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광우병의 아이러니
담배와 광우병의 아이러니
  • 미래한국
  • 승인 2009.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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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_노환규 편집위원·AK존스클리닉 원장

2008년 봄 대한민국은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소위 광우병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방송보도에 의해 제기된 광우병의 공포는 유모차에 아기를 실은 엄마들을 앞세운 거대한 촛불시위로 확대됐다.

어떤 연예인은 미국 쇠고기를 먹느니, 입안에 청산가리를 털어 넣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광우병은 우리들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고 국민들은 광우병의 진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먼저 광우병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1.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는 과연 몇 마리나 되었는가?
국제수역사무국(OIE)에 따르면 1986년 영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된 이후 우리 나라에서 광우병 파동이 시작된 2008년 3월까지 전 세계 25개국에서 19만297건의 소가 광우병 소로 진단됐다. 이 중 18만5,000여 마리가 영국에서 발생한 것이었고, 나머지 5,700여 마리가 다른 24개 국가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 중 일본에서는 34마리가 발생되었고, 우리 나라는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없는 광우병 미발생 국가로 분류된다.

2. 광우병은 지금도 많이 발생하는가?
광우병이 가장 창궐했던 1992년과 1993년 광우병은 영국에서만 한 해에 3만 마리가 넘게 발생하다가 세계적으로 동물성 사료를 금지시킨 후 급격히 줄어 200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41건만이 발생됐다고 보고됐고 2008년에는 3월 기준으로 20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3.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는 모두 몇 마리인가?
미국에서는 2008년 4월까지 모두 3마리가 광우병으로 진단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여서, 미국에서 자생돼 발생한 광우병 소는 두 마리였다.

4. 전 세계적으로 인간광우병(v-CJD)에 걸린 것으로 진단된 사람은 몇 명인가?
2008년 3월 현재 200여 명이고, 대부분은 영국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모두 3명이 인간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보고됐는데 그 중 두 명은 영국과 UAE 등 광우병 발생국가에서 장기간 체류하던 사람이었다.

5.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리는가?
걸릴 수 있다. 걸릴 확률은 섭취하는 프리온 양에 비례한다. 다만 종간장벽(inter-racial barrier) 때문에 감염의 확률은 낮다.

이 몇 가지 사실만 살펴보아도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당시에 과대포장됐음을 알 수 있다. MBC PD수첩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린다는 취지로 두 번에 걸쳐 특집 방송을 했으나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약 20만 마리의 광우병 소 중에서,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의 숫자가 단 세 마리에 불과하다는 (그 중 한 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소) 간단한 통계 조차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1990년대 초 광우병이 영국에서 만연했을 때의 자료를 인용하고 다우너병에 걸린 소들의 동영상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미국의 소들이 광우병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도 백척간두에 선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 나라에서도 한 해 약 50여 명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CJD환자를 인간광우병인 v-CJD환자로 둔갑시켜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계산방법과 기준에 따라 확률은 크게 달라지겠지만 필자의 계산에 따르면 미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감염될 확률의 최대수치는 10억분의 1이었다.

이렇게 작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광우병 뿐이 아니다. 광우병은 특정 방송사가 의도적으로 언론의 힘을 남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언론인들의 무지함과 경박함으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는 더욱 많다.

지난 3월 어느 공중파방송의 보도에 의해 이슈가 된 석면파동을 예로 들어보자.

석면은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물질로서 암의 발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석면으로 인하여 암이 발생하려면 장기간 다량의 석면에 노출돼야 한다.

그러나 모 방송국의 아침방송에서 어느 기자는 자전거의 브레이크 패드에도 석면이 들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 여성을 세워 브레이크 패드에도 석면이 들어 있는데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일조했다.

또 다른 많은 기자들은 석면과 탈크를 혼동해 보도함으로써 석면파동이 졸지에 탈크파동으로 탈바꿈해 탈크가 함유된 모든 화장품, 제약, 제품들이 발암물질이 함유된 제품으로 오인돼 국민이 불안에 떠는 웃지 못할 상황을 초래했다.

그 커다란 사회적 파장은 급기야 식약청이 탈크가 함유된 1천여 가지가 넘는 약품을 하루 아침에 유통금지를 공표하는 사태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다수의 제약회사가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갈팡질팡하는 정책에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데 너무 잦은 일이라 이제는 이런 일이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방송사들은 한 두 가지도 아니고 무려 60여 개가 넘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특정식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광우병의 위험을 강조하는 기자들도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식품을 섭취한다. 바로 담배다.

수십 가지의 명백한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미국 소 물러가라고 외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인가. 그런 담배를 사기업도 아닌 정부가 판매한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담배의 위험은 미국 소가 가진 위험의 수백만 배 이상에 달한다. 언론이 집중해야 할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적은 오히려 담배다.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무지한 국민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권력화된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는 아니길 빈다.

언론은 오로지 사실보도에 충실하고 판단은 국민들에 상식에 맡기며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전문가에게 진실을 의뢰해 보도하는 성숙한 언론 문화를 기대하는 것이 비단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비흡연자였으면 한다. 세상이 그렇게 비합리적이 아니길 빌기 때문에…#

노환규 편집위원·AK존스클리닉 원장
(연세대 의대 졸, 미래리더스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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