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박해 우려와 영웅 대접 기대
가족 박해 우려와 영웅 대접 기대
  • 미래한국
  • 승인 2010.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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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식사·의복·치료 거절하고 북에 송환된 선원들


지난 12월 21일 서해 덕적도 서방 17마일 해상을 표류하다 남한 측에 구조된 북한 어선 선원 7명이 한국 정부의 식사와 의복, 동상치료 제의도 거부한 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나흘을 굶으면서도 남한의 음식에 손도 안대고 엉덩이 부분이 해어져 속이 드러난 바지와 소금기가 허옇게 말라붙은 상의를 그대로 입고 판문점으로 송환됐다. 속옷만이라도 주겠다고 해도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손발을 잘라야 할 정도로 동상이 심해 수술해주겠다는 제의도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행동은 남한의 호의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북한에 송환되거나 남한에 남겠다고 했을 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탈북하다 송환된 북한 주민을 강제 노동, 정치범 수용소 수용 등으로 처벌한다. 1997년 2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하자 사돈의 팔촌까지 12개의 객차에 실어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다는 소식도 있다. 북한 정권은 그들을 배신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숙청하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 선원들이 보인 모습은 소위 영웅적 행동을 한 후 북한에 돌아갈 경우 크게 대접받을 기대가 큰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원들은 혼자 구조된 것도 아니고 여러 명이 구조됐으니 남한의 호의를 받아들였다가 다른 사람의 발설로 들통이 나게 되면 자아 비판을 받고 숙청될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1994년 1월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북한군 2명이 태풍으로 표류하던 중 구조돼 판문점으로 송환된 일이 있었다. 이들은 남한에서 새옷을 주자 “내가 입고 온 장군님 군대의 군복을 달라”고 했고 가져온 군복에서 김일성 초상화가 없자 “수령님의 초상화를 돌려달라”고 요구해서 이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노동신문은 이러한 병사들을 “두 영웅 전사들이 괴뢰군 100만 명과 대결해 싸워 이겼다”고 선전했다. 이들은 송환된 후 사병에서 군관으로 전격 임명됐다.

이 두 병사의 사례는 중학교 교재 ‘전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1996년 11월 연평도 해상에서 표류하다 남한 측에 구조된 정광선 사회안전부 소속 북한군인의 경우는 더 심하다.

그는 남한 경비정이 구조하려 하자 도끼를 들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저항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것을 ‘영웅 전사의 절개’라고 극구 찬양했다. 이후 그는 남한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말끝마다 “장군님”이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송환된 후 20살에 장교가 됐다. 그가 다닌 청진시의 모 학교는 ‘정광선고등학교’로 개명됐다.

북한 주민들은 본인 의사와 달리 남한에 갈 경우 남한 당국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이면 북한에 송환돼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배운 것이다.

사실상 법보다 우위에 있는 노동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는 “적에게 포로가 된다는 것은 혁명전사의 수치이며 이 경우 자결해야 한다”고 돼 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사태 때 북한 공작원들이 집단 자결한 것도 이 원칙에 따른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탈북민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강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체제에 저항할 판단력과 의지를 갖지 못하도록 북한 독재 정권은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현국 기자 chw-97@hotmail.com
북한 김일성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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