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지역 5천여 탈북 벌목공들이 떠돌고 있다”
“러시아지역 5천여 탈북 벌목공들이 떠돌고 있다”
  • 미래한국
  • 승인 200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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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야기_긴급인터뷰
▲ 윤광철 씨가 은신해 있었던 중앙아시아의 한 농촌 풍경 / 출처:고도원의 아침편지
지난 6월 26일 열차가 러시아 국경지역인 카자흐스탄 고산지대를 넘어서자 10년이 넘게 무국적자로 러시아를 떠돌아온 탈북민 윤광철 씨(44·가명)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열차를 타고 친구가 가르쳐준 한 도시를 향해 떠난 지 이틀째였다. 날마다 러시아 경찰이나 북한 보위부 사람들에게 쫓기며 살았던 숨 막히는 숨바꼭질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인생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한국>은 지난 7월 13일 중앙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자유의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윤광철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러시아 경찰과 북한 보위부의 사냥감 신세로 전락
“탈출한 북한 벌목공 구출 캠페인 전개해야”


1995년 러시아의 시베리아 도시인 ‘띤다’ 지역에 북한 임업총국 소속 노동자로 파송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윤광철 씨는 북한 땅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둔 평범한 북한주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14년 전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인민군으로 장기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첫 직장인 트럭 부속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배치되었다. 당시 북한 경제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져 여기저기 아사자가 속출할 무렵이었다. 말이 공장이지 공장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고 공장노동자들은 할 일이 없이 무료한 시간만 보내야 했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선망의 대상이 된 시베리아 벌목공

이 무렵 신분이 좋은 중류급 이상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탈출구는 시베리아에서 벌목노동자로 일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파송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장받을 수 있고 큰 돈을 만들어 고향에 돌아올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때로는 뇌물까지 줘야 했고 선발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는 운 좋게 임업사업소 버스기사로 취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몰랐다. 한 겨울에는 섭씨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숲은 서정적인 풍경에도 불구하고 사느냐 죽느냐의 냉혹한 현장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선발대로 온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고 희망의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책정된 월 노임은 미화 100달러지만 고작 40달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첫 달부터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조국을 위해 충성한다는 마음에 몇 개월은 견뎠지만 너무나 열악한 환경 가운데 죽어가는 동지들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겨울에도 난방을 기대할 수 없었다. 식사는 소금국에 한 덩이 밥이 전부였다. 병에 걸려도 약품이 없었고 돈이 없어 러시아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또 휘발유가 없어 일반 차량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목재운반차량만 겨우 움직였고 벌목기계도 사용하지 못했다. 대부분 낡고 고장이 잦았지만 부품이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육체를 움직여야 하는 혹독한 노동만 있었다.

그는 현장과 사업소 사이에 인력과 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때로는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들의 시체를 수거하여 영하의 날씨 속에 한 곳에 꽁꽁 언 채로 보관했다가 북으로 귀환하는 사람들을 시켜 시체를 북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했다. 현장에는 한 달에도 십여 구의 시체가 노천에 짐짝처럼 쌓여 있었다.

당시 북한에서 온 ‘띤다’ 지역의 벌목 노동자들은 대부분 러시아 지역으로 탈출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윤광철 씨도 4년이라는 계약기간을 채우고 1999년 마침내 북한으로 귀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중에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북한 당국이 그의 수입을 매달 가로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조국에서 들려오는 대량 아사자 소식에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로 탈출하여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에 벌목 사업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벌목장 탈출자는 팔다리를 깁스하는 고문

탈출을 생각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북한 보위부 사람들에 의해 잡혀온 탈출 벌목공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 벌목공들은 멀쩡한 다리와 팔을 석고 붕대로 깁스를 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포승줄로 묶는 것보다 든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시체나 다름없어 보였다. 이제 그들이 북한으로 끌려가면 가족도 반역자라는 딱지를 씌워 고통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탈출은 정말 온 가족의 목숨이 걸린 반역이라는 사실에 치가 떨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탈출을 감행했다. 깊은 오지에 위치한 벌목 현장에서 ‘띤다’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거리였다. 그는 다행히 차량을 이용해 ‘띤다’ 가까운 지역까지 나와 평소에 사귀어둔 러시아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벌목장 지역의 러시아 사람들은 북한 벌목공들의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집수리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얼마 후 기차로 3일이나 걸리는 ‘끼니로바’ 지역으로 이전했다.

큰 도시인 그 곳에는 아파트 공사현장이 꽤 있었고 그는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주로 건축공사장에서 조적공, 미장공, 전공 등으로 일했다. 북한당국이 선발한 벌목공들은 대개 학력이 좋고 우수했기 때문에 건축기술자로 일하기가 안성맞춤이었다. 또 러시아 사람들도 그다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성실한 북한 벌목공들을 좋아했다.

북한 벌목공들의 형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이들에게 일자리와 잠자리를 제공해주기를 좋아했다. 이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가 잊지 못해 하는 친절한 러시아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몇 곳에 상점을 운영했고 그에게 상점 건축과 수리를 맡겨주었다. 그 부부 덕에 그는 몇 년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또 자유로운 삶을 찾게 된 것도 그들의 덕이라고 그는 감사해 했다.

벌목 현장을 탈출한 북한 벌목공들의 형편은 대동소이하다. 서로 휴대폰으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또 가끔씩 모여 타향살이의 회포도 푼다고 한다. 이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처형 당할 일을 생각하면 엄두도 낼 수 없어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방법이나 기회를 모르기 때문에 러시아 도시를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색출 압박 시달리는 벌목공들 빨리 구출해야

어떤 벌목공은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여 시민권을 얻으려고도 했지만 그것 역시 허용되지 않아 아이까지 낳고서도 여전히 숨어 산다고 했다. 이처럼 북한 벌목공들은 러시아 어느 곳에서도 신분적으로 안전한 기회를 찾을 수 없어 이들의 삶은 더욱 절망적이라고 그는 호소했다.

한편 윤광철 씨가 안전하게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준 박수명 선교사(45·가명)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러시아 지역의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사회 체제로 변화되면서 치안질서가 강화되어 탈북민들이 숨을 곳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체포된 탈북민들은 십중팔구 북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하루빨리 구출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러시아 경찰과 북한 보위부의 사냥감이 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출 벌목공들이 최소한 3,000명에서 많게는 5,0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벌목공 출신 탈북민 이덕수 씨(45)는 밝혔다. 이들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구출하는 것이 자국민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의 책임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국제공조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북한구원운동(상임회장 김상철)은 중국 탈북민 구출에만 주력해온 기존의 방침을 바꿔 러시아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새로운 뉴엑소더스 캠페인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한국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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