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향해 걷고 또 걸은 수천리 여정
남한 향해 걷고 또 걸은 수천리 여정
  • 미래한국
  • 승인 201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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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박철한 씨의 입국 스토리

탈북민 박철한 씨(37·가명)는 2006년 11월 그믐밤에 북한 무산을 떠나 다음해 2월 말 한국에 입국했다. 절망과 위기의 탈북과정에서 중국 땅을 걷고 걸어 낯선 나라인 미얀마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그는 남한에서 교회를 다니게 됐고, 기술대학에서 용접기술을 배워 현재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여느 탈북민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저축한 돈을 북한 형제들에게 분기에 한 번씩 보내고 있으며,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거의 없다. 그의 소원은 하루빨리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남한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힘들여 지은 집이 몰수되어 탈북 결심

박 씨가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널 때는 고향 평성에 아내와 두 살 된 아들을 두고 몰래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당성이 강한 고위간부 출신의 가문에서 자란 아내에게 탈북을 알릴 수 없었다.

박 씨는 개성지역의 8보병사단에서 11년간 군대 생활을 마치고 공업대학에서 전기기술을 배웠다. 그는 북한의 어려운 전기 사정 하에서 가정용 변압기와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 그는 고위직 군관들의 가정을 출입하면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했고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그무렵 그는 군부대 땅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한 군관의 얘기를 듣고 신혼살림을 할 집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군관이 전출을 가는 통에 땅과 집이 군소유로 몰수되었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선택할 길을 모색한 끝에 탈북을 결심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 집을 빼앗는 나라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산행하는 법, 은신하는 법,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 지도를 보는 법 등을 11년 동안 군에서 다 가르쳐 주었는데 탈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는 한국 가는 길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섰다. 배낭에는 쌀, 냄비, 소금, 고춧가루, 라이터 2개, 막담배 200그램 등을 챙겼다.

두만강이 내려다보이는 무산 국경까지 도착하는 데 걷고 걸어서 닷새가 걸렸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경비병들의 교대 시간에 5분 정도의 공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틈을 이용해 두만강을 건넜다. 그믐밤의 어둠을 뚫고 도강하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을 잡아 연길에 도착하는 데는 3일이 걸렸다. 낮에는 자고 밤에만 걸었다.

 

외투와 속옷까지 벗어준 한국인 목사

말로만 듣던 연길은 화려한 별천지였다. 그 곳에서 만난 한 조선족은 탈북민 행색을 하고 있으면 잡힌다며 등짐을 버리라고 했다. 그래서 라이터와 담배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도움을 바라고 연길에서 가장 큰 교회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마침 갖고 있던 할머니 은비녀를 시장에 팔아 40원을 만들었다.

11월 20일 밤 10시 왕천이나 심양으로 가려고 연길 역에 갔다. 거기서 한국인 목사를 만났다. 그는 200원을 주고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와 겉옷 그리고 속옷까지 벗어주었다. 그 목사는 탈북민들을 매일 만나 이렇게 도와준다고 했다. 박 씨는 200원으로 심양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심양에 도착해 은신할 곳을 찾았다. 마침 한인교회를 찾았더니 목사와 한 집사의 도움으로 청도가 가까운 사방역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국인을 만나야 한국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방에서 황도까지 철길을 따라 열흘을 걸었다. 곤명(昆明)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서안(西安)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배고픔은 철길에 버려진 음료와 음식들을 주워 먹으며 견딜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한인교회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400원을 받아 서안에 갈 수 있는 충분한 경비를 마련했다.

12월 15일 서안에 도착했을 당시 6자회담이 열리고 있었고 경비가 삼엄했다. 우려한 대로 그는 공안에게 붙들렸다. 그러나 그는 중국인 벙어리 행세를 했다. 머리는 중국인 스타일로 깎았고 중국옷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경비지역을 벗어나 우연히 눈에 띈 한국인 식당 ‘김밥세상’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젊은 한국인 사장의 도움으로 곤명까지 가는 지도와 경비를 조달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서안에서 곤명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5일간 기차여행을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검문은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곤명에 도착해 한 조선식당에 들렀다가 그만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말았다. 식당 주인이 그의 행색을 보고 탈북민으로 짐작하고 고발했던 것이다. 그는 조선족 공안 책임자에게 솔직한 심정을 호소했다. “내가 아직 청춘인데 이대로 북으로 가면 죽음 밖에 없다.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그는 “12시간 안에 이곳을 떠나면 봐 주겠다”고 했다. 그는 급히 그곳을 떠나 미얀마 국경지대까지 멀고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국경 수림지대를 열흘간 걸어서 넘어

곤명 지역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의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 지역이다. 그래서 탈북민들의 주된 탈북 루트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오직 지도 하나에만 모든 것을 의지했다. 지도를 놓고 여러모로 연구한 끝에 미얀마 길을 선택했다. 거리도 가까웠고 남은 돈으로 봐서도 가장 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얀마의 ‘뉘에’라는 도시를 목적지로 삼고 무조건 걸었다.

국경 지역은 상당한 높이의 고산지대였다. 거의 4일을 걸었다. 춥고 무서웠지만 국경을 넘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국경을 넘었지만 똑 같은 수림지대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미얀마 땅에 들어서서도 10일을 더 걸어 들어갔다.

처음으로 미얀마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국경 경비대의 군인들이었다. 박 씨는 그들에게 체포되어 손발이 묶인 채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 했던 것처럼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 깜박 잠이 들었는데, 하늘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걱정할 것 없다. 잘 될 것이다.” 그러자 한 군인이 그에게 매를 몹시 내리쳤다. 거의 30분간 두들겨 맞았지만 감각이 없었다. 벙어리처럼 소리도 지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아야 했다. 견디기 힘든 순간을 넘기자 그들은 그를 풀어주었다. 그때부터 대우가 달라졌다. 쌀밥과 카레를 주었고 그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얀마 입국 행사를 그렇게 치른 것이다.

그들은 그를 다행히 철길이 있는 지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그는 거기서 한때 마얀마의 수도였던 양곤을 향해 하염없이 철길을 걷다가 때마침 달려오는 화물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역마다 서서 짐을 싣고 내렸다. 하도 배가 고파 그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것은 기차가 막 출발할 순간에 미리 봐 둔 역전 노점상의 떡판을 통째로 들고 기차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노점상에게 정말 죄송한 일이었지만 살아남아야 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무려 20일이 걸린 길고 긴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양곤에 도착하여 한국대사관을 찾아갔다. 지리도 몰랐고 돈도 없어 오토바이 택시 운전수에게 부탁했다. 대사관에 가서 경비에게 택시비를 대납하게 하고 나중에 대사관으로부터 지불받게 했다. 이 날이 2007년 1월 17일이었다. 대사관 담당 직원이 얼른 알아차리고 친절히 방으로 안내해 주었을 때 그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북한을 떠난 지 두 달 반. 걷고 걸어 수천리 길을 달려온 탈북의 여정이었다. 대사관은 탈북민인 그를 친절히 맞이해 주었고 다음 달 27일 꿈에도 그리던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그는 “한인교회의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그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이 모두 한 동포로 나를 대해주고 도와주신 것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인도해주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 달이면 그는 북한구원운동의 뉴엑소더스 프로젝트를 통해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을 서울에서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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