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삐라, 핵 정국 긴장 뚫고 날아가
풍선 삐라, 핵 정국 긴장 뚫고 날아가
  • 미래한국
  • 승인 2009.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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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모내기 전투에 동원된 수백만 학생과 군인 겨냥
▲ 지난 20, 21일 백령도의 ‘심청각’광장에서 58개의 대형 풍선을 북으로 날려보냈다

풍선 삐라 전문가인 탈북민 이민복 씨(북한구원운동 집행위원)는 지난 6월 2, 3일 백령도에서 300만 장의 삐라를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6·15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9년이 되는 날이며 NLL지역에서 1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날인 6월 15일을 즈음해서는 3일에 걸쳐 무려 400만 장의 풍선 삐라를 날렸다. 최근 얼어붙은 남북 대치 상황 속에 대대급 해병대 병력이 증강되어 더욱 긴장이 고조되는 백령도에서 남북의 엄중한 경계선을 뚫고 삐라를 날려 보낸 것이다.

이민복 씨는 작년 10월부터 백령도에서 북한지역으로 집중하여 풍선을 날려 왔다. 백령도는 북한 황해도 연안과 거리가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봄철과 가을철에는 북한 전역에서 농촌 돕기 일꾼으로 군인과 학생들이 모여드는 황해도 곡창지역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풍선 삐라를 날려 보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북한은 연례행사로 매년 10월에 한 달간의 ‘가을걷이전투’와 5월에 두 달간의 ‘봄철모내기전투’에 전국의 군인과 학생들을 총동원한다(미래한국 5월 26일자 기사 참조). 이때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까지 학생들을 농장 일꾼으로 참여시킨다. 이 기간에 동원되는 인력은 적어도 500만 명 가까이 될 것이라고 이민복 씨는 추산한다.

식량문제가 사활이 걸린 국가적 문제인 만큼 김정일 정권은 북한주민 전체를 농업 노동력으로 사용하라는 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아직도 전근대적 농업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손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형편이므로 일일이 사람을 동원한다. 한 달에서 두 달을 집단 숙식하며 황해도에서 지내는 이들 중학생들과 대학생 그리고 군인들이 바로 풍선 삐라의 주요 대상이다. 이들이 주워 본 삐라 정보는 갖가지 의견이 달려 북한 전역으로 전달된다. 바로 이들에게 삐라를 뿌리기 위해 이민복 씨는 금년 봄에도 백령도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백령도 뱃길은 카페리로 12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한 번 들어가면 최소한 1주일에서 열흘은 지낸다고 한다. 몇날 며칠이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면밀히 살펴보며 가장 적합한 순간을 포착하여 지체 없이 풍선을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12만장의 삐라를 매단 대형풍선을 보통 40개 이상 날리는 힘든 작업이지만 그는 숙달된 손길로 척척 해낸다.

풍선 삐라 작업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풍선 삐라를 후원하는 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편안한 민박을 마다하고 준비한 텐트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한다. 밤이든 낮이든 적당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한다. 대개는 그때를 기다리며 성경을 읽거나 기도에 매달린다. 때로는 풍선 삐라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와서 항의를 하면 차분히 그들을 설득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처럼 어렵게 준비된 풍선들이기 때문에 단 하나라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풍선을 날린다고 한다.

지금 북한은 어느 때보다도 풍선 삐라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민복 씨는 주장한다. 김정일 정권이 체제 유지에 어느 때보다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진실의 목소리는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다. 북한이 당면한 위기는 무엇보다도 김정일 자신이 병들어 지도력을 상실해가고 있고 다음 후계자로 낙점된 셋째 아들(김정운)이 과연 지지를 받아 3대째 세습에 성공할 수 있는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 시점이 북한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이민복 씨는 말했다.

북한 권력층은 이러한 내부 불안을 감추고 위장하기 위해 계속 더 강력한 관심사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안팎으로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했던 것이라고 이민복 씨는 분석했다. 병이 심할수록 고강도의 항생제 주사제가 있어야 하듯 김정일 집단은 갈수록 더 강력한 조치를 하게 될 것이고 장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려 자멸하는 길을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북한 통치는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그는 말했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지 만약 속도를 줄이면 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혼란한 순간에 북한 동포들에게 남북의 현실과 진실을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풍선 삐라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날려 보낸 삐라의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중략) 핵과 미사일이 가장 많았던 소련은 그 무게로 붕괴되었다. / 선군정치는 군국주의, 그 결과 굶어죽는 유일한 나라이다. / 개인 농사에 장사의 자유만 주어도 사는데, ‘나에게 변화를 기대말라’는 김정일을 보라. / 이미 죽은 김일성이 금수산의사당에 9억 달라 감추어두고 광명성 쏘는 일에 썼다. 1호 광명성, 2호 위성 모두 실패했는데도 성공했다고 사기 치며 전쟁 운운한다. / 못살아도 무기만은 최고로 초강국 미국도 쩔쩔 매고 남조선은 상대도 안된다구요? / 남조선은 1992년부터 인공위성 10개, 30년 전부터 원자력발전소 20개나 가동, 임의순간 핵무장 할 수 있다. / 남한 군사력은 세계 4위, 북한은 18위 / 남북 실력차는 1999년 연평해전에서 0대 9로 북조선 군함 침몰대파로 보여줌 / 장기수들을 북송할 만큼 자신 있는 민주정치 / 남조선 평균 월급 2300딸라, 이 돈이면 자전거 20대, 오토바이 3대, 색테레비 10대, 흰쌀 1250kg, 강냉이 6250kg을 각각 살 수 있다. / 그런데도 남조선이 거지? 그런데 그들은 금강산, 개성 관광하고 그 거지가 만든 개성공장에 북조선 인민 4만 명이 일하는데, 그러면 공화국은? (중략)

북한은 작년 9월 1일 남북당국자 회의에서 남한의 민간단체가 뿌린 삐라에 대해 항의를 해왔고 작년 말에는 인근 지역 사령부의 군인들을 동원하여 황해도 해변지역에 살포된 삐라를 수거하는 대대적인 전투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반응들이 풍선 삐라가 구체적으로 북한 정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들이다.

남한에서 날린 풍선 삐라는 평양 지역은 물론 멀리 청진 지역까지 날아간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한 탈북민 증언에 의하면 청진에 사는 이모라는 남자가 청진에 떨어진 삐라를 한 번 주어보았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어 8년 징역형을 받았다고 했다. 이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삐라를 결코 막을 수 없다고 이민복 씨는 주장했다. 왜냐하면 풍선은 대개 3,000미터 이상의 고공에서 터지도록 고안되어 있고 한 번 삐라 자루가 터지면 고공에서 한 장씩 흩어져 반경 100km에 걸쳐 떨어지기 때문에 완전수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북한이 ‘삐라수거 전투’를 한다면 오히려 환영하고 싶다고 이민복 씨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삐라는 그것을 줍는 사람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민복 씨는 북한 체제를 흔들고 뒤집어 놓는 가장 강력한 대북전략수단은 다름 아닌 ‘풍선 삐라’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자유통일되는 그날까지 풍선 삐라 운동은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라도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풍선 삐라 작업을 지금은 외롭고 힘없는 탈북민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이민복 씨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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