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로폴리스 한복판의 古都 북촌(北村)
메갈로폴리스 한복판의 古都 북촌(北村)
  • 미래한국
  • 승인 200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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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의 국토기행] Beautiful Korea

다시 보는 미래한국
- 미래한국 24호 (2002.11.24.)


갈리고 모이고
꼬부라지는 골목의
옛스러움에
가슴이 저려…

이 나라 최고의 가거지(可居地). 경복궁과 창경궁 사이의 남향받이 언덕배기는 종로 시전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촌으로 불렸다. 뒤로 명산 북악을 지고 남으로 청계 너머 남산을 바라보며 인왕산과 낙산에 안긴 땅, 한강 연변과 관악에 이르는 시야가 넓고 반듯하다.

양지 바르고 물 잘 빠지며 상쾌한 바람이 흘러 심신이 맑고 풍수해로부터 안전한 곳, 왕족과 사대부들이 대를 이어 살면서 민족의 운명을 지켜온 곳. 북촌은 한국의 아름다움 가운데 한 머리 자리를 차지해서 마땅한 명소이다.

인구 천만의 메갈로폴리스 한복판에 고도(古都)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서울의 자랑이다. 지난 주말 오후엔 오랜만에 맘먹고 북촌을 걷기로 했다. 나는 더러 도시의 일상이 만들어 내는 리듬 속에서 잃어버린 상식을 되찾기도 하고, 다양한 도시경관이 여는 의미의 세계에 빠져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다시 불거진 북한 핵과 대선 한달 전의 후보 단일화 소동으로 세상이 온통 북새통이다. 날씨가 다소 쌀쌀했지만 늦가을 햇살에 아직은 따신 기운이 남아 있다.

광화문 옆 동십자각을 북으로 끼고 돌아서면 삼청동길 초입이다. 외관이 산뜻한 갤러리와 전시관, 카페들이 이어진다.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북촌은 이를테면 현대식 문화의 거리로 시작된다. 왼편에 국립민속박물관이라는 이름의 칙칙한 기와를 인 건물이 어색한 느낌을 준다.

걷기 좋은 넓은 인도는 청와대로 가는 길이 갈라져 나가고 이어 총리 공관 입구를 지나치면 형편없이 좁아진다. 풍수를 좇는 이들은 땅이 길흉을 가른다고 믿지만, 권력이 땅의 화복을 좌우하고 있구나.

이어서 번듯하게 나앉진 않았지만 정든 음식점들을 만나는 것은 기분 전환에 한결 도움이 된다. 설렁탕집, 수제비집, 복국집, 빈대떡집… 시절에 따라서는 보통 사람들과 고관들이 쉽사리 마주치기도 하는 곳이다.

삼청터널 쪽을 버리고 오른쪽 가파른 찻길로 올라가면 왼편 안쪽이 교육평가원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대입수능시험으로 가장 한국적인 병을 호되게 앓는 곳이다. 나도 한 달씩이나 저 속에 유폐된 채 삼청공원만 내다보면서 출제라는 걸 한 적이 있다.

왜 멀쩡한 선생님들이 갇혀야 하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어릿광대 놀음이 어디 그 뿐이랴. 몇 걸음 떼면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이 감사원이고, 한 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뒤로 사연 많은 건물에 남북회담사무국이 들어 있다. 둘 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당당한 자세에 범인이 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있지만, 그들에게 거는 필부필부의 절실한 바람을 알기나 하는지.

고개 넘어 내리막 큰길로 나서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축대와 담장이 높고 집들은 크다. 그런데 길 양켠에 새로 심은 소나무들의 휘청 큰 키가 어쩐지 애잔해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 경사가 완만해지자 상가와 음식점들이 성시다. ‘나는 지금 북촌을 걷고 싶은 거다’라고 항변하면서 방향을 바꿔 본다.

여전히 많은 음식점들이 이번엔 골목까지 파고들었다. 큰길가에 우뚝 솟은 재벌기업의 본사 덕이란다. 역시 그랬구나. 저 게걸스런 외식(?飾)이나, 일본식 간판 글씨 좀 보아. 동행한 이 박사와 노군, 도시연대의 미스 김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진짜 북촌을 찾아보자고 한다.

여기가 이미 북촌인데 진짜 북촌이란 무얼까? 솟을대문의 한옥 마을에 격조 높은 전통문화, 그게 아니면 꼬장꼬장한 구식 사람들의 오순도순 모듬살이…어쩌면 그건 우리가 머리 속으로 만들어낸 조선왕조의 잔상이거나 역사도시의 이상일 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회동 높은 줄기는 연립주택, 다가구·다세대 주택들이 스카이라인을 덮고 있고, 차가 들어갈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얄궂은 모양의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한참 후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한옥들이 띄엄띄엄 눈에 띈다.

시멘트 벽돌이나 철제 재료로 여기 저기를 개수한 낡고 허름한 30년대식 한옥들이다. “오래 살아 서로 정이 많이 들었어요” 궁중 나인 몇이 이 부근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나뭇가지처럼 갈리고 모이고 꼬부라지는 골목이 그 중 옛 모양 그대로다. 안데스 쿠스코의 잉카 뒷골목, 리스본항의 선술집 골목과 네카 강변의 뤼데스하임에서 걸었던 포도주 골목은 세계 최고의 문화관광지였는데.

규제 일변도의 고도제한과 한옥보전 시책에 묶여 70~80년대 강남 개발의 열병을 겪고 나자, 90년대에는 생활환경 개선과 재산권행사에 대한 주민욕구가 분출하였다. 민주화된 시정은 쌓인 민원을 받아들인다고 대책도 없이 훌러덩 규제를 풀어 버렸다.

결과는 불문가지. 그새 땅값은 올랐지만 실은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저마다 주민과 관청 사이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북촌의 틀과 정신을 아우르는 미래상은 아직 없다. 당황한 서울시가 한옥 몇 채를 사들이고 나섰지만 그래서 될 일이 아니다. 이웃 다세대 주택에서 내정(內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게스트하우스가 아주머니의 정성만으로 얼마나 버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알려진 대로 31번지 부근 ‘북촌 한옥길’을 따라서는 집도 골목도 얼추 기대한 대로 남아 있다. 해질 녘의 북악 단풍이 곱기도 했지만, 골목을 통해 내다본 탁트인 도심 위의 남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역사경관 훼손하는 한옥개축을 반대한다”는 빛 바랜 플래카드마저 낭만적이다.

심성과 분수에 맞춰 지은 작은 집 안으로 바깥 자연을 끌어들이고, 사계의 변화를 한식기와의 세련된 잿빛으로 절묘하게 조화시켜낸 한옥들이 거기 줄지어 있다. 평지에선 처마를 맞대고, 언덕에선 땅 기울기에 앞뒷집 지붕 선을 맞추는 어울림의 지혜가 골목 특유의 냄새에 싸여 있다.

흩어져 있긴 하지만 800여 채의 남은 한옥과 함께 불교미술박물관과 선원, 국악원, 궁중음식·다례연구원, 전통병과·인형·매듭연구소들과 옻칠, 오죽, 목공예 공방들이 길을 찾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은 성과였다.

성삼문, 이순신, 김옥균, 손병희, 윤보선의 생가나 살던 집을 찾고 당대를 풍미하던 시인 묵객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아도 좋을 것을. 어둑해진 정독도서관 앞길을 걸어 나오면서 북촌 정신이 이어지는 문화경관을 소망해 본다. 이젠 훈기 있는 찻집을 찾을 차례다.

류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세계지리학연합회 사무총장·청와대 대통령실장·본지 편집위원(1기) 역임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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