나 하고 일은 얼마나 하는지 잽니다. 수요일이면 다음 1주일 강연 준비가 끝납니다. 1주일 단위로 내 삶을 컨트롤하면서 살지요. 준비를 잘하면 불안감도 없고 스트레스도 느끼지 않게 됩니다.”그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10분이건 20분이건 일에 몰두한다.“바로 가속도가 붙어요. 빨리 전환이 안 되고 워밍업을 해야 되고, 이런 건 핑계죠. 국가경영, 회사경영, 자기경영은 다 똑 같은 원리입니다. 관리를 잘하면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경과 조건을 따질 이유가 있나요. 집안 탓할 것도 없습니다. 가난하면 부자들이 가질 수 없는 인생의 포부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40대에 퇴직을 강요받는 직장인들을 위해 짧은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다.“우리는 지금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전쟁도 없고 굶어죽을 염려도 없습니다. 걱정을 하는 분들에게 진짜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잘해서 어떻게 입신할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옛날처럼 마케팅비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블로그만 잘 만들어도 길이 열립니다. 일단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생각하시고, 그 일에 집중하십시오.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금물입니다. 하다보면 기회가 생깁니다. 단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직장을 떠나면 안 됩니다.” 공병호 박사는 2002년부터 67권의 책을 냈다. 직장 다닐 때 낸 것까지 합치면 모두 91권이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전쟁하듯 글을 쓴다고 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공병호의 소울메이트>(흐름출판 刊)는 한 달도 되지 않아 3만 부를 넘어섰다. 공 박사의 저서는 어떤 책이든 출간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91권의 저서 출간“제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계속 토픽을 옮겨가며 공부합니다. 다작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다작을 한다는 건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팔기 위한 노력 대신 독자가 돈을 내고 사볼 만한 값어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효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용하면 무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살다가는 건데 좀 다부지게 살아서 저의 극한치를 발휘하고 싶습니다.”그는 자신의 저서 중에서 <공병호 자기경영노트><10년 법칙> <공병호의 초콜릿><한국, 번영의 길><인생의 기술><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을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했다.그가 2004년에 낸 <10년 후, 한국>은 4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그 책에서 그는 “10년 후 한국을 대표하는 두 단어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 될 것이다. 저성장과 고실업은 구조적인 현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책임질 만한 사람들이 장기적인 계획과 소신을 갖고 난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거의 없어 보인다. 앞으로 10년, 경제가 어려워져도 진보 진영은 득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을 통해 보수 진영의 늙고 무능함, 부패를 지적함으로써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질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그 책을 발간한 후 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예언서가 아니라 이 상태로 가면 힘들 거라고 경고한 서적이었죠. 당시 정권 교체가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만 틀렸고, 나머지는 그대로입니다. 지금 바뀐 게 하나도 없어요. 인권위원회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고 있잖아요. 이 대통령 자신이 미래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도자는 지적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30대에 사장이 되셨으니 지식을 축적할 시간이 없었겠지요. 참모를 잘 두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빌릴 수 있는 머리가 있고 빌릴 수 없는 머리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회색 정권”공 박사는 현 정권의 색깔을 회색이라고 규정했다.“방향이나 그림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경기부양을 한다고 돈을 엄청나게 쓰는데 돈을 푸는 것과 동시에 비효율 고비용 부분을 구조조정 해야 하는데 겁이 나서 안 합니다. 은행보고 자꾸 돈 빌려주라고 하는데 옛날과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너무 많은 과제 다루지 말고 수용 가능한 주제만 다루면 좋겠습니다. 경기를 회복시키되 지나치게 재정 팽창이 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노사문제, 공기업 문제, 교육개혁 문제, 수도권 문제 등 몇 개 분야만 정해 선명한 조치를 취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대통령이 너무 바쁘고, 사람을 제대로 못 움직이는 것 같아요.”공 박사는 현시점에서 ‘10년 후 대한민국’을 대단히 낙관적으로 바라봤다.“훈련받은 젊은 인재가 많고 한국 기업이 상당수준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정치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닿지만 않으면 잘 할 것으로 봅니다. 정치가 최악의 상황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언론이 조작하고 세뇌하고 별 짓을 다했지만 국민이 정권을 교체시켰습니다. 이제 조작은 힘듭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합니다.”그의 이런 판단은 2002년부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많은 대중강연을 한 후에 얻은 결론이다.“한국인들은 더 잘 되어 보려는 욕심이 많고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지도자들이 잘 이끌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교육개혁이 반드시 성공해서 애를 많이 낳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고령화사회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지자체에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고 울컥할 때도 많았습니다. 애국심이 많이 생겼죠.”내년이면 50세가 되는 그는 요즘 자신의 ‘50년사’를 집필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 아쉬웠던 점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 같은 특별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과정을 돌아보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40년을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어요. 어떻게 해야겠다고 계획하면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쓰고, 강연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겠지요. 책을 중간쯤 쓰다보면 다음에 무슨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때 운명이 자신을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을 열심히 살 뿐입니다.”그는 운을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문장이 ‘Are you ready?’(준비됐나요?)이다. “늘 깨어 오감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살다보면 운이 다가옵니다. 저는 운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늘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순간 필이 꽂힐 때 바로 잡아야 합니다.”“나는 운을 놓친 적이 없다”그는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젊은 정신으로 살고자 애쓴다.“격이나 의전을 별로 안 따집니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를 만나든 정중하게 대하고 몰입합니다. 무엇을 하든 충실하려고 애쓰지요. 세상사에 호기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니 모든 게 재미 있어요. 저는 성격이 급하고 완벽하지 않아요. 저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죠. 참을성 있게 부드럽게 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베스트셀러 비법을 묻는 필자에게 “세속적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덧붙여서 “나중에 책이 잘 나가면 절대 폼잡지 말라”고도 했다. 다음 강연을 위해 일어서던 그는 인터뷰 도중에 여러 차례 했던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남 눈치 볼 거 뭐 있어요. 남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남이 무얼 하고 사는 것에 참견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이 한가하지 않으니까요. 내 신념대로 내 방식대로 열심히 살면 됩니다.”# 글·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사진·정호정 인턴기자 beckham7kr@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