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자 회장 “이승만 기념해 ‘건국절’제정해야”
김길자 회장 “이승만 기념해 ‘건국절’제정해야”
  • 미래한국
  • 승인 2009.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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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
▲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이 대학을 지키는 일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했지요”

경인여대 설립자로 지난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시절 정부의 관선이사 투입과 온갖 구실 붙이기로 대학을 송두리째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교육학 박사). 그는 현재 사단법인 대한민국사랑회를 이끌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건국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 7일 광화문 ‘경희궁의 아침’에서 만난 김 회장은 비서도 없이 씩씩하게 일을 해내는 모습이 청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조용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얘기를 들으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아침을 보는 듯했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주중에 두세 번 들른다는 김 회장의 오피스텔 사무실은 단출했다. 사무실 한 쪽에는 정성을 다해 만들어 놓은 ‘건국아버지이승만사랑회’ 목제 현판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 ‘대한민국 61세, 건국대통령을 찾읍시다’라는 헤드라인의 이승만 특집판 뉴데일리 타블로이드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또 정면 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흑백사진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김 회장의 일상(日常)이 이승만 대통령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이 대통령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습니까?

“2000년 5월 22일 학교(경인여대)가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어요. 교수들과 학생들이 느닷없이 학장실로 들이닥치면서 길고 긴 악몽이 시작되었지요. 학교 밖 좌익세력들의 사주 아래, 내부 불만 교수들이 학교 경영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분규가 아닌 학교 사태를 일으킨 것이었어요. 이 때 학교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기도하던 중, ‘내 학교를 빼앗아간 세력들이 대한민국도 빼앗아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부터 애국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애국운동을 할 때는 예외 없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 정체성을 확고히 하자’라고 외쳤지요. 그렇다면 그 전통성과 정체성의 뿌리는 누구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그 뿌리는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특히 그 분의 미국인 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의 ‘대한민국 건국의 비화(秘話)’를 읽으며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이승만 회복이 대한민국 세우기

“이 대통령이 겪은 과정들이 너무나 가슴 아팠고 내 일처럼 공감되었어요. 그래서 매월 개최되는 우남 콜로키움에도 3년을 내리 참석했지요. 알면 알수록 이 대통령의 위대함에 감동했고 이 대통령께서 하신 일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탄생시키고 발전시켰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물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징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실 2007년만 해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적 벽이 너무 두터웠어요. 이에 이승만 박사를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로 회복시키는 것이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회복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대한민국사랑회는 어떤 과정으로 설립되었습니까?

“공교롭게도 건국 60주년을 1년 앞둔 때였어요.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42주기 추모식을 마친 후 이승만 대통령을 바로 알리자는 애국시민들의 뜻을 모아 ‘건국아버지이승만사랑회’를 설립하기로 논의하고 8월 15일에 이화장 통일당에서 창립 예배를 드렸지요. 그 때 ‘대한민국 건국60주년’을 띄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뉴라이트연대의 젊은 교수들을 만나 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건국60주년 기념사업’을 하자고 제의를 했어요. 이 생각에 동의한 김영호, 신지호, 이인호, 이주영, 정희경 등 40여 명의 준비위원들이 모여 ‘건국 60주년 사업을 민간차원에서 하자’고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했었지요. 나중에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에 이 계획이 제출되었고 건국60주년을 정부차원에서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사랑회의 제안으로 기념주화, 기념우표 발행 등이 시행되었지요.

그러나 미군 철수 후 용산에 건국기념공원과 건국기념관을 건설하자는 의견은 실현되지 못했어요. 이 단체가 출범할 때 명칭을 ‘건국아버지이승만사랑회’라고 했더니 벽이 너무 높고 두껍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좀 더 포괄성을 가진 ‘대한민국사랑회’로 변경하였지요.”

- 앞으로 계획을 소개해 주십시오.

“대한민국사랑회의 가장 큰 목적사업은 ‘건국절’의 제정입니다. 대한민국이 태어난 지 환갑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국민의 65%가 건국일을 모르고 있다니 말이 되겠어요?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광복만 거창하게 기념하고 스스로 이루어낸 건국일은 나몰라라 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대한민국입니다.

건국절 제정 운동을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전개할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9월 중순에 1차 모임을 갖기로 했어요. 이와 아울러 건국기념공원, 건국기념관을 건립하고 나아가 이승만 기념관과 이승만 동상 세우기, 우남로 지정 등의 국민운동을 전개하려고 해요. 많이 늦었지만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패륜국가, 패륜국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이승만 대통령은 어떤 지도자라고 생각합니까?

“그 분은 기독교 정신으로 아시아의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는 염원을 가졌던 분이에요. 그 분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위대한 사상가로서 철저한 반공자유주의자였어요.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기도를 한 분이지요.

대한민국이 그 분의 기독교정신 가운데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과 책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심지어 기독교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망하면 기독교가 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과 대한민국은 일심동체라고 생각해요.”

 

이승만은 예비된 인물

“제가 생각해보니,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탄생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비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여 철저하게 훈련시켜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일에 쓰셨다고 생각해요. 배재학당에 입학시켜 기독교교육을 받게 했고 반역죄로 감옥에 가게 하여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했고 그를 통해 월남 이상재 선생을 비롯해 40명을 개종시켰어요. 고종의 밀사로 미국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했고 단기간에 박사학위를 받는 등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시키셨고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하셨지요. 이 과정에 선교사들과 목사들이 도왔어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YMCA 학감이 돼 전국 순회 전도, 시국강연회를 했어요. 이 때 영향을 받았던 분들이 독립선언을 하신 33인 중에 많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구한말의 개혁자이며 대단한 웅변가이고 탁월한 외교가이며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대담을 할 때에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는 세계적인 정치지도자였습니다. 또한 서예가, 시인, 사상가,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까.

“이 분이 아니었으면 과연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에요. 이 분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해방 후 우리 지식인 사회는 60% 이상이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이었어요. 그대로 놔두면 공산국가가 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막았지요. 소위 남북합작이 공론화되던 시기였는데, 이 대통령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어요. 심지어 미국이 남북합작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이런 속에서 남한이 독자적 정부를 주장하고 유엔의 인정을 받은 것은 정말 기적이지요. 반대와 거부를 무릅쓰고 그 일을 이승만 대통령이 해낸 것입니다. 종횡무진으로 국제외교력과 정치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우남정치외교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해 우남 정신을 이어받은 정치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이 제 개인의 꿈이기도 합니다.

단군왕검 이래 한반도는 왕의 나라였으며, 백성이 있을 뿐 주권을 가진 국민이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주어진 주권재민의 자유민주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이 대통령의 말년의 실정을 상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반만년 동안 ‘대륙문명권’에 속해 주변 강대국의 침탈과 박해를 받던 이 한반도를 ‘해양문명권’으로의 대변혁을 통해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게 했으며 주변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아니 오히려 앞서 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으신 분입니다.”

 

‘우남정치외교대학원’ 설립 꿈

- 오늘날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이념 혼란은 왜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이념 혼란이 왜 왔느냐? 한 마디로 이승만 대통령을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말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대표하는 분이고 상징이지요. 그런데 이런 분을 역사 속에 묻어버렸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의 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는 얘기입니다. 4·19는 1960년 당시는 당연한 애국운동이었으며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그 나름대로 기여가 컸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볼 때 4·19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역사 속에 묻어 버리고 건국이라는 말조차 함께 묻어버린 일이 정말 잘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버리고 김구 선생을 대신 내세웠어요. 물론 김구 선생은 위대한 애국자요 독립투사이며 민족의 스승이십니다. 그러나 좌편향의 사람들이 이승만을 폄하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김구 선생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김구 선생은 본인의 뜻과는 달리 좌파의 상징인물이 되고 말았어요. 저 세상에 계신 김구 선생께서 과연 기뻐하실까요? ”

- 경인여대 학교분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사랑회 설립에 이르기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데 평소 신앙관을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니고 자생적 신앙인이에요.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자기가치도 철학도 흩어지고 말아요. 하지만 저는 모든 뜻을 하나님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과 실수는 있었지만 죄는 짓지 않았는데도 왜 이런 시련을 주실까? 아마도 주님의 뜻과 계획이 계실 것이다’라고 늘 생각했지요. 그래서 찾은 하나님의 뜻이 바로 ‘애국’이었어요. 워낙 집착이 강한 편이라 결정적 타격을 받지 않았다면 학교만 생각했지, 국가라는 보다 큰 안목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도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있으며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낸 일도 많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학교가 전혀 없던 인천에 유일한 기독교 여자대학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 은혜에 늘 감사하고 있지요. 이제는 젊은 여성 영혼구원의 사명이 저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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