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비 마련 위한 ‘중국 여행’
생계비 마련 위한 ‘중국 여행’
  • 미래한국
  • 승인 2009.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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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들 이야기

중국 단동의 한 떡 공장에서 일하는 정영미 씨(45·가명)는 스스로를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서 어렵게 여행허가증을 받아 중국으로 나올 수 있었고 단동에서 우연히 떡공장을 운영하는 장운덕 사장(50·가명)을 만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이라면 관광, 비즈니스, 연구, 유학, 방문 등으로 목적을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중국여행’은 그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정영미 씨는 중국여행의 목적을 묻자, “관광이요? 상관없습네다. 우리는 어디서고 조국을 위해 일합네다”라고 답했다.

북한 사람들이 여행허가증을 받아 중국으로 나오는 경우 대부분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 즉 외화벌이 일꾼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국경도시들은 이러한 북한의 ‘여행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여행허가를 받았고 중국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몇몇 탈북민을 만나 그들의 사정을 알아보았다.

 

300달러 주고 여행허가증 받아

최근 중국 땅과 연결된 두만강 부근 북한 국경지역에 높은 철조망이 설치되고 있다. 고압전류가 흐르고 지뢰가 매설된 지역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국경경비가 엄중해졌고 탈북이 어려워졌다.

또한 그동안 중국지역에서 활동해온 이른바 탈북민 브로커들의 활동도 급격히 줄었고 탈북민을 돕던 조선족들이 잡혀갔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탈북민들에 대한 북한 보위부와 중국 공안의 수색과 처벌이 강경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중국여행은 북한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기회가 되고 있다. 중국의 요녕성 일대인 심양과 대련, 단동지역은 근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시가 상전벽해를 이루며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 직결되는 통로로 무역항이자 북한 서해안의 최대도시인 신의주는 60년 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전히 변화 없는 기나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낡은 트럭들이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다리를 오가며 많은 물품을 실어 나르지만, 북한의 주민들은 남의 일처럼 별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 물품들이 북한의 일반주민들을 외면한 채, 지배층만 배불리는 일에 소용될 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배를 굶고 있으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수를 알 수 없는 북한 여행객들이 매일 중국으로 건너오고 있다. 그들은 신의주에서 여권과 중국행 비자를 확인받고 중국 땅으로 나온다. 이들 가운데는 공산당 간부를 비롯해 외화벌이에 나선 지식인층, 장사꾼 그리고 하부계급의 서민층들이 있다. 이들은 1개월에서 3개월 씩 걸려 여권을 발부받아 중국으로 들어오는 운이 좋은 이들이다. 이들은 대개 10여 개의 기관으로부터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고 친척 가운데 한 명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직계가족을 볼모로 세워놓은 뒤에야 중국여행을 허가받을 수 있다. 중국에서 잠적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절차보다 더 어려운 고비가 있는데 그것은 보위부 담당자로부터 여행허가서에 도장을 받는 일이다. 이 도장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300달러(북한 돈 75만 원에 해당) 이상의 현찰을 뇌물로 바쳐야 한다. 이는 북한에서는 일반화된 부패 현상의 하나이다. 장마당에서 담배 한 갑이 700원이며 일반 근로자의 한 달 노임이 1,500원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300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알 수 있다. 평범한 북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돈을 갖고 있지 않아 주위 친인척에게 조금씩 빌려 빚을 져 뇌물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빚은 결국 중국여행을 짓누르는 부담이 된다.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여행허가서를 받으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일확천금을 만져 보고도 싶고 동시에 자유와 해방의 공기를 마시고 싶은 잠재된 욕구 때문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중국의 친척으로부터 초청을 받으려 한다.

여행허가서에 도장을 받은 이후에는 도공산당위원회가 주관하는 해외출장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의 내용에는 ▲남한 사람을 만나지 말라 ▲특히 목사나 선교사는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신을 지옥에 끌고 갈 악마들이다 ▲만약 그들을 만난 것이 발각되면 우리 공화국은 그를 범죄자로 처벌할 것이다 등이 포함된다. 귀국 후에는 여행 내용과 결과를 정리해 보위부에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지시가 따른다.

비자기간은 3개월이지만 중국에 나오기 위해 북한에서 허비하게 되는 기간을 빼고 나면 실제 여행기간은 2개월 남짓하다. 도당위원회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각 지역에서 신의주로 올라오는 데만 1주일 이상이 걸린다. 또 중국의 친척에게도 어쨌든 연락을 해둬야 하기 때문에 전화 연결에도 며칠이 걸린다. 그럭저럭 1개월이 훌쩍 지나고 만다. 북한 여행객들은 남은 2개월 동안에 어떻게든 외화벌이로 빚을 갚고 생계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 사회·문화적 충격

이렇게 어려운 절차를 거쳐 중국에 간다고 해도 중국에서 친척을 만나는 과정도 순탄치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친척들도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친척을 만나지 못하는 북한 여행객들은 본의 아니게 떠돌이가 되는 신세가 된다.

북한 여행객들은 중국에서 대부분 민박집에 거처를 마련한다. 중국 빈민가에는 북한 사람들을 상대로 민박을 운영하는 집들이 있다. 대체로 독방은 하루 30위안, 합숙은 10위안 정도이며 간단한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점심과 저녁은 굶는 경우가 많다. 또 민박 주변에는 북한에서 온 보위부 요원들이 늘 감시하고 있어 매사에 조심한다.

거처를 정하면 이제부터 일을 찾아 나선다. 흔히 여자들은 식당에서 일거리를 찾고 남자들은 공사판을 헤맨다. 중국 실정에 익숙하지 않아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또한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도 한다.

사회 문화적 충격도 큰 어려움이다. 한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여행객들은 대부분 중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현상에 당혹해 한다. 북한에서는 평생 당이 시키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어떤 일을 선택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생소하다.

최근 남한 독지가들이 운영하는 북한 여행객들을 위한 무료 민박시설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대여해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숙소를 운영하는 한 관리자에 의하면 “북한 사람들은 남몰래 감추었던 자기 목소리를 낼 때는 대개 울거나 분노에 가득 차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김정일 그놈이 죽어야 우리가 살아” “한국 정부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한 방이면 픽 쓰러질 텐데”라는 얘기도 내뱉는다. 이처럼 북한 여행객들의 처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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