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수놓는 가곡으로의 초대
가을밤 수놓는 가곡으로의 초대
  • 미래한국
  • 승인 2009.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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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프라노 임청화 (백석대 음악학부 교수)
▲ 소프라노 임청화


“가곡, 대중적으로 알리는 역할하고 싶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은 누구나 한번쯤은 지나왔던 세월을 추억하고, 옛 사랑을 기억하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가을 정취를 더하는 ‘가곡’이 곁들여진다면 이보다 더한 추억거리가 또 있을까.

백석대 음악학부(성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소프라노 임청화 씨는 가곡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악가로 꼽히고 있다. 11월에 공연을 앞두고 있는 임 교수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가곡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고운 목소리로 멋드러지게 신작 가곡을 들려주었다.

“눈이 흩어져 날리며 낙엽은 쓸쓸히 날리고(중략) 내 맘 흔들어 놓고서 낙엽 따라 가버린 그대여. 나도 그대 따라 가리라, 홀로 가버린 바람처럼… 이 노래는 ‘낙엽은 지는데’라는 곡이에요. 늦가을에 어울리는 곡이죠. 낙엽이 떨어져서 나무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작곡가 임긍수 선생님이 직접 작시를 한 거예요. 곡도 좋지만 저는 가사가 좋아요. 이 곡을 부를 때면 제가 마치 이 곡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며 보고 싶고, 가슴에 묻어둔 애잔함과 쓸쓸함이 막 피어나는 것 같아요.(웃음)”

한창 이 노래를 들려주던 임 교수에게 가곡을 많이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오페라는 1막에서 4막까지 아리아, 중창, 합창이 이어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가곡에는 한 곡속에 모든 스토리가 녹아져 있어요. 시와 음악이 만나 노래로 만들어진 것을 성악가가 의미를 살려서 잘 풀어내야 합니다. 저는 가곡의 그런 매력이 좋아요. 거기에 매료돼서 가곡을 많이 부르게 돼요. 학교에서도 ‘한국가곡클래스’를 맡고 있어요.”

그녀의 가곡을 듣고 자연스레 팬이 된 관객들도 많다. 임 교수는 올해 초에 ‘안개꽃 당신’이라는 크로스 오버 앨범을 발표했고, 11월 3일에는 서울 영산 아트홀에서 ‘소프라노 임청화와 임긍수 가곡의 만남 물망초’라는 공연을 한다.

“이번 가곡 공연은 제가 존경하는 작곡가 임긍수 선생님의 곡으로 하는데 장르는 가곡 뿐만 아니라 성가곡, 크로스오버 등 다양해요. 세 장르를 한 무대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 연초에 임긍수 선생님을 만나 음악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면서 독창회 프로그램을 짜게 되었고, 작년 말에 녹음했던 ‘안개꽃 당신’의 크로스 오버 앨범도 나왔어요. 그 앨범이 나오면서 가을에 독창회를 할 때 선생님의 다양한 곡을 깊이 있게 연주하고 싶은 생각을 아시고 이번 연주회를 위해서 소강석 목사님(새에덴교회)의 대표적인 시집 ‘꽃씨’ 외에 신작 가곡 3편을 써주셨어요.”

 

고3때 성악 시작, 피나는 노력으로 유럽 무대에서 두각

그녀는 고3 9월에 성악을 시작한 이후 1983년 숙명여대 성악과에 입학, 졸업 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의 박사과정에 해당하는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최고학부 전문연주자과정을 한국인 최초로 수석 졸업하고, 동 음악원 오페라과를 마쳤다. 원래는 어머니의 권유로 ‘한의사’가 되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콩쿠르 대회에 나가 입상하고, 도 대회에까지 나가게 되면서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제일 좋지 않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갔을 거라며 웃음을 지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 노래만 할 줄 알았는데 피아노 등 노래 외에 해야 할 것이 많았어요.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고 들어가 대학 1,2학년 때는 무척 힘들었죠. 대학에 들어가 ‘바이엘’을 쳤어요. 클래식 피아노 수업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도를 하셨어요.”

하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공부해서 대학 3학년 때에는 지금까지 공부한 곡을 모아 독창회를 열었다. 대학 4학년 때는 학교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섰다. 성악에 대해 조금씩 맥을 잡아갈 무렵 그녀는 한국에서 독창회를 가졌던 세계적인 성악가 엘리 아멜링을 만나게 됐고, 그와의 인연으로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학생 시절에도 네덜란드 여왕 초청으로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네덜란드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G. Kuijken지휘)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유명한 지휘자 선생님과 협연한다는 게 저로서는 굉장히 큰 영광이었죠. 저와 중국 친구 한명이 같이 무대에 서게 됐었는데 그 친구가 건강이 안 좋아 제가 그 친구 몫까지 연주하게 됐어요. 한 무대에 두 번을 서게 된 거죠.”

95년에는 세계적인 성악가 크리스타 루드비히, 마에스트로 알베르또 쩨다와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독보적인 신예 유망주로 발탁되어 그의 실력이 유럽 언론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음악은 내 삶의 동반자, 귀국 후 제 2의 삶

유럽에서 연주자로 주목을 받고 있을 무렵 그녀는 95년 귀국한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있는 맏딸을 어머니가 많이 그리워하셨던 것. 그러나 그 이듬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자신도 암 선고를 받는 등 임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다 잃은 느낌이었어요. 1년 뒤에 제가 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저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제게 신앙과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는 몸이 안 좋으면서도 항암제를 가지고 네덜란드에 가서 연주하고 올 정도로 음악에 열정을 쏟으면서 아픔도 잊고 살았어요.”

임 교수는 이 일을 겪은 후 더 음악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그녀의 명함에는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는 성경 시편 146편 2절 말씀이 적혀 있다. 이 구절은 암이 재발했을 당시 의지했던 말씀.

“그때 제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어디에 가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 사역자로 살고 싶다는 기도를 했었어요. 그 이후부터 오라토리오나 성가를 많이 부르게 된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그런 기회가 왔고, 이것이 저의 사명이지 않나 생각해요.”

실제 그의 공연에는 거의 성가곡이 빠지지 않는다. 이번 가곡 공연에도 성가가 포함되어 있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2003)’, ‘나의 찬미(2008)’라는 성가 음반도 발표했다. 탈북난민과 장애인 아동, 소아암 환자, 재소자, 영구 귀국한 사할린동포 등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알콜 중독자 재활을 돕는 음악회에도 그녀는 바쁜 일정을 쪼개 참여한다.

95년 귀국한 이후 교육자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임 교수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가뭄에 단비’와 같은 감상을 주는 음악가로 평가받고 싶다고 전했다.

“은퇴 후에는 소외된 곳까지도 가서 찬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웃음)”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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